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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nch paradox’의 주인공
‘French paradox’의 주인공
  • 교수신문
  • 승인 2018.02.0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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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93. 포도
포도. 출처=두산백과사전
포도. 출처=두산백과사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시인의 ‘靑葡萄’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누나! 고등학교 때 읊었던, 고향(조국)의 그리움을 담고 있는 시가 아니던가. 李陸史(1904~1944)는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시인으로, 이국땅 베이징교도소에서 생을 마쳤다한다.

청포도(white grape)는 포도나무 일종의 열매로 다 익어도 연두색을 띠거나, 덜 익어 연둣빛을 띄는 포도를 말한다. 보통포도보다 특유의 풋내 섞인 향(머스캣 향)이 나며 다디단 청포도는 백포도주용으로 쓰인다.
포도屬에는 60여 종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종으로는 지중해, 서아시아(近東),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일 것으로 추정하는 유럽포도(Vitis vinifera)와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미국포도(V. labrusca) 및 그 둘의 교잡종이다. 최근에는 지베렐린(gibberellin)처리로 씨 없는 포도도 많이 만든다한다.

포도나무(grapevine)는 포도科의 다년생낙엽덩굴식물로 넝쿨길이 3m내외지만 가지치기(剪枝)하지 않고 두면 16~20m까지 자란다. 줄기는 단단해 지팡이로도 쓰고, 그리스나 인도 등지에서는 포도새싹을 채소나물로 먹는다.

암수딴그루 또는 암수한그루로 잎은 마주나고, 9~28cm 정도로 잎자루(葉柄)가 발달 했으며, 가장자리에 톱니(鋸齒)가 난다. 줄기가 변한 덩굴손(tendril)으로 다른 물체를 돌돌 감아 올라가고, 잎사귀뒷면에는 흰색털이 있으며, 나무줄기껍질(樹皮)은 적갈색으로 세로로 길게 갈라져 벗겨진다.

꽃은 노란빛을 가진 녹색으로 5~6월에 피고, 잎과 마주나며(꽃은 잎이 변한 것이라 함), 꽃잎과 수술은 5개씩이고, 꿀샘이 있다. 열매는 구시월에 익고, 주렁주렁 열린 포도 한 송이에는 50여개의 알이 빽빽이 틀어박혔다. 열매껍질(果皮)은 짙은 자줏빛을 한 검은색, 붉은색, 노란빛을 띤 녹색 등이 있고, 열매는 둥근 것과 타원형, 양 끝이 뾰족한 원기둥모양의 것 등 갖가지다.

포도는 과육과 액즙이 가득하고, 속에 씨가 들어 있는 과실(漿果)로 열매가 익으면서 당분이 늘고 산이 준다. 영근 열매에는 단당류인 포도당(glucose)과 과당(fructose)이 15~25%가 들었고, 향미를 내는 여러 유기산이 있는데 주석산(tartaric acid)과 사과산(malic acid)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 종류의 안토시아닌(anthocyanin)과 타닌(tannin)들이 들었다.

포도나 사과들의 과일껍질에 안토시아닌(花靑素)이 많은 것은 열매세포를 자외선에서 보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항산화작용을 하여서 노화를 늦추고, 시력회복에도 도움을 줄뿐더러 여러 약효가 있다한다. 때문에 꾹꾹 씹히는 것이, 당최 찝찝하고 껄끄럽더라도 사과를 껍질째 먹으라는 것이고, 포도도 껍질과 씨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것이 좋다.

그리고 포도에는 포도당이 듬뿍하여 피로회복에 좋고, 여러 비타민이 많아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며, 칼슘·인·철·나트륨·마그네슘 등의 무기물도 많다. 또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이라는 항암, 항산화성분이 수북이 있다.

예부터 유럽에서도 포도 잎의 즙을 피부병이나 눈병에 썼고, 풋 포도는 출혈·소염·치질에, 익은 것은 암·콜레라·천연두·구토·콩팥이나 간병에, 건포도는 결핵·변비·갈증에 이용했다한다.

포도는 날로 먹고, 건포도·포도주(와인)·주스·젤리·식초용으로도 쓰며, 포도씨앗(기름)에 여러 식물화학물질(phytochemicals)이 들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포도의 71%가 와인용으로 쓰니 열매껍질이 붉거나 자주색인 것은 적포도주(red wine)를, 누르스름하거나 녹색인 것과 껍질을 벗긴 포도로 백포도주(white wine)를 만든다.

‘프랑스인의 역설’(French paradox)이란 말이 있다. 프랑스인들이 고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을 먹는데도 공교롭게 적포도주를 많이 마셔서 심장질환사망률이 영 낮은 것을 말한다. 말인즉슨 적포도주가 혈소판응집을 막고, 혈관을 확장시켜 순환작용을 돕는다는 것이다. 어느 술이나 많이 마시면 해롭지만 적량이면 약이 된다. 술만 한 약이 없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葡萄糖(glucose, C6H12O6)이란 ‘포도에 든 당’이란 말이다. 단당류인 포도당은 식물과즙이나 동물혈액에 있고, 급할 때 포도당주사를 맞는 것처럼 에너지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동물성녹말인 글리코겐과 식물녹말, 섬유소(cellulose) 등도 일단 포도당으로 소화(분해)돼 미토콘드리아에서 세포내 호흡하여 곧장 에너지를 낸다. 또‘glucose’는 그리스어로 달다(sweet)는 뜻의 glyk과 당(sugar)을 뜻하는 ~ose가 결합한 말이다.

그리고 곶감에 핀 하얀 분은 감이 마르면서 배어나온 포도당이 굳어진 것이고, 말끔한 포도알맹이에 묻은 희뿌연 가루는 자연효모(natural yeast)다. 그래서 포도를 으깨고 짓이겨 그냥두면 알코올발효를 시켜 포도주가 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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