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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큐리언의 후예, 튜더 왕조가 사랑한 음식은?
에피큐리언의 후예, 튜더 왕조가 사랑한 음식은?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8.01.22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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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13. 죽음보다 깊은 유혹: 달콤한 맛

“Life is bitter, and love is much more bitter. Hence we need sweets.”

나는 단 것을 좋아한다. I love sweeties. I love sweet things. 잘 익은 멜론이 좋고, 물 뚝뚝 떨어지는 국산 배맛을 사랑하고, 연하고 보드라운 감촉의 홍시에 전율한다. 중국 사람들이 홍슈(紅薯, 붉은 감자)라 부르는 고구마 구이(군고구마) 앞에 침을 흘리고, 잘 우려낸 질 좋은 스리랑카 홍차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시며 행복해 하고, 무더운 여름날 얼음 띠운 냉 설탕물 원샷으로 짜릿함을 느낀다.

 

셰익스피어가 애용했던 형용사

뻬쩨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뻬쩨르부르크(Peter 대제의 도시라는 뜻) 시내 ‘백치(The Idiot)’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맛 본 순수 초콜릿만을 녹인 핫 초콜릿은 내 생애 가장 맛있는 명품이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바보처럼 다시 그곳에 가려한다. 성 이삭 광장과 유수포프 궁 사이 운하를 낀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백치라는 상호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도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yevsky)의 소설 제목에서 가져왔다. 이 발음하기 까다로운 러시아 이름을 영어로 전환하면 Theodore Michael Dostoev-son이 된다. 가문을 나타내는 姓의 기원은 지명에 있다. Dostoev는 벨라루스(Belarus, 백러시아)의 소읍이다. 이 위대한 작가의 조상들이 그곳 출신인 것이다.

‘백치’ 카페의 운치와 베네치아 광장의 안정된 ‘카페 플로리안’의 정취는 묘하게 닮아 있다. 플로리안 역시 근사한 핫 초콜릿이 메뉴에 올라있지만 맛은 바보 카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옥외 회랑 좌석에 앉아 커피든 핫 초콜릿이든 ‘멋진 맛’을 음미하며 아름다운 베네치아 광장을 내다보면 달콤 살벌한 음식의 역사와 인간의 문화가 그려진다. 커피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 그래서 무수한 문인, 예술가, 지성, 귀족, 정치인, 성직자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명소, 여기서 마시는 커피는 그 자체의 맛을 보기 전에 이미 전승된 전설로 마시는 것이다. 그걸 환상적인 커피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커피를 쓴 맛으로만 즐겨야 되는 줄 아는데 커피 맛의 진수가 달콤함에 있다면 놀랄 사람 많을 것이다.

중세 유럽은 스윗트함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달콤함에 매료되다보니 가정도 달콤해야 했고(Home Sweet Home), 말도 달콤해야 좋고(sweet talk, 듣기 좋은 말, 사탕발림), 남자도 sweet guy가 마음에 들고, 사랑도 sweet하길 바라고, 미소도 상냥하게 sweet, 방년 16세, 꽃다운 나이 17세는 sweet sixteen(seventeen)이며, 좋은 성격은 sweet character, 술도 달착지근한 sweet wine이 아름답고, 물 역시 sweet water라야 소금기 없는 淡水 물다운 물로 대접 받고, 버터도 무염의 sweet butter라야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재즈 음악도 느릿하고 달콤해서 녹아드는 맛이 있는 sweet jazz가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hot jazz 보다 은근한 매력이 있고, fresh milk가 맛있는 sweet milk인 법이다. 맛있다는 건 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상의 식품은 달아야 한다. 이래서일까? 셰익스피어가 좋아한 형용사 중 하나가 ‘sweet’였다.  

구증구포의 전통 덖음 방식으로 만든 우리나라 수제 녹차-그걸 찻잎이 참새 혀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해서 흔히 雀舌茶라고 부른다-가 세계 최고의 명차라고 내가 품평하는 이유는 목넘김이 좋기 때문이다. 단맛이 느껴지는 목 넘김, 차를 마시고 난 뒤의 여운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물론 초의선사처럼 차맛의 진수를 苦味(쓴맛)이라고 하는 이들도 많다. 이는 맛이라는 것이 취향의 문제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영어 sweet를 우리말로는 ‘달다’라고 하고, 한자로는 ‘甘’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甘酒를 어린 시절엔 단술이라고 불렀다. 香肉은 단고기를 가리킨다. 또 단고기는 狗肉(개고기)의 맛진 표현이다. 여기에 사람이 개고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인과관계가 드러난다. 개고기는 달다. 단고기는 향기로운 맛을 지녔다. 향기로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치명적 아름다움이다.  

