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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능력에 따른 균등교육’의 함정
헌법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능력에 따른 균등교육’의 함정
  • 강승규 우석대 명예교수·교육철학
  • 승인 2018.03.05 1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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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헌법 31조 1, 4항 개정을 제안하며

우리는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교육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학생은 정치이야기를 하면 안 되며 교사가 수업시간에 정치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 말이 옳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도 정치가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가 모든 힘의 원천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활동에서는 정치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독재에 항거하며 비판하는 지식인들을 국가보안법으로 묶어서 간첩으로 몰아 감옥살이를 시켰고 심지어는 사형을 시켰던 암울한 시절이 우리에게 있다. 이런 처참한 불행을 경험하면서도 교육활동에서는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 했다. 교육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 조항 때문이었다.

이렇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헌법은 곧 집권정치가들의 정치행위가 아무리 부당하더라도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정치가 바로 나의 삶을 부당하게 짓밟고 정치적 소신과 정의를 탄압하더라도 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므로 정치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선생님들이 가르쳤다. 물론 정치적 중립성의 피해를 주장하는 말에는 교사가 자신의 물리적 권위를 이용해 그의 정치적 소신과 입장을 강요하는 교실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옹호하자는 말은 아니다.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중학교 사회교과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입후보자들이 내놓은 선거공약을 학생들이 찬반으로 나누어 각자 자신들이 분석해 토론하고 이를 학교 신문에 게제하며, 또 더 발전된 의견을 그 지역 신문에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나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 바로 ‘사람존중’이다. 사람존중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것은 나의 생명이 소중하고 또 나의 생각을 정당하게 표현하여 지킬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 내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실현된 곳에서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일상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나의 중요한 정치에 관한 생각을 표현할 수도 없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나의 정치적 견해를 억누르고 있어야 한다면 과연 ‘사람존중’이란 소중한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는 헌법 31조 4항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재검토해야 할 이유다. 

독일에서는 진보정치가와 보수정치가들이 협약을 체결해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찬반 토의를 하여 상호 다른 입장을 확인하고 그것을 존중할 수 있도록 협약함으로써 건전한 민주적 정치 풍토를 조성할 수 있게 한 일이 있었다(보이텔스바흐(Beutelsbach)협약: 1976년 바덴-뷔르템베르그의 정치교육의 최소조건을 협약해 정치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제거함으로써, 교육을 통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 강제주입 금지, 정치교육에서 정치논쟁을 허락하고 정치행위를 허락한 사례가 있음). 

우리가 문화선진국에 진입해야 할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다면 헌법을 개정하면서 서로 다른 정치적 노선 때문에 대립 갈등하고 싸울 일이 아니라 터놓고 토론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고 건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숙된 사회를 만들 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차제에 헌법 개정을 하면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관한 문제점을 손질할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헌법 31조 1항에 있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을 재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는다고 했을 때에 실질적으로는 학생의 능력에 따라 사람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내포하고 있는 조항이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에서는 중요한 면을 간과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의 가치’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인, ‘사람존중’이란 말에는 사람이 지닌 능력 이전에 사람이므로 지니고 있는 숭고한 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가치가 있다. 능력 이전에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존중하는 일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셈이다. 능력에 따라 균등한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을 때는 ‘사람의 가치’를 앞세우는 것보다는 능력을 앞세우겠다는 뜻이 드러나 있다. 아마도 이는 시급한 국가건설을 위해서 사람보다 능력을 앞세운 가치관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 대목이다. 우리에게는 사람보다 능력을 공공연하게 중요하다고 강조한 시절이 있었다. 지하자원이 부족하므로 우리는 사람을 자원으로 간주하고 인적자원을 개발할 것을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내걸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적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기적을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불행한 기적이 있으니, 바로 그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안목을 간과’하고 능력과 실력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학교는 이런 국가의 정책을 충실히 수행한 곳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 교실 수업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풍토’가 망가졌다. 이제 이 소중한 가치를 살려내야 한다. 그래야 학교에서 버림받는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기본틀을 갖게 된다. 

내가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존중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믿고 아끼고 존중할 수 있을 때에 나는 비로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민주주의에서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존중’이란 존엄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기본 소양을 내가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을 바꾸어, 모든 학생들은 자신만이 지닌 빛깔(소질과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바르게 고칠 것을 제안한다. 

외국의 예로서 독일 헌법에서,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스위스 헌법에서, 교육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며 보호하고 아동 및 청소년은 특별히 온전한 보호를 받고 그 성정발달을 지원받을 권리를 가지고 아동 및 청소년은 그 판단능력의 범위 내에서 권리를 행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적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서 건전한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제안: 헌법 31조 1항과 4항을 다음과 같이 바꿀 것을 제안한다. 
1. 1항 개정안: 교육활동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으며 모든 어린이와 학생은 자신의 생명과 존엄성을 누리며, 자신만의 소질과 재능(빛깔)을 키울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국가는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이를 보장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현행 헌법 31조 1항: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2. 4항 개정안: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 현행 헌법 31조 4항인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보장된다’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삭제할 것을 제안한다.

 

강승규 우석대 명예교수·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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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병수 2018-03-05 15:53:39
같은 맥락으로 정부개헌안 수립을 위한 국민헌법 사이트에서 의견을 올렸습니다.
[내가 제안하는 안건] 교육기본권 더욱 확대되어야 합니다.
https://www.constitution.go.kr/main/caViewFree?number=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