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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들의 DMZ 활용법… 환경생태적 쟁점 소홀
정치학자들의 DMZ 활용법… 환경생태적 쟁점 소홀
  • 조명래
  • 승인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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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참관기] 전국대학통일연구소협의회 주최 ‘停戰 그리고 DMZ’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나타나는 공간 변화의 하나는 DMZ의 위상이다. DMZ는 적대관계를 완화하기 위한 비무장지대인 만큼 비활성화 공간으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DMZ의 이러한 특성은 적대관계가 협력관계로 전환되면서 변화를 겪게 된다. 남북을 오가는 왕래가 잦아지면서 DMZ가 경의선이 통과하고 금강산관광을 위한 육로가 뚫리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그 실례가 된다. 교류와 협력이 더욱 잦아지면 DMZ는 통과공간을 넘어 접촉과 합류의 공간으로 바뀌는데, DMZ에 평화도시, 생태도시, 물류센터, 이산가족방문면회소 등을 짓자는 것은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무장개발가능구역’론의 가능성과 한계

DMZ가 이렇게 변하는 상황에서 전국대학통일연구소협의회 소속 강원지역 5대 대학 소속의 정치학자들이 ‘정전 그리고 DMZ’란 주제의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DMZ의 태생적 의미’와 ‘DMZ의 미래’란 두 세션으로 나눠 각각 3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DMZ에 관한 논의가 많았지만 정치학자들이 모여 DMZ의 정치경제적 특성은 물론 DMZ의 활용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은 처음이라 여겨진다. 발표된 논문들의 다수는 DMZ의 정치학적 쟁점들을 다뤘다면, 2편의 논문은 DMZ의 활용방안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그 하나가 김재한 한림대 교수의 글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DMZ사례를 검토하면서 한국의 비무장지대 활용 방안을 제안하고 있는 게 글의 주 내용이다. DMZ의 두 기능을 ‘비무장’과 ‘환경보전’으로 삼고, 이 두 가지 조건을 조합해, 그는 ‘비무장생태보호구역’, ‘비무장개발가능구역’, ‘무장가능생태보호구역’, ‘무장가능개발구역’ 등 4가지 DMZ 공간유형을 도출한다. 이중에서 남북한의 실질적 협력은 주로 ‘비무장개발가능구역’에서 설정되며, 경의선과 금강산육로가 모두 이 구역에 속한다고 한다.

이 구역은 ‘환경보전의 절대적 가치보다 남북한 협력이라는 가치에 더 기여할 수 있는 각종 시설과 이용을 허용하는 곳’으로 규정된다. 남북협력을 위한 개발활동을 담아내기 위해 환경을 배제하는 구역인 셈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DMZ 내의 개발공간은 DMZ 생태환경의 가치와 쉽게 충돌할 수 있다. 가령, DMZ 내에 개발지역이 지정되면 남북협력사업을 빌미삼는 공장들이 난립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주변의 환경파괴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두 번째 글은 통일연구원 손기웅 박사의 것이다. 그는 남북관계가 적대로부터 협력으로 바뀌는 상황, 그리고 DMZ가 환경자원으로 주목받는 상황, 이 두 조건을 갖고 DMZ 내에 유엔환경기구를 유치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 글이 독특하게 주장하는 것은 DMZ를 환경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되, 유엔이란 국제기구의 활동거점으로 만들자는 데 있다. 유엔이란 다자간 관계를 이용해 남북의 양자간 관계가 가져올 한계를 극복하고, 나아가 남과 북이 국제 다자주의의 주요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발상을 깔고 있다.

“DMZ는 민족의 생태공간이다”

하지만 민족상잔의 비극을 담고 있는 DMZ의 공간적 의미는 일단 민족의 화해와 해후의 장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런 점에서 그러한 해후의 장을 ‘타자’에게 내 주는 것은 그 공간의 생리에 맞지 않을 것 같다. 또한 민족의 ‘생태공간’인 DMZ에서 국제적인 ‘생태문제’를 논의하는 것도 격에 맞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DMZ에 방대한 조직을 가진 유엔기구가 들어가야 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생태환경적 기준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한 국제기구들이 DMZ 내의 잠재적인 개발축(경의선, 경원선 등)을 따라 들어오게 되면, 그와 더불어 다른 추가적인 활동들이 집적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DMZ 생태환경이 훼손될 것도 뻔한 일이다.

이 두 편의 글은 정치학적 전망으로부터 DMZ의 환경친화적 활용을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생태적 쟁점을 소홀히 함으로써 정치와 경제의 권력을 내세운 ‘DMZ 생태환경 파괴’란 역설을 초래하고 있다.
DMZ는 정치와 경제의 힘이 늘 뻗어오는 공간이다. DMZ의 환경파괴는 그러한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늘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조명래 / 단국대·도시및지역계획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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