 

甘의 갑골문 분석

‘달 甘’이라는 한자의 초기형인 갑골문을 보면 “‘입 口’ 안에 선을 하나 그어서 음식을 입에 물어 끼운 모양을 나타내어 혀에 얹어서 단맛을 맛본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참외는 甘瓜(단 오이)인고로 단맛을 선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역을 甘藿(콩잎 곽)이라 하는 것은 그 맛이 달착지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슬맛도 甘露 즉 단 이슬이니 高山이든 孤山이든 산간에 내리는 맑은 이슬은 단맛 감도는 참 이슬이다. 양배추는 우리 배추에 비해 달다. 그래서 양배추를 달콤한 콩잎의 이미지에 맞춰 甘藍(쪽풀 람)이라 부른다. 살지고 맛있는 고기는 甘肥(살찔 비)라고 한다. 때에 알맞게 내리는 비는 甘雨요, 고구마는 감저(甘藷, 달큰한 마) 또는 감서(甘薯, 사탕수수)라 부르고, 甘泉은 물맛이 좋은 샘이다. 물맛이 좋은 건 단맛 때문이다. 甘食은 맛있는 음식으로 美食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단맛 만세, 단맛 윈(win)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은 첫 키스의 추억을 날카롭다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꼭 첫 키스가 아니더라도 달콤한 입맞춤, 감미로운 첫 키스라고 말함으로서 입맞춤의 맛이 甘味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맛은 단맛이라고 단언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단맛에 대한 열정도 이해 가능한 현상이다. 따라서 내가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쏠림이다. 이제 음식의 역사에서 단맛의 추구가 어떤 욕망의 음식을 만들어 냈고, 어떤 음식 문화를 이뤄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천일의 앤은 아들 낳기를 소망하였다. 튜더왕조의 영국 왕 헨리 8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이혼을 금하는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만의 독자적 종교 Anglican Church(성공회)를 성립케 한 여인이 바로 시녀 앤 불린(Anne Boleyn)이다. 사실 헨리 8세에게는 앤 불린을 포함 부인이 여섯 명이었다. 그녀가 스페인 출신 왕비 캐서린(Catherine of Aragon)을 대신해 헨리 8세의 새로운 왕비이자 부인이 되어 영욕의 삶을 산 기간(1533.6.1~1536.5.19)이 채 삼년이 안 돼 사람들은 그녀를 천일의 앤이라고 부른다. 바라는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을 출산하자 극도의 절망감에 그녀는 갓 태어난 딸을 죽이려 시도했다. 결국 남편인 헨리 8세는 그녀를 참수형에 처하도록 한다. 그 때 죽지 않고 살아난 딸이 오늘날의 위대한 영국을 있게 한 엘리자베스 1세다.

어미가 돌보지 않는 배다른 여동생의 보모 노릇을 한 건 축출된 캐서린 왕비의 딸 메리였다. 원망스런 아버지 헨리 8세 사후 이복동생 에드워드가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메리가 곧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된다. 왕좌에 오른 그녀가 무자비한 보복과 숙청을 한 건 인지상정의 측면에서 십분 이해가 간다. 가톨릭을 부활하고 성공회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300여명을 처형한 그녀는 후일 ‘Bloody Mary’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선홍색 아름다운 빛깔의 칵테일 이름으로도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앤은 단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당시 설탕은 수입품이라 귀하고 비쌌지만 왕비인 그녀에게는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단 것을 좋아했다고 해서 다이어트에 관심이 없다거나 그래서 뚱보가 되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건 물정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각별히 사슴고기(venison)를 좋아했다고 전한다. 헨리 8세가 구애를 하려고 할 때 너무 앞서가는 것이 못마땅해 앤이 왕의 러브 레터에 답도 안 하자, 왕이 사슴고기와 보석을 보내 마음을 풀게 했다고 하니, 그런 연유로 사슴고기는 그녀에게 있어 왕의 사랑 혹은 구애의 상징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 수 있다.

