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22:30 (화)
생각의 프레임 견고하게 확장하려면 ‘수학’하라
생각의 프레임 견고하게 확장하려면 ‘수학’하라
  • 김재호
  • 승인 2018.03.19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연_ 고계원 고등과학원 교수(수학부)의 「세상 속의 數다」

이번엔 ‘數’다. 2018 봄 카오스 강연 ‘모든 것의 수(數)다’를 위해 국내에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모였다. 파이(π)데이였던 지난 14일 블루스퀘어에선 고등과학원 고계원 교수(수학부)가 ‘세상 속의 수다’를 주제로 첫 번째 포문을 열었다. 강연의 부제는 ‘수학적 사고의 힘’이었다. 

고계원 교수는 수학이 “단순한 것에서 중요한 것으로 확장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미적분학은 사각형이라는 기본 개념에서 확장된다. 무수히 많은 사각형을 이어 붙이면 적분이 되는 것이다. 또한 고 교수는 카오스 이론의 창시자인 푸앙카레를 인용해 “수학이란 다른 현상들에 같은 이름을 주는 예술”임을 설명했다. 다른 현상, 같은 방정식은 단조화(단순한 진동) 운동이나 단진자 운동, LC 회로(인덕터와 축전기로 이뤄진 전기 회로) 등에서 확인된다.  

2018 봄 카오스 강연 1회가 지난 3월 14일 펼쳐졌다. 고계원 고등과학원 교수(수학부)는
“수학은 언어의 일종이며 생각의 프레임을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네이버 생중계 화면 캡처 

수학적 사고가 바꾸는 일상의 이야기

강연에선 4가지의 일상 속 수학 이야기가 제시됐다. 첫째, 투표와 수학이다. 후보자 가, 나, 다가 있고 투표인원이 11명 즉 11표의 투표권이 주어진다고 하자. 만약 우선순위가 가>나>다인 사람은 3명, 나>다>가인 사람은 2명, 가>다>나인 사람은 2명, 다>나>가인 사람은 4명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1명을 선택하면 투표 결과는 가(5)-다(4)-나(2), 2명을 선택하면 나(9)-다(8)-가(5)이다. 더욱이 ‘보다 셈법(Borda Count)’으로 계산해 1등은 2점, 2등은 1점, 3등은 0점을 주면 그 결과는 다(12)-나(11)-가(10)이다. 투표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둘째, 병원 이야기다. 응급 환자가 병원에 도착했는데 심장 박동이 불규칙 하다. 환자가 자신은 갑상선 항진증이 있어서 심장 박동이 불규칙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갑상선 항진증은 심장박동을 불규칙하게 만든다. 의사들이 갑상선 항진증 약을 처방해 심장 박동을 제어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간이 망가져 심장 박동이 불규칙했던 것이었다. 이는 집합의 포함 관계 및 필요·충분조건 등으로 설명 가능하다. 증상만 보고 원인을 단정 짓기에는 심장 박동의 불규칙이 갖고 있는 이유들이 훨씬 더 많다. 만약 수학에 관심이 더 있었으면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 

셋째, 치약회사 마케팅 부서 이야기다. 현재 A회사의 점유율이 60%이고, B회사는 40%라고 하자. 그런데 A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70%, B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80%다. 충성도는 각 회사 제품 구입 후 같은 제품을 구매하는 확률이다. 즉 A회사 제품을 구입한 후 다시 A회사 제품을 구입할 확률은 70%이고, A회사 제품을 구입한 후 B회사 제품을 구입할 확률은 30%다. 이제 A회사 내부에선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6개월 후에 보면 점유율이 같아지고 점점 소멸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5년 후를 행렬로 계산해보면 점유율은 4:6이 된다. 줄어들긴 하지만 완전히 망하는 건 아니다. 

넷째, 법정 이야기다. LA 근처에서 있었던 실제 강도 이야기다. 목격자는 범인의 모습이 남자는 흑인인데 수염과 턱수염을 가졌고 여자는 노란 머리에 머리를 묶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범인들 중 일부가 노란색 차를 몰았다고 얘기했다. 검사는 그 동네에 수염과 턱수염을 가진 사람이 1/40, 노란 머리 여자가 1/3, 머리를 묶을 수 있는 여자는 1/10, 흑인과 백인이 결혼한 경우는 1/1,000, 남녀 중 일부가 노란색 차를 몰 확률은 1/10이라고 확인해,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확률은 1/12,000,000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특정 커플을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하지만 수학을 잘 하는 변호인은 이와 똑같은 조건에 다른 커플이 있을 확률이 20%라고 계산해 제시했다. 그 결과 겸사가 지목한 용의자는 풀려났다.  

고계원 교수는 ‘카오스’를 소개하기도 했다. 카오스란 초기조건에 민감한 역학게이다. 이를 방정식으로 표현하면, f(x)=cx(1-x)이다. c값에 따라 분기현상이 나타난다. 카오틱한 예는 c=4일 때 이다. f(x)=4x(1-x)이면 초기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가 나온다. 궤적의 움직임은 x=0.4일 때와 x=0.41일 때 판이하게 다르다. 즉, 궤적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카오틱하지 않은 예는 x=2일 때이다. 이때 모든 점은 1/2로 수렴한다. c의 변화는 동물의 종류로 비유된다. 예를 들어, 여우가 사는 생태계는 여우의 개수에 비례하지만, 여우의 숫자가 많이 지면 먹이가 줄고 병이 들면서 개체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띤다. 

카오틱한 분기와 그렇지 않은 예

고계원 교수는 수학에서의 나비효과를 강조했다. 작은 수학적 자극이 논리적 사고의 변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자극의 힘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수학의 과정은 문제를 생각하고, 놀이처럼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고 교수는 수학을 통해 아름다움, 진리, 公義, 놀기, 사랑을 다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패널토의에선 강순이 강원대 교수(수학과)가 나왔다. 패널토의의 주제는 수학 천재, 재능 혹은 노력일까, 수학적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법,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사람)가 늘어나는 이유 등을 논의했다. 강순이 교수는 “수학을 즐겁게 하라고 하기 보단 환경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면서 “수포자는 수학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건 아니고 포기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수학과 이별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계원 교수는 “언어는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면 수학이 필요하다”면서 “언어를 앎으로써 생각의 프레임이 잡힌다”고 말했다. 수학적 마인드가 없으면 과학을 이해하는 사고의 프레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한편, 다음엔 하승열 서울대 교수(수리과학부)가 「복잡한 세상 속에 숨어있는 질서 찾아보기」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후 2018 봄 카오스 강연에선 △리만가설 △디지털인문학과 데이터과학 △비유클리드 공간 △게임이론 △생명현상과 수학 △알고리즘 △수학에서 대통일 이론인 랭랜즈 프로그램 △컴퓨터과학의 원천 아이디어 등을 다룬다.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