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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관심사,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하는가
학자의 관심사,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하는가
  •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
  • 승인 2017.12.26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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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도시계획

나는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공부해 온 건축학과 도시계획 영역은 공과대학에 속한다. 하지만 학문 특성상 사회적 실천분야에서 활동해 왔고 관심사는 시대변화와 함께 바뀌어 왔던 것 같다.

전국적으로 펼쳐졌던 새마을운동 등으로 인해 우리 골목길과 건축물이 파괴되는 현장을 보면서 대학을 다녔다. 이를 마음 아파하면서 풍수 책을 끼고 전통마을과 사찰건축 등을 찾아 전국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 전후에는 재개발에 의해 도시서민 주거지가 철거되고 쫓겨난 주민들을 보면서 달동네들을 찾아다닌 기억도 아련하다. 힘들게 사는 생활, 그러면서도 인간미 넘쳤던 주민들의 모습이 남은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당시 밀려들어온 외국자본과 그와 결탁한 매판자본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종속이론 등에 심취하여 갑론을박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기억도 새롭다. 요즈음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중첩되어 겸연쩍은 웃음을 짓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개발에 의해 이곳저곳에서 자연이 파괴된 것에 분노했고, 때로는 참나무 수림대, 두꺼비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었다. 특히 개발제한구역을 지키기 위해 보냈던 긴 시간은 잊혀지지 않는다.

2000년 전후에는 오랜 관행으로 밀실에서 진행해 오던 도시계획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데 관심을 가졌다. 우리나라 최초로 청주시 도시계획을 주민참여형으로 실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이 많이 생각난다. 그 때의 경험과 실적이 이후 나의 학문적 영역을 형성하는 데 기틀이 됐던 것 같다. 제도권에 있었던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마을 만들기를 실천하는 대열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후 국가정책으로 이어지는 도시재생 연구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학생들이 내 강의 내용에 흥미를 덜 갖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나는 강의에 열정을 갖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학생들과의 대화 끝에 ‘도시개발’ 분야에 민간 부문의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관 중심의 정통적 도시계획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즈음하여 비교적 활발했던 나의 실험실에 대학원생이 줄어들면서 점점 썰렁해져갔다. 대학원생들과 긴 시간 대화를 했다. 컴퓨터 보급이 일반화됨에 따라 학생들의 관심사가 컴퓨터를 활용한 분석으로 옮겨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나는……. 강의의 주안점을 바꿨고 남아있는 대학원생에게 경비를 지원해 통계 패키지를 배우고 공동학습을 하도록 했다. 실험실에 학부 학생들을 모집해 컴퓨터 패키지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생각보다 빨리 강의실에 온기가 느껴지고 실험실 활기도 되살아났다. 나이 들면서 찾아온 위기를 이렇게 극복해 갔다.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난 2월 말, 36년간 근무했던 대학을 떠났다. 10년여 전부터 퇴임 후 생활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5년여 전에 흙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갖기로 결정을 하고 조그마한 토지를 구했다. 과일 나무를 종류별로 몇 그루씩 심어 지인들과 함께 가꾸기로 하고 지난 봄부터 심기 시작했다. 그곳에 막걸리 한잔하면서 담론을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도 마련했다. 불러 주는 데도 있어 아직은 바쁘게 지내고 있다. 소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꿈은 미완의 상태이지만 내 인생 중 가장 행복감을 느끼면서 지내고 있다. 남은 생애에 사회로부터 받은 것 중 일부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도시 속에서,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의 현장을 만들어 가도록 하는 데, 그리고 시장의 논리에서 소외된 사람도 포용하는 도시를 만드는 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흙과 보내는 시간도 늘리고 싶다. 지인들과 함께 과일나무를 가꾸고 열매를 나누어 가는 삶, 막걸리 한잔 놓고 담론을 즐기는 소공동체 꿈을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시대가 변해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황희연 충북대 명예교수·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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