앤의 단 음식 사랑을 직접적으로 입증할 자료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를 가졌을 때 앤이 朝臣들이 있는 자리에서 왕에게 사과가 먹고 싶어 죽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그녀가 사과를 특별히 좋아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건 아마 변덕스런 입덧의 영향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왕실 연회 시 세 코스 식사에 포함된 음식을 통해 튜더 왕실이 어떤 음식을 선호했고 당과류는 어떤 것들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다. 그를 통해 앤의 음식 취향도 짐작할 수 있다. 앤과 헨리 8세가 처음 만났을 때 앤은 동료 시녀 몇 간과 함께 매우 맛있는 ‘Maids of Honour’ 타르트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에 헨리 8세의 시선이 꽂히고 앤은 불붙은 남자의 조급한 마음을 간파했다.

 

단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영국 최초의 여왕

튜더 왕조의 연회 식탁에는 코스마다 여러 가지 음식이 제공됐다. 이를 테면, 제1코스에서는 삶은 고기가 제공되고, 두 번째 코스 때는 로스팅하거나 구운 고기 요리가 서빙됐다. 둘 다 메인 코스다. 세 번 째 코스는 황홀한 단맛의 향연이다. 온갖 종류의 눈깔사탕은 물론 (초콜릿, 봉봉, 캔디, 캐러멜 같은) 사탕과자, 여기에 기가 막히게 단 과일 설탕 절임과 웨하스를 먹으며 중세 유럽인들이 좋아하던 히뽀크라스(Hippocras)라는 이름의 향료를 첨가한 와인을 마신다. 과일 파이와 달콤한 케이크도 있다. 왕과 귀족들은 와인을 마시고 상석에서 멀리 떨어져 앉은 인사들은 맥주의 일종인 에일(ale)이나 미이드(mead)라는 꿀술을 즐겼다. 이만하면 단맛에 푹 빠진 영국이다.

또 한 가지. 앤이 죽고 왕조가 스튜어트 가문으로 바뀐 뒤 스튜어트 왕조 마지막 군주였던 동명의 앤 여왕 등 왕과 왕비들의 식사를 담당했던 왕실 요리사 패트릭 램이 쓴 『왕실의 요리법』(1710)에 소개된 왕실의 여름 정찬 메뉴를 보면 당시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먹어도 엄청 먹고 단 식품 또한 굉장히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정찬 상차림을 두 번이나 할 정도였으니 튜더 왕가의 인물들은 맛있는 것에 ‘오지게’ 심취한 에피큐리언들(Epicureans)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성대한 식사가 1517년 5월 31일의 사치금지령(The Sumptuary Law)에 의거한 것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전에는 막무가내로 탐식을 했다는 얘긴데…. 사치금지령은 신분에 따라 한 끼 당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요리 수를 제한했다. 추기경은 9개, 공작과 후작, 백작, 주교는 7개, 하위 귀족은 6개, 연간 40~100 파운드의 수입이 있는 신사 계층은 3개….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왕과 왕비는? 아마도 아래에서 보듯, 사슴고기를 메인 디시로 한 1차 식사로 10가지 요리를 먹고 나서 그래도 미흡한지 아님 물리지 않는 건지, 다시 차려진 일곱 가지 음식의 2차 식탁에서 열정적인 식욕을 충족시킨다. 이들은 크림을 친 타르트와 얼음 사탕과자 따위의 달콤한 디저트를 후식으로 즐기고 마지막으로 샐러드를 먹는 것으로 긴 여름날의 징한 식사를 마무리한다. 왕과 그 일가는 도대체 어떤 요리를 먹었을까?

 

첫 번째 상차림

베스트팔리아(Westphalia, 독일어로는 Westfalen. 독일 북서부, 꼴로뉴 동북 지방)産 햄과 치킨, 생선 비스크(Biysk, 진한 크림수프), 사슴 허벅지 살 구이, 사슴 고기를 넣은 파이, 가금류 구이, 사슴 내장을 다져 넣은 파이, 치킨 프리카세(fricassee: 닭고기, 송아지, 양고기 등을 잘게 썰어 버터에 살짝 구운 다음, 야채와 같이 끓여 white sauce와 함께 먹는 요리), 라드(lard, 고농도 식용기름)를 발라서 구운 칠면조 요리, 플로렌스 식 아몬드 요리, 최신 유행의 쇠고기 요리  (김안나의 『서양음식에 관한 사소한 비밀』 참고)

사슴 고기를 굽고 파이로 만들고 내장까지 다져 먹고, 닭고기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고, 칠면조에 식용으로 기르는 다른 새고기도 먹고, 햄에 쇠고기, 입가심으로 고소한 아몬드까지 먹었으면 배가 터지지는 않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형편일 텐데... 매일 호화롭게 잘 먹는 사람들이 굶게 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이쯤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도 좋으련만... 무엇 때문에 다시 밥상 앞에 앉는 것인지...  마치 디저트 먹는 김에 왠지 서운하니까 맛보기로 살짝 한 입씩만 먹어보려는 심산처럼 보인다. 두 번 째 상 메뉴가 아래에 있다.

