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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셰익스피어의 유작 「템페스트」
한복 입은 셰익스피어의 유작 「템페스트」
  • 윤상민
  • 승인 2018.02.05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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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산국악당 2018 첫 기획공연
「템페스트」 공연장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템페스트」 공연장면. 사진제공=서울남산국악당

가락국의 질지왕(송영광 분)은 동생 소지(이신호 분)의 배신으로 왕좌를 뺏기고 딸 아지(유재연 분)와 함께 쫓겨난다. 외롭게 살아오던 중 신라의 자비왕(정진각 분) 일행이 탄 배를 태풍을 일으켜 난파시킨다. 질지왕은 복수를 꿈꾸지만 그의 딸 아지는 자비왕의 아들 세자(김봉현 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의 사랑은 이뤄질까?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연극계의 거장 오태석 연출이 3년 만에 서울남산국악당으로 돌아왔다.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영국의 자존심,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템페스트」를 삼국유사 속 이야기로 각색한 오태석 연출. 이번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을 셰익스피어 원작 속 인물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가 가락국의 질지왕, 나폴리의 왕 알론조는 신라의 자비왕이고, 동생 안토니오는 소지다. 비운의 사랑에 빠지는 미랜더는 아지요, 그녀를 사랑하는 퍼디난드는 세자다. 괴물 에어리얼은 한국 무속신앙의 액막이 인형인 제웅(정지영 분)으로 각색됐다. 오 연출은 얽히고설킨 원작 속 관계를 화해의 메시지를 담은 따뜻한 ‘가족음악극’ 형태로  재구성해 각색까지 손색이 없음을 증명했다.

지난 1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린 「템페스트」 언론간담회에서는 오 연출을 비롯해 윤성진 남산골한옥마을 총감독, 한덕택 예술감독이 참여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새로운 연출적 시도를 통해 변화를 주는 것으로 유명한 오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는 어떤 차별점을 뒀을까?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한 점은 450년 전 셰익스피어의 숨결을 21세기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는 “영국의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셰익스피어가 작품 속에 깔아둔 무수한 보석을 찾으려 평생 동안 작품을 읽었다”며 “이토록 뛰어난 분, 거장이 마지막 작품에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는지, 어떤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거기에 다가가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3년 전과 달라진 건 무엇일까? “단순해졌다는 거죠. 더 어려졌고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이 작품은 조금 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어요.” 오 연출의 대답이 의미심장하다.

「템페스트」는 남산골한옥마을 서울남산국악당의 2018년을 여는 첫 기획공연이다. 극의 진행 속도가 빨라 몰입도가 높다. 배우와 무대와 여백이 잘 어우러져 꽉 차는 느낌을 주는 데다 굿, 전래놀이, 판소리 등 민속적인 요소가 아름다운 한복 무대의상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인류보편의 감정인 사랑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인지 오태석의 작품인지 헷갈릴 정도. <The Times>가 이 작품을 일컬어 “이것은 한국이며 동시에 셰익스피어다”라고 극찬한 표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기에 지난해 보수공사를 마치고 새단장한 302석 규모의 크라운해태홀까지 가세했다. 오 연출의 표현을 따르자면 무대와 관객 사이에서 우리말의 전달과 숨쉬기가 가장 좋은 규모란다. 이번 주말에는 한복을 입은 셰익스피어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2월 21일까지.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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