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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잊은 ‘올곧은’ 선비정신, 초상화로 알릴 겁니다”
“한국인이 잊은 ‘올곧은’ 선비정신, 초상화로 알릴 겁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4.02 12: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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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초상화 500여점에서 ‘선비정신’ 읽어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윤상민 기자

수십 년을 피부과 의사로 환자를 만나다보니 환자 얼굴만 딱 봐도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단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상화를 수백여점 들여다보며 ‘선비 정신’을 읽어내기까지 하다니.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눌와, 2018.3)를 펴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의 이야기다. 환자의 병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1938년생이니 연륜이 더해졌다고 하더라도, 아무렴 한 사람을 보면 그 안에 깃든 정신의 건강함도 알아볼 수 있을까? 팔순을 넘긴 그를 만나 자리에 앉자마자 실례되는 의심을 첫 질문으로 던졌다. “그래서 사람을 딱 보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보실 수 있나요?” 

이 명예총장이 빙그레 웃으며 1990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지난달 작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1990년에 한국에 왔을 때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움직이는 건 한 손뿐인데다가 말도 못하고 참. 의사로서 그렇게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처음 봤죠. 그런데 호킹 박사가 김치를 연거푸 먹기에 조금 핫(hot)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타이프를 쳐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모니터에 ‘Some like it hot’이 뜹디다. 마릴린 먼로가 주연했던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감독 빌리 와일더, 1959)의 원제죠.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위트 있고 인품이 느껴지는지 참 감동 받은 경험이 있어요. 지금도 저는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 게 다 편견 때문이거든요.” 아차. 愚問賢答이다. 다시 2018년으로 돌아왔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편견’이라는 가르침과 함께.

1990년 스티븐 호킹과의 만남

피부과 의사로 또 교수를 하며 학장, 총장으로 바쁘게 지낸 그지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6·25동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난 1950년, 중학생이 된 이 명예총장. 부산에서 피란시절을 보낼 때 이마동 선생을 만난 것이다. 이마동 선생은 한국 서양화의 선구자이자 간송 전형필의 죽마고우다. “크레파스, 도화지도 없는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 화첩을 꺼내 보여주시며 이 사람이 미켈란젤로고 이 조각품이 그 사람 작품이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미술에 눈을 뜬 거죠. 훗날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최영도가 동기였는데, 나중에 그 친구도 이분 덕에 미술에 눈을 떴다고 한 걸 보면 그 분 덕을 입은 친구들이 많아요.”

고교 졸업 후 유학을 떠난 유럽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중학생 때 본 그림을 미술관에서 직접 보면서 음악, 예술에 한 발짝 더 깊은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이후 독일 뮌헨의대로 진학하며 의사로 진로의 가닥이 잡혔지만 그림은 그를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1964년, 피부과학을 가르치던 마르키오니니 교수가 예술품에 나타난 피부병 사례로 마지막 강의를 한 것은 그의 시각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가 됐다. “‘예술을 저런 시각에서도 접근할 수 있구나’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전문의 과정을 밟는 10년 동안 유럽의 수많은 미술관에 전시된 초상화들에서 피부병변을 찾는 ‘습관’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된 초상화 연구는 한국에서도 계속됐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1975년. 어느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연히 피부병변이 그려진 초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란 그는 학예실을 찾아 다른 초상화가 더 있는가 물었고, 당시 학예연구관이었던 윤용이 명지대 석좌교수는 선선히 초상화를 보여줬다. 초상화마다 다양한 피부병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금맥’을 발견한 듯 행복한 시간이었다. 조선의 태조 어진에서 발견한 사마귀부터,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보필했던 홍진이 딸기코종으로 알려진 비류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 간질환으로 얼굴에 흑색황달이 나타난 오명항의 초상화와 백반증이 나타난 유복명 초상화까지. 그는 월간 <미술세계>에 때마다 그의 발견을 기고했고, 그의 발견은 국내 미술사학계에 큰 자극을 줬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성낙 박사의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병 연구는 피부병과 초상화 모두를 알아야 가능하며, 동시에 조선시대 초상화의 사실정신이 얼마나  철저했는가에 대한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자 학제간 통섭의 귀중한 사례”라고 평하기도 했다.

