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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욕망의 조율 장치, 카지노의 매혹
[테마기획] 욕망의 조율 장치, 카지노의 매혹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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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0 14:47:45

설 연휴에 정선의 카지노에서 1억 짜리 잭팟이 터졌다. 모든 일간지는 이 뉴스를 논평 없이 보도하며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도박을 조장하는 한탕주의를 비판하지 않기는 어렵지만, ‘한탕’을 꿈꾸지 않기도 어렵다. ‘한탕’이 사회적 비판으로 모두 길어낼 수 없는 심미적 차원을 간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의 매혹은 돈을 따서 살 수 있는 물건의 현실적 매혹이 아니라, 고도로 추상화된 쾌락의 매혹이다. 도박을 하는 사람은, 노동하며 시간을 소진하고 노동의 대가로 재화를 소비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한번의 내기에 걸려 있는 무한한 소비의 가능성 때문에 내기 돈의 무한 배의 희열과 좌절을 맛본다. 몇 달, 몇 년의 공포와 희망을 한순간에 맛보는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가 도박은 사람의 일생에 여기저기 널려 있는 감정들을 한 순간에 모으는 기술이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도박엔 몇 분으로 평생을 사는 비밀이 들어있다. 도박에 대한 열정이 모든 열정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라고 말한 이도 있다.

자본주의적 운명에 도전

도박이 희열과 좌절이라는 강렬한 감정을 제공하기 위한 조건은 노동과 권태다. 엥겔스는 단순노동을 시지푸스의 수고에 비유한 바 있다. 노동은 언제나 바위처럼 피로한 노동자에게 되돌아온다. 그리고 반복되는 노동 속에 도박을 권하는 권태가 있다. 벤야민은 “공장노동은 상류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권태의 경제적 하부구조”라고 분석하며 노동 계급과 권태 계급을 구분하기도 했지만, 미슐레는 “방직공장 속에 ‘권태라는 진짜 지옥’이 있다”고 말하며 노동과 권태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내면화한 이들에게 도박은 운명을 시험하는 엄청난 도전이며, 운명과의 대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가 도박에 빠지곤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로시니와 발자크의 도박 성향도 알려져 있으며, 위대한 소설가 도스또옙스끼는 한때 가망 없는 도박꾼이었다. 그는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린 적이 많았는데, 언젠가는 결혼 반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 도박을 하고는 사흘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고 다짐하며 아이처럼 울었지만, 이튿날 자기와 아내의 모피코트를 전당포에 맡기고 도박장에 갔다. 도스또옙스끼 부부가 차를 마시며 연명해 간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이 돈을 빌려주자 그는 다시 도박을 하러 갔다.

후디아니라는 헝가리의 귀족은 도박판에서 놀랄 만한 침착함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카드 한 장에 수천 프랑이 달려 있을 때, 오른손을 왼쪽 겉옷 속에 집어넣은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겉보기처럼 냉정한 사람은 못 되었던 것 같다. 가슴에 손톱을 박아 넣은 흔적이 아침마다 손톱에 낀 핏자국으로 남아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도박꾼의 정신 상태를 약물 중독과 비교하기도 한다. 독일의 과학자 게르하르트 마이어가 카지노의 도박꾼 1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돈을 걸고 도박을 할 때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의 농도가 높아졌다. 도박의 흥분은 마약 복용을 통한 뇌신경전달물질 분비 증가에 따르는 비현실적인 행복감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도박 국가인 호주에선 일년에 국민 1인당 4백 달러가 도박 비용으로 지출된다. 호주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은 도박을 금지하는 것이란 말도 있다. 1959년 영국 왕실위원회가 ‘도박은 조절하되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한 이후에 도박은 TV, 술, 섹스, 담배와 함께 영국인의 5대 여가생활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선 26개 주가 카지노를 승인하고 13개 주가 합법화를 추진 중에 있으며, 지난해 7월에 하원에선 온라인 카지노 금지법안을 부결시켰다. 인터넷의 세계적 확산을 고려할 때 전면 금지는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도박으로 단속되는 사람은 일년에 5만 명 정도지만, 실제로 도박을 하는 사람의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다만, 도박을 하기 위해 강원도 산 속으로 몰려가는 인파가 시대의 욕망을 엿보게 해줄 따름이다. 작년 10월 28일에 개장된 정선 ‘스몰 카지노’는 국내 최초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로서 이용자는 하루 4천 명에 이른다. 67년에 인천 오림포스 호텔에 최초의 카지노가 개장되고 68년에 주한미군 대상의 워커힐 카지노가 개장된 이래, 우리나라의 카지노 정책은 내국인 전면 단속과 외화벌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근거했다. 정선에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세워진 것도 ‘석탄 합리화 정책’ 이후의 광산촌을 복구한다는 지극히 자의적인 이유에서였다. ‘사행행위단속법’에 속했던 카지노 법이 94년부터 ‘관광진흥법’에 속하게 되었고, 수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카지노 설립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도덕성’을 내세우는 법률 제도와 ‘수익성’을 내세우는 이해당사자의 대립은 합리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현실 방치하는 도덕주의

현재 정부는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 문제에 대해 “다른 지역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문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불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정책이 국민의 판단력에 대한 불신 때문인지 국민의 도덕성에 대한 경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을 불법의 영역에 방치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도덕은 행위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양상이나 결과에 가깝다. 그 관계를 뒤집은 후에 선정적으로 도덕주의적 담론을 생산하는 자들은 도덕을 핑계삼아 제 이익과 권력을 챙기는 뻔뻔스러운 자들이다”라는 김진석 인하대 교수의 주장은 카지노에도 적용된다.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은 불법 도박장 개설업자로부터 5억3천만 페소(약 1백20억 원)의 뇌물을 받았는가 하면, 네바다 주 도박감독위원회는 엄격한 회계감사로 라스베가스에서 마피아를 축출했다. 문제는 도덕성과 수익성 사이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투명하게 과세하게 할 것인가 비자금의 노다지로 활용하게 할 것인가 이다.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단언이 오히려 불신을 가중시킨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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