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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보호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주력할 겁니다”
“피해자보호 위한 법적 장치 마련에 주력할 겁니다”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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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한국피해자학회장 선출된 오영근 한양대 교수

 

1985년 UN에서 피해자권리장전이라 할 수 있는 ‘권력남용과 피해자에 대한 정의의 기본원칙에 대한 포고’가 채택됐다. 근대에 들어 가해자에 대한 ‘응징’은 체계화를 이룬 반면, 피해자 ‘회복’ 문제는 방치돼 왔다는 논란 속에, 피해 예방책의 필요성을 공표한 첫 사례였다. 국내에서도 나름대로 피해자 지원 체제 구축의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한국피해자학회의 정기총회에서 신임회장으로 선출된 오영근 한양대 교수(56세,법학과·사진)를 만나 피해자학의 의미를 들어봤다.

△신임 학회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초대 회장이 11년간 지켜온 중책을 맡게 돼 많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국피해자학회는 1992년 4월에 창립됐습니다. 당시 외국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진행중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피해자학이 알려져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피해자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학회 설립 이유였습니다.” 
△‘피해자학’이란 어떤 학문입니까.
“피해자학은 범죄 또는 사고피해자에 대한 사실학적, 규범학적, 정책학적 연구를 하는 학문입니다. 종래의 형사법은 범죄인 중심으로 이뤄져 범죄인의 처벌이나 범죄인의 소질과 환경을 분석하고 재범을 방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범죄라는 것도 범죄인과 피해자의 상호작용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피해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반성으로 서구에서는 20세기 초부터 피해자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형사법분야에서 피해자에 대한 관심영역은 크게 네가지로 정리됐습니다. 첫째 사실학적 연구분야로, 범죄피해와 피해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둘째 형법해석학적 연구분야로, 피해자가 범죄를 유발하거나 범죄에서 피해자의 과실이 있는 경우, 범죄행위자의 책임을 물을 때 피해자의 과실을 어떻게 고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셋째 형사절차법적 문제입니다. 형사소송절차에서 범죄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참여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피해자의 진술권이 규정돼 있습니다. 마지막은 범죄피해자들을 어떤 방법으로 보호하고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피해자학에서 바라본 ‘피해자’란 과연 어떤 사람들입니까. ‘인권’ 개념과도 일치할 것 같은데요.
“피해자학의 일차적 관심은 범죄 피해자입니다. 예컨대 강도상해로 피해자가 불구가 된 경우 가해자는 수년간 교도소에 복역하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피해자는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고 직장도 다닐 수 없는 딱한 사정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피해자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입니다. 이 점에서 인권옹호는 물론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돼야겠죠.”
△피해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주로 어떤 때입니까.
“기본적으로 ‘피해’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범죄나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특히 민생치안이 허술하고 사회적 안전 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범죄나 사고 피해자가 많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누구나 잠재적인 피해자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개정되거나 신설돼야 하는 법령이 있습니까.
“현행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피해자의 법정진술권을 규정하고 있고 범죄피해자구조법도 제정해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피해자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는 충분치 못한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재판과정이나 그 이후 사회에서 겪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2차적 성범죄 피해’가 일어납니다. 성범죄피해자들이 평소 품행이 방정하기 못했거나 성범죄를 원했기 때문에 피해를 당한다고 하는 사회적 편견도 엄연히 존재하구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보호를 위한 실체법적, 절차법적 규정들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실질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범죄피해의 실상을 알림으로써 범죄에 대한 편견을 제거할 수 있도록 홍보 재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 어떤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피해자학은 학제간 연구가 절실한 학문분야입니다. 교통사고가 난 경우 교통사고피해자의 특성을 연구할 수도 있고(사회학적, 심리학적 연구), 교통사고피해자에게 충분한 손해배상을 해주는 방법에 대한 연구(민사법적, 보험법적 연구), 가해자의 처벌에서 피해자의 역할(형사법적 연구), 피해를 줄이기 위한 교통신호체계나 정책적 대안(교통공학, 자동차공학적 연구), 유아시절이나 초중고에서의 교통안전교육(교육학적 연구) 등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처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폭넓은 학문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초창기에는 법학자들이 주류를 이뤘으나, 이후 경찰행정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교육학자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회와 피해자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계획이 있다면.
“가장 시급한 것은 피해자학의 학제적 성격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학문분야의 학자들이나 법조인, 실무전문가를 회원으로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학회에서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지고, 활발한 연구도 수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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