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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웹에서 이어지는 축제의 물결
'문화'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웹에서 이어지는 축제의 물결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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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제1회 맑스쿄뮤날레가 열리다

에펠탑은 포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회과학서적이 꽂힌 책장 앞에서는 능청스런 도라예몽 모양의 자명종이 있고, 일상의 구석구석에는 '맑스'가 새겨져 있다.
대회장 입구에 들어서니 설치미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람 키만한 10여 개 남짓한 설치미술품들과 천창부터 드리워진 형광색의 띠는 이곳의 목적을 다시 고민하게 했다. 붉은 선글라스를 쓰고 힙합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지나친다. 머리가 희끗한 학자도 보인다. 행사장 바깥에서는 20대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세대를 가로지르며 예술과 학술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3일부터 사흘동안 이화여대 삼성문화관에서 제1회 맑스꼬뮤날레가 열렸다. 문화과학 창간 10주년 행사에 모인 진보적 지식인들이 맑스코뮤날레 준비위원회(상임대료 김수행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결성한 것은 지난 9월의 일이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및 지구화와 전면 대결하기 위한 이론적·실천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모색"이 창립취지였다. 그 후 8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눈앞에 제1회 맑스꼬뮤날레(대회장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펼쳐졌다. 쿄뮤날레는 '꼬뮨'과 '비엔날레'를 합성해서 만든 조어다.

행사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됐다. 국내 진보적 지식인 60명이 참가한 '지구화시대의 맑스의 현재성' 학술행사에서는 막대한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산업사회학회·한국철학사상연구소·문화과학·수유연구실·진보평론·역사학연구소·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등이 뽑아낸 두툼한 두 권의 책이 이번 행사의 결과물. 문화행사도 열렸다. 개막문화제 '맑스야, 놀자'와 폐막 문화제 '즐거운 혁명, 젊은 연대'가 중요한 행사로 자리 잡고, 사흘동안 학술대회장 로비는 작은 미술관으로 변했다. 1970∼80년대 걸게그림 대신 설치미술이 자리잡았고, 노동가요 대신 인디밴드가 무대 위로 올랐다. 정태춘, 박은옥으로 대표되는 민중가요 세대가 무대의 한 축을, 이름도 생소한 인디밴드 디스코트럭과 언니네이발관 등이 다른 축을 지탱했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 세례를 받은 세대와 문화과학의 영향을 받은 신세대들의 조합인 셈.  또 한가지 변화도 느껴진다. 과거에 이념이 문화를 좌지우지하려 했다면, 지금은 이념과 문화는 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강내희 부집행위원장(중앙대 영어영문학)의 말을 빌자면 "전세계적으로 학술과 문화행사를 동시에 진행한 맑스 관련 학술대회는 처음"이다. 마치 축제처럼 행사장에는 약간의 흥분과 긴장이 서려있었다. 

10여년 간의 침묵을 털고 밖으로 나온 맑스주의자들은 새로운 변화의 노선을 취했다. 죽은 줄 알았던 맑스를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것은 '문화'라는 새로운 코드였던 것. 과거에 맑스주의자였거나 현재 맑스주의자이거나 또는 이들의 의도에 공감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자리였다. 15년 전 '사회와사상'(한길사 刊)의 표지그림을 그렸던 작가 박불똥 씨는 또 한번 당시의 표지그림을 제출했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변화를 두고 맑스주의가 아니면 수용하지 않던 관점에서 조금씩 차이를 인정하는 변화를 겪었지만 적어도 "자본주의가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수 없다"라는 신념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념은 그대로인 채  그 형식만 바꾼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즐거운 혁명'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려했다. 전시장과 공연장을 가득 메운 젊은 세대들의 참여는 좌파의 흐름이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해 줬다.

8개월의 준비기간을 두고도 아쉬운 점은 많아 보였다.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원)는 "개최장소가 급하게 바뀌어 문화적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쉽다"라고 전했다. 학술대회의 발표 하나하나를 퍼포먼스로 꾸미고 싶었다는 것. 다양한 프리젠테이션과 조명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러나 염두에 두고 있던 장소를 잡지 못해, 발표자리까지 문화적인 요소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철학)는 진행 미숙과 홍보 부족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들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지금부터 시작이다. 혁명음악과 혁명미술이 가득한  인터넷홈페이지(communnale.jinbo.net)를 통해 웹상의 축제를 이어나기 때문이다. '즐거운 혁명'의 변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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