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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감영이 출판의 중추 역할 수행” … 각 감영본 비교·분석 연구 제기
“지방 감영이 출판의 중추 역할 수행” … 각 감영본 비교·분석 연구 제기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8.01.03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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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영영장판과 영남의 출판문화』 정재훈·옥영정 외 지음, 경북대출판부, 240쪽, 15,000원

 

한국의 출판문화는 그 뿌리가 꽤나 깊다. 전통시대인 조선 시대의 경우를 보더라도, 서책을 출판하는 문화가 매우 활발했다. 중앙에서 많은 서적을 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적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서 지방에서도 출판을 해야 할 정도였다. 조선 중기의 선조 연간까지 팔도의 지방에서 만들어진 ‘책판’이 980종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인쇄술 발전과 지식계층 확대의 영향으로 지식 전파 매체로서 책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컸고, 이러한 출판문화의 한 획을 담당한 곳은 지방 감영이었다. 경상북도와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이 기획하고 정재훈(경북대·사학과), 김남기(안동대·한문학과), 옥영정(한국학중앙연구원·고문헌관리학전공), 손계영(대구대·도서관학과), 박순(한국국학진흥원 기록유산센터 전문연구원), 박용찬(경북대·국어교육과) 등이 집필한 『영영장판과 영남의 출판문화』(경북대출판부)는, 지방 감영이 중심이 된 출판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의 제목을 조금 설명할 필요가 있다. ‘嶺營藏版’에서 嶺營은 곧 慶尙監營을 말하며, 藏版은 소장 판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영영장판이라 함은 조선 시대 경상감영에 소장돼 있던 목판을 가리키게 된다.

조선 시대의 출판은 먼저 중앙에서 금속활자를 이용해 주요 서적을 간행하고 나면 각 지방에서 이 서적을 모본으로 삼아 목판본을 제작·확산시키는 형태로 이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고도의 전문성과 막대한 비용, 物力을 동원할 수 있는 지방 감영이 자연히 출판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조선 시대에 국한되지 않았는데, 대구의 경우 근대에 와서도 문학과 잡지 출판의 메카가 될 정도로 출판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다. 예컨대 1946년에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잡지 21종, 신문 17종, 교과서류 14종이 출판될 정로였다. 서울에 못지않은 아동문학 매체였던 <아동>이나 <새싹>은 이런 토양에 있었기에 출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대구 경상감영에 소장됐던 목판은 전해지지 않는다. 일부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돼 있을 뿐 그 전모조차 밝혀지지 않은 실정이다(김남기 교수에 따르면, 규장각 소장 영영장판은 『논어언해』, 『맹자언해』, 『시경언해』 등 17종 4천139장에 이른다). 이에 확인 가능한 영영장판과 그 판본을 우선 연구함으로써 조선 시대 경상도의 출판문화를 조사·정리할 필요성이 제기돼, 2016년 경상북도가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에 관련 연구를 의뢰했다.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또한 2017년 5월 19일 안동에서 개최된 ‘영영장판과 영남의 출판문화’ 학술대회도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조선 시대 지방 감영의 출판문화를 개관하고(정재훈), 규장각 소장 영영장판의 소장 경위와 현황, 성격을 알아본다(김남기). 이어 당대에 제작된 경상감영 책판목록의 현황과 그 내용 분석(옥영정)을 통해 보다 정확한 경상감영 책판목록을 제시하고, 조선 후기 경상감영의 출판과 경상감영 간행본의 특징을 살펴본 다음(손계영), 목록에 나타난 영영판의 범주를 재설정할 필요성을 제언한다(박순). 나아가 근·현대 대구·경북 지역의 출판과 문학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서책 출판과 연계된 대구·경북 지역의 출판문화 전통이 지역 근·현대 출판의 원류로 작용했음을 밝힌다(박용찬).

흥미로운 대목은 ‘경상감영 출판의 특징’. 옥영정 교수가 정리한 경상감영 출판의 특징으로는 ‘中央刊印本이 각 지방 감영으로 전달돼 다시 번각본으로 간행되는 현상’, ‘경상감사와 대구판관이 주도한 文集類 간행’, ‘문집·족보류 책판의 경우 감영에서 보관하지 않고 사찰로 옮겨 보관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옥 교수는 “경상감영 출판의 특징은 경상감영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각 감영 출판의 공통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감영과 비교되는 경상감영 고유의 특징에 대해서는 타 감영 간행본과 출판에 대한 연구가 함께 진행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집필에 참여한 정재훈 교수는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중앙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모순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 시대 출판문화에 대한 탐색이 이러한 문제 상황에 대한 해답을 모두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 시기 중앙과 지방이 출판을 매개로 활발하게 교류·소통한 점, 지방 감영이 지역 출판문화의 거점으로 기능한 점 등은 지금의 독자들도 되새길 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대구·경북 지역, 나아가 우리나라 모든 지역의 문화사와 현재를 돌아보고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의미를 매겼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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