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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선출의 ‘방식’보다는 ‘원칙’을 고민해야죠”
“총장 선출의 ‘방식’보다는 ‘원칙’을 고민해야죠”
  • 한태임 기자
  • 승인 2018.02.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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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회를 찾아서 _ ⑤ 이선희 이화여대 교수평의회 의장

2016년의 마지막 달, 이화여대 교수평의회는 ‘폭풍’ 속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 및 국정농단 사태로 문제가 된 최경희 전 총장이 2016년 10월 사퇴한 뒤로 이화여대 총장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었다. 행정 공백이 장기화 됐지만,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하는 총장을 선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화여대 교수평의회가 ‘총장후보 선출 권고안’을 마련하는 임무를 부여받고 2016년 12월 19일 공식 학칙기구로 출범하게 됐다. 이화여대 교수평의회 ‘초대 의장’을 맡은 이선희 교수(의학과)를 지난 8일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의장은 지난 2016년 이화여대 교수평의회가 구성원들의 기대와 관심이 높은 분위기에서 출범했다고 회상했다. “최경희 전 총장의 사퇴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고조된 시점에서 구성원들의 관심과 지지를 바탕으로 출범을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기대를 안고 출범을 했기 때문에, 그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압박감도 컸지요.”

이화여대 교수평의회는 총장직선제를 골자로 한 총장후보 선출 권고안을 전체 교수총회에서 의결, 제안했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의 입장 차이가 상당해 오랜 갈등과 진통 끝에 선출 절차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김혜숙 교수(철학과)가 제16대 총장으로 선출되면서, 이화여대는 개교 131년 만에 첫 직선제 총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총장직선제를 치른 이화여대 교수평의회는 그날의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의장은 만족감과 아쉬움이 교차한다고 답했다. “‘총장직선제’라는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이 학교 거버넌스에 관심을 갖게 됐으며, 학내 현안에 대한 소통도 이전보다 나아졌습니다. 구성원들의 주인의식을 높이는 데도 긍정적으로 기여했고요.”

선거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한 것이 특히 직선제의 폐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이화여대는 구성원들의 정책토론회를 온라인으로 공유해 비교·검토할 수 있게 했고, 자료를 모두 디지털화했다. 이는 소모적이고 과열될 수 있는 선거 양상을 이성적으로 만드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총장직선제가 추진될 경우 ‘캠퍼스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컸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선거 운동을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다른 학교의 총장직선제보다는 좀 더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진행될 수 있었죠.”

이화여대 구성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총장직선제. 그러나 이 의장은 총장직선제의 ‘단점’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하는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총장직선제였는데, 모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책임감을 갖고 후보를 탐색하지는 않는 문제가 있더군요. 포퓰리즘의 문제도 야기됐고, 난립한 후보를 피상적인 정책 소견만으로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요. 무엇보다 실현성 없는 정책 공약으로 기대를 높여 놓고 이를 실행하지 않아 구성원들에게 실망감을 주는 문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총장선거 지분을 놓고 과열된 양상을 보인 것도 이 의장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화여대는 구성원(교수·직원·학생·동창) 간 지분율을 놓고 이견이 많아 14회에 걸쳐 ‘4자 협의체’라는 연석회의를 거치기도 했다. 이 의장은 이를 ‘제로섬 게임’에 비유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조정되기 어려운 제로섬 게임이 ‘합의 테이블’에서 해소될 수 있는지, 나아가 총장후보 선출문제가 본질적으로 지분합의를 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물론 구성원들의 인식을 교류하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목표와 기능은 일반 조직과 다르기 때문에, 리더 선출 역시 구성원들의 의견을 ‘양적인 민주성’으로 환치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총장직선제가 화두지만, 이 의장은 총장직선제가 반드시 답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학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대다수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직선제에도 폐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총장선출 ‘선거 방식’에 대한 고민보다는 ‘원칙’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인적 교체’보다도 선거 이후에 지속적인 견제·감시 장치를 작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화여대 교수평의회는 구성원의 의견을 잘 담아내면서도 책임 있는 대리인들이 후보를 검증할 수 있는 총장선출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해나갈 예정이다.

이 의장은 상반기 총장후보 선출에 집중하다보니 학내 교수님들의 현안을 챙겨드리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았어요. 교수들의 입지가 과거보다 많이 어려워졌잖아요. 현실에 맞지 않는 평가에 시달리고 권익을 침해 받고 있으니까요. 총장 선출이 우리 교수평의회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이제는 교수들에게 ‘교수평의회’가 어떤 의미가 있는 조직인지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야만 교수평의회가 교수들의 지지를 많이 안고 갈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교수들을 대변하는 ‘대의 기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는 계획이다.

이 의장은 오는 2월 28일자로 임기가 끝난다.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기에 소회도 남다를 터. 그는 교수평의회 출범 당시 동료 교수들이 보여준 지지와 성원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감사의 말을 건넸다. “열악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건, 동료 교수님들의 열정과 지지였습니다. 교수님들의 응원과 사랑 속에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껏 교수님들이 보여주신 전폭적인 지지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다져가느냐가 이화여대 교수평의회의 향후 과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태임 기자 hantaei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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