일흔 넘어 미술대학원에 등록하다

이제 그의 개인적 관심사는 학문적 연구로 옮아갔다. 일흔을 넘어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등록한 것이다. 이 명예총장은 519점에 달하는 초상화를 분석했다. 책에 소개한 초상화 사례들은 두 명의 의사와 함께 선별한 것이다. 서양, 중국, 일본의 초상화와 조선의 초상화를 비교하면서 이 명예총장은 조선의 초상화만이 가진 독특한 점을 발견한다. 바로 조선의 선비들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초상화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80%정도의 초상화에 피부병이 있더라고요. 조선 시대 518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겁니다. 유럽도 바로크, 로코코 시대에 화풍이 다 다르죠. 중국은 권위와 양을 추구하고 일본은 직각과 정밀함을 추구해요. 이성계의 어진이 그려진 시기는 유럽인들이 보기엔 암흑시대인데, 군주의 얼굴에 사마귀를 그린다는 것은 서양미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승정원일기」에서 ”털끝 하나 머리털 한 가닥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다른 사람“이라고 했던 원칙을 지킨 겁니다.”

그래서 찾아낸 선비정신은? “정직함이죠.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선비입니다. 선비는 한자가 아니고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순우리말이에요. 선비들이 유약하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먼저 공부한 사람이며 생활수준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배고픈 선비들도 물론 있었지만요. 이만열 경희대 교수가 그런 이야길 한 적이 있죠. 일본은 사무라이 정신을 갖고 세계에 자랑하는데, 그보다 지적 가치가 훨씬 높은 선비정신을 너무 모르고 살고 있다고요. 저는 이것이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 오염된 것이 계속 이어져내려와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1938년 생인 이 명예총장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해방을 맞이했다. 어렴풋이나마 겪은 일제강점기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식민사관에 오염된 우리 역사를 회복하려면?

이 명예총장은 앞으로 초상화에서 읽어낸 선비정신을 알림으로써 잊어버린 한국의 정신을 되찾고자 한다. “의사를 하면서 한 번도 TV에 출현한다거나 미디어에 저를 노출하지 않았어요. 요즘은 기를 쓰고 나가요. 알려주고 싶어서죠. 우리 역사가 식민사관에 오염돼 있다는 것, 모든 것을 시원찮게 보는 태도가 안타까워요. 우리에게 이렇게 자랑스러운 정신이 있는데 말이죠.” 선비정신을 회복하려면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그의 답변이 이번에는 유럽으로 건너간다. “유럽의 시대정신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 기사도죠. 남에게 양보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거요. 기사도가 현대화된 게 신사도입니다. 우리 역시 그런 정신 없이 막 자란 사람들이 아니란 걸 말하고 싶어요. 우연이 아니고, 한 사람이 주장한 것도 아니고, 500년 동안 전해 온 그 귀한 정신이 있다는 걸, 계속해서 알려나가야겠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점에 출간한 책으로 다시 바빠지고 있는 이 명예총장은 후배 교수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천막에서 이마동 선생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게 기억납니다. 요즘 교수들이 가르치는 환경이 나쁘다거나, 장비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전 이렇게 말해요, 교수의 열정이 중요한 거 아니냐고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이마동 선생이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열정 때문이었지, 천막이라는 환경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거든요.”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때 그 열정을 잊지 말라는 조언이다. 원로가 돼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후학들에게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이 명예총장. 인터뷰 내내 밝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있었다. 어쩌면 그가 평생을 초상화에서 찾은 선비정신이 그의 몸속에 오롯이 녹아들은 것처럼 느껴졌다.

글·사진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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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부 2018-04-18 08:29:25
잘 읽어 보았습니다.
멋진 인생을 사는 분들은 인생철학이 확고해 보입니다.

최성묵 2018-04-03 07:54:30
윤상민 기자님,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많이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