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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중심대학부터 줄세우기 우려, 비인기학과 통폐합 빌미도
연구중심대학부터 줄세우기 우려, 비인기학과 통폐합 빌미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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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경제학계와 물리학계, 대교협의 학과평가 받을 수 없다

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의 2003년도 대학 학문분야평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물리학계가 '무기한 평가 연기'를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1992년부터 시행해온 대교협의 학문분야 평가에 대해 평가 결과를 두고 공정성 시비가 있기는 했으나, 이처럼 학계가  전적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물리학과 경제학, 문헌정보학을 대상으로 평가를 시행하기 위해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2003년도 평가대상 3개 학문분야(경제, 물리. 문헌정보) 별로 1박2일의 일정으로 '2003년도 학문분야평가추진전략과정' 패키지 연수프로그램이 열렸다. 평가편람 작성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열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첫 번째 프로그램이 끝난 직후 그 자리에 참여했던 경제학 관련 교수들은 '무기한 평가 연장'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뒤이어 물리학 평가담당 교수 및 담당자 역시 평가를 거부했다. 현재 경제학·물리학 분야 교수들은 각각 '대교협경제학분야평가개선추진위원회'와 '물리학과 연합'(가칭)을 결정했다. 경제학분야 교수 일동은  '평가편람의 조속한 시정과 평가의 무기한 연기'를 요구하는 공식적인 성명서를 대교협 측에 전달한 상태이며, 물리학계는 전국 물리학과 교수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차라리 입시학원 대학순위표를 써라

올해 대교협이 발표한 학문분야 평가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변화를 보였다. 하나는 절대평가 대신 상대평가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까지 대교협은 평가점수를 절대평가해 90점 이상은 최우수, 80∼90점 미만은 우수, 65∼80점 미만은 보통, 65점 미만은 개선 요망이라는 등급을 매겼으나, 올해부터 상대평가를 적용하겠다는 것. 아직까지 정확한 상대평가 비율이 확정돼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총 6개의 평가 영역 중 교수 평가 비율을 지난 해 20%대에서 30%대로 상향 조종했다. 평가영역에 포함돼 있는 교육목표, 교육과정 및 수업 등은 어느 대학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고려한다면, 교수의 연구업적이 평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은 거셌다. 가장 큰 이유는 현행의 평가편람은 평가대상기관의 의사를 전혀 수렴하지 않은 일방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대학의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한 지방대 교수의 경우 업적이 떨어질 것은 분명한데 이에 대한 완충장치는 하나도 없었던 것. 한 물리학과 교수는 "이 기준으로 평가하면, 종로학원에 있는 대학순위표와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기존의 대학 서열을 다시금 확인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말로는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으로 특성화시킨다고 해놓고, 평가 기준은 연구중심대학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지방대에 유리한 항목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지방대에서 학생 한 명을 취직시키기가 서울 유명 사립대 학생 여러 명 취직시키는 것보다 어려운데, 진학·취직 학생 수로만 평가하면 어쩌느냐"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뿐만 아니었다. 물리학과 연합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명화남 전남대 교수(물리학)는 "지방의 군소 사립대의 물리학과 교수들은 이번 평가를 통해 오히려 통폐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한다"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발전을 위한 연구평가가 오히려 기초학문의 위기, 지방대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명 교수는 "평가를 통해 지원이 부족한 대학에 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등 대학별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없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평가편람 작성에 따른 과중한 업무 부담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경계학과 교수들이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평가에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문서 및 통계자료를 요청하고 있다"라며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육담당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고 결국 줄세우기 식 언론 홍보용 자료를 만들기 위한 평가 작업이 대학발전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상대평가를 위해 지난해보다 준비해야 할 자료가 늘어났다.

"나이 많은 교수는 평가 작업에서 빼라?!"

좀더 근본적으로는 대교협의 평가방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경제학계의 성명서는 "연구업적 평가 기준이 현재 경제학의 다양한 발전 경향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경제학 평가 편람에 따르면 미국 주류경제학의 유명저널 8종에 게재된 논문에 대해서는 8점을 부여하는 반면, 학진 등재학술지에 대해서는 2점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미국 '주류' 경제학만을 지향하는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평가대상 대학을 연구중심대학, 교육중심대학, 수도권대학, 지방대학 등으로 범주화해 복수의 기준으로 평가할 것과 평가 방식은 상대 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해야한다고 주장해싿. 명 교수 역시 "현재 물리학계 내에서도 절대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라고 말했다.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교수는 "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교협 관계자와 초빙 강사의 고압적인 태도가 이번 사태를 극단적으로 몰게 된 한 원인"이라고 귀뜸하기도 했다. "사회성이 부족한 대학교수들이 이 기회를 협동성을 늘리는 기회로 활용하라", "나이 많은 교수들은 평가 편람 작업에서 제외하라, 일을 하지 않는다", "평가팀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과 교수들이 모두 대기했으면 좋겠다", "평가팀 방문시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을 준비하라"는 등 연수프로그램 중 터져나온 발언들을 들을 때마다 황당함을 넘어서 수치스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대교협의 평가에 대해 일정정도의 불만이 있었던 교수들에게 이런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이같은 평가 거부 사태에 대해 이현청 대교협 사무총장은 "그동안 국정감사마다 대교협의 평가가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각 대학의 교육 여건과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평가를 보다 강화시키고 상대평가를 실시한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 사무총장은 "현재 상대평가 실시, 평가 항목의 가중치 비율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 중에 있으며, 평가의 목적에 맞게 교수들의 의견 중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고 지나친 요구사항은 조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교협은 6월에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평가 기준 개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경제학·물리학 관련 교수들이 요구하는 주장은 동일하다. "현행과 같은 평가편람으로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 거꾸로 말하면 현행의 평가편람이 수정되면 다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지만 타협점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학계에서는 평가방법의 전면적인 수정을 요구하지만, 대교협 측은 부분적인 수정은 가능하지만 전면수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발전을 위한 평가 강화'인가, '대학서열화 심화시키는 줄세우기'인가, 평가에 대해 대교협과 학계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지금 조속한 창구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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