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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도시를 모색하는 책들
대안도시를 모색하는 책들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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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19 17:18:44

각자의 무릉도원과 월든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이곳, 도시는 언젠가 미련 없이 박차고 나올 환멸의 공간이다. 삶의 공간이라기보다는 돈벌이를 위해 잠시 머무는 곳. 대개의 도시가, 나이테를 그리며 중심부로 올수록 주거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공간배치가 효율적 생산에 적합하도록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활기찬 낮과 달리 밤이면 직장인이 빠져나가고 적막해지는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근대의 산물인 도시는 20세기에 이르러 ‘도시계획’이라는 기반을 갖게 된다. ‘내일의 도시’(피터 홀 지음, 한울 刊)는 그 역사를 훑어가고 있다.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처럼 19세기에는 빈민들이 그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갔던 ‘암흑의 도시’가, 교외에 주거단지를 만들고 전원도시로 탈바꿈한 내력을 보여준다.

가령 에든버러, 뉴욕, 런던은 지역계획 속에서 재탄생 했으며, 시카고, 뉴델리, 베를린, 모스크바는 도시미화운동으로 탈바꿈했다. 독재자들에 의해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세워서 도시미화운동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히틀러가 베를린에 파리의 샹젤리제와 같은 공간을 구성하려했던 것과 스탈린이 레닌의 거대동상이 세워질 1천3백피트의 소비에트궁전을 세우려했던 시도가 그것들이다. 파리, 브라질리아, 런던, 세인트루이스처럼 고층건물의 도시가 계획되고 이에 반발하여 에든버러, 인도어, 버클리처럼 무정부주의적인 계획사조로 도시구성이 이뤄지기도 했으며, 롱아일랜드, 위스콘신, 로스앤젤레스, 파리처럼 ‘고속도로변의 도시’가 생기고, 학자들의 철저한 이론적 고찰 아래 필라델피아, 맨체스터, 캘리포니아가 탄생하기도 했다. 홍콩은 기업의 도시로 성장했고,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런던은 슬럼의 확장으로 한때 폭동이 끊이지 않기도 했다.

이런 도시를 사람 사는 곳으로 재구성하려는 ‘인간의 도시’(존 쇼트 지음, 한울 刊)는 조금은 사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도시가 갖는 공간구성의 한계를 정치이념적 조건으로 넘어서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는, 현재의 도시가 복무하는 대상이 자본, 전문가, 소수의 사람일뿐이라고 일갈한다.

도시는, 자동차를 이용해 교외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을 위해 ‘자동차천국(autopia)’으로 탈바꿈했고, 소비자와 단절된 건축가의 개인적 취향으로 ‘건축이론의 묘지’가 돼가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존 쇼트는 세 가지 도그마를 넘어서는 것으로 도시를 사람의 천국으로 만들고자 한다. 복지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립이 그것이다.

꾸리찌바라는 브라질의 한 도시에서 이런 논의들이 현실화되었다. 그 도시를 사람들은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 ‘존경의 수도’라고 부른다고 한다.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 지음, 이후 刊)는 꾸리찌바시의 구석구석과 생태도시로 환골탈태하기까지 내력을 소상히 서술하고 있다. 남미의 변방, 한 작은 도시 꾸리찌바가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선정된 비결은 역시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이란 ‘인간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공동체 속의 사람을 말한다. 꾸리찌바시가 펼친 철학이 담긴 행정은 건강한 도시를 꿈꾸는 것이 허황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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