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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는다는 것
내려놓는다는 것
  •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4.1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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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내려놓으며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갖거나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을 갖지 않거나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부와 명예, 권력과 욕망 등 거대한 가치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작아 보이는 사소한 욕심까지도 우리는 내려놓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내려놓지 않음으로써 우리 이웃이나 사회에 누가 될 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평생 교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내게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이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분한 대우를 받으며 교수직을 수행했다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교수라는 직함은 그 본래의 위상과는 다르게 상당 부분 과장돼 있다고 난 늘 생각했다. 사실 은퇴 후 명예교수라는 직함도 내게는 과분할 뿐이다.

귀농 3년 차인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찾아오고 농사일은 시작되었다. 지난해에는 사과나무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아 조금은 시무룩해 했고, 비닐조차 사용하지 않은 밭에는 온통 풀 천지라 난감하기도 했다. 사과나무 이랑엔 일부러 풀을 키워 어느 정도 자라면 베어주는 소위 초생재배를 시도하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사과나무 사이에 뿌려 놓았던 호밀이 겨울을 나고 봄이 되자 20cm 정도 자라 사과밭이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다.  

과수원 이외의 작은 밭에는 비닐 대신 풀을 베어 덮어줌으로써 잡초도 억제하고, 퇴비도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생물이 서식해 건강한 토양이 되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런데 풀을 베어 덮어 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됐다. 베어낸 풀을 최소한 10~20cm 높이로 덮어줘야 풀이 다시 나오지 못한다. 그래도 명색이 친환경 유기생태농업을 지향한다는 거대한 꿈을 내걸고 농촌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으니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년 풀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7월과 8월 두 달은 열심히 풀들과 싸우리라 단단히 마음먹기도 한다.

그런데 2년 차인 지난해에는 사과가 열매를 잘 맺지 못해 실망했고 악착같이 풀을 뜯어 잡초를 제거하려 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심초사 노력하는 이면에는 지나친 욕심이 숨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나 자신이 너무 함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2년 일찍 퇴임하고 귀농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었다. 퇴임 후 도시에서의 안락함은 물론 교수로서의 명예나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평생의 연구 대상이었던 농민이 되어 농사짓고 농촌에서 소박하게 살면서 남은 생을 살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유독 농사일에는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열매가 좀 덜 달리면 조바심이 나고, 벌레가 보이거나 잎에 이상한 반점이라도 생기면 즉각 방제하려 하는가 하면, 풀을 뽑아주거나 베어 주어야 한다는 초조감에 늘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나는 본의 아니게 귀농, 귀촌한다는 사실이 다 알려졌기 때문에 더 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교수가 농사지으러 왔다더니 요령만 피우고 농장도 엉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열심히 사과나무도 돌보고 방제도 정성껏 하고 밭농사도 환경은 물론 생태적으로 지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또한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 있다. 요령껏 적당히 농사지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매가 조금 덜 달리더라도, 벌레와 균들이 좀 먹더라도, 아니 때로는 나무 전체를 망가뜨리더라도, 고라니와 멧돼지가 사고를 치더라도 최상의 농산물을 생산해야 하고 농장운영을 잘해야 한다는 욕심 또한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친환경 생태농업을 지향하되 그 과와 실에 대해서는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또한 자연과 생태 환경의 순환이라는 섭리 앞에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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