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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원인은 있다
보이지 않아도 원인은 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4.0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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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책갈피_'그린챌린지 2018'(녹색사회연구소, 2018.3)

지난해 7월 안동호 상류에서 물고기 1만7천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한 제련소의 중금속 방류와 상관관계가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되는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아 이 사건은 그냥 흘러갔다. 후쿠시마의 잔흔이 여전한 데도 핵발전소 건립은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 미세먼지나 화학제품으로 인한 피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환경 문제는 원인과 결과 사이, 즉 환경 파괴의 피해나 재앙의 결과와 그런 사태를 일으킨 원인 사이의 명확하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해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991년 설립된 민간연구소인 녹색사회연구소는 지난해부터 <그린챌린지 2018: 한국환경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으며, 한 해 국내 환경 이슈와 사회적 흐름을 종합·정리하면서 주요 사안에 대한 심층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오고 있다. 최경호 서울대 교수(환경보건학과)의 「살충제 달걀에서 발암물질 생리대까지」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한다.

지난 여름부터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달걀과 생리대의 유해물질 오염 사태는 기시감을 불러온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회적 충격파가 가시기도 전에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서 우리를 또 한 번 경악케 했다. 가정과 식탁, 우리 생활의 가장 친숙한 곳에서 마주치는 화학물질의 위협, 정부의 미숙한 대응과 근시안적 문제 봉합 행태가 또 한 번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사회적인 충격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구책 마련에 나서게 했다. 가습기 살균제와 탈취제 등 생활화학제품에 독성물질이 들어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샴푸나 세제 같은 제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들, 이른바 ‘노케미’족이 나타났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필요한 제품을 ‘자가생산’하는 과정에서 더 나쁜 조합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년 하반기 우리 사회를 휩쓴 케모포비아 현상은 더 심각한 상황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이 실패했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뜻이다. ‘공포’는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내몰렸을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달걀과 생리대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안방, 식탁 등 우리의 평범한 일상조차도 유해화학물질의 악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자각이 ‘공포’로 자란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가 여기까지 왔을까?

국민의 두려움은 상식적인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에서도 유해화학물질을 피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정부와 사회 안전망에는 의지할 수 없다는 당혹스러움. 이것이 바로 케모포비아로 표출된 집단 정서의 배경이다. 케모포비아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근거가 있는 공포라면 바람직하며 오히려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고 변화를 이끌어 오는 추진 동력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화학물질 문제가 반복해 출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도, 배우고 변화시킨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떠올려보자. 금세기 최악의 생활환경 화학물질 참사로 기록될 역사적인 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지루하게 끌어왔던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제정됐고, 생활화학제품과 살생물제에 대한 특별한 제도가 만들어진 건 소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만으로 생활환경 화학물질이 안전하게 관리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예외 사례와 허점이 벌써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발생한 굵직한 화학물질 안전사고는 대부분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나타났음에 주목해야 한다. 화학물질을 제품이나 매체에 따라 부처별로 나눠 안전을 관리하다 보면 빈 구멍이 생기기 쉽다. 농장에 있는지 시장에 있는지에 따라 달걀의 관리부처가 농식품부가 되기도 하고 식약처가 되기도 한다. 기저귀와 성인용 기저귀는 생리대와 제형이나 용도가 거의 동일한 개인 위생용품이지만 소관 부처가 제각각이다. 설사 소관 부처가 다르더라도 안전관리 규정이나 기준은 동일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떤 제품은 관리 부처를 찾지 못하고 공중에 뜨기도 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랬다. 

2017년 우리 사회가 경험한 달걀과 생리대 사태는, 구멍 난 화학물질 안전망에 대한 자각이었고 화학물질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국민의 안전에 책임이 있는 정부와 기업은 미숙한 대응 또는 법적 다툼을 이어가며 상황을 벗어나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제도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체감하는 화학물질 안전 수준은 오히려 퇴보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분적인 개선으로는 부족하다. 달걀과 생리대 사태는 화학물질 관리 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가 돼야 한다. 케모포비아 현상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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