 

두 번 째 상차림

꿩과 자고새 요리(자고새(partridge)는 메추라기(quail)와 비슷한 새), 로스티드 랍스터(lobster, 바닷가재인 대하), 그릴드 파이크(pike, 창꼬치라는 물고기), 크림을 듬뿍 얹은 타르트(tart, 과일 파이), 얼음 사탕과자, 송아지 내장 요리, 샐러드  (김안나의 『서양음식에 관한 사소한 비밀』 참고)

파이에 크림을 잔뜩 치고, 얼린 사탕을 먹고 나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송아지 내장 요리에 빨강, 노랑, 초록 등 싱싱하고 젊은 채소 샐러드가 잇따라 나온다. 이들에게 사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들에게 먹는 건 열락의 체험이다.

진짜 맛있는 짜장면은 알맞게 짜다. 달짜맵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짜장면을 먹을 때 고춧가루를 뿌려 느끼함을 던다. 바람이 주는 선물은 뭘까? 문득 자연을 잊고 살고 있음을 깨우쳤다.

일이 있어 강릉에 내려오니 건 듯 부는 바람이 달다. 한 겨울 오대산 보궁을 지나가는 바람은 차웁고 달다. 그 아래 중대사 툇마루에 앉아 맞는 바람은 상쾌하고 달다. 바람이 달다고 느껴질 때 내 호흡은 길고 편안해진다. 그리고 인생은 달고, 사랑 또한 달다.

대략 기원전 2300년 경 神農氏와 軒轅氏 시대부터 청동으로 만든 화폐, 칼(兵器), 그릇(祭器) 등에 새겨진 문자를 金文이라고 한다. 아래는 ‘달 甘’의 금문 글자다.

『설문해자』에는 ‘甘’으로 단맛을 설명한다. 이 견해는 매우 정확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도 결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에 단옥재 선생은 또 말한다. ‘五味’는 맛있는 맛이다. 이로 인해 ‘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여기는 입에 맞는 맛있는 맛은 다 ‘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맛난 음식이 입에 있기만 하면 자세히 음미하고 오래도록 맛보려 하므로 삼키기가 아까운 법이다. ‘口’ 가운데의 ‘一’은 지사부호가 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맛있는 음식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대의 음식 중, 중국 서북지역의 선민들이 가장 탐낸 맛있는 음식은 ‘양고기’였다. 지금까지 이 곳의 풍습에는 양고기를 편애하는 습성이 남아있다.

그림 ⑤의 갑골문 甘의 풀이에서 ‘입(口)’이라고 본 것이 사실은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판단한다면 象形 묘사가 더 설득력이 있다. 추정컨대 불과 4획의 단순한 ‘달 甘’자의 금문 글자는 뚜껑을 덮은 그릇 안에 담긴 널찍한 고기다. 어떤 고기인가는 아래 글자 중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글자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 두 글자는 그릇 안에 뿔 달린 羊을 담고 있다. ‘아름다울 美’에서 羊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짐승이듯, ‘달 甘’자의 그릇 속에 담긴 아름다운 고기는 양고기다. 양은 인간에게 이롭고 아름다운 동물이다. 사람들은 하늘에 바치는 희생물로 양의 목에 칼을 찔렀다. 글자 그대로 犧牲羊인 셈이다.

‘이름(名)’은 제단 위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물 음식을 담은 그릇을 올려놓은 거룩한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이름은 호적과 족보에만 올리고 일상생활 중에는 字나 號로서 부르고 불렸다. 신성한 이름이 부정탈까봐 두려워서다. 사회적 금기는 흔히 미신과 연관이 있다. 祭器 안에 담긴 양고기의 형상이 오늘날의 ‘달 甘’으로의 의미 이행을 설명하는 길은 양고기가 달고 맛있다는 경험적 사실이다. 물론 취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100% 공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수에게 있어 맛있는 고기는 단 고기다. ‘달 감’의 의미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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