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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호 새로나온책
903호 새로나온책
  • 교수신문
  • 승인 2017.12.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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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일본 축제의 핵심은 영혼과 힘에 있다. 산쟈 마쓰리에서 비친 일본인들의 축제는 어떤 원동력, 어떤 영혼의 힘을 가지고 있다. 행사에 참가하면서 나는 여러 차례 흥분한 스스로의 모습에 놀랐다. 함께 미코시를 운반하는 저 몸뚱아리들, 저 소리에 묻히다보면 어떤 집단주의에 합일(合一)되면서 보이지 않는 중심에 단단한 끈으로 묶이는 것을 느낀다. 거기에 융합하지 못하는 자야말로 내 편이 아닌 요소모노(余所者, 다른 지방 사람)요,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무라하치부[村八分]로 따돌림 당했을 것이다. 즐기고 노는 것 같지만 이들은 이런 과정에서 이탈을 막으려는 은밀한 결속의 끈을 죄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집단적인 힘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났던 지난 날, 무시무시한 이기와 차별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시인·문학평론가), 『일본적 마음』(책읽는고양이, 2017.12) 중에서

 

 

■ 대담한 작전: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프시케의숲, 440쪽, 18,000원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중세시대 전쟁 이야기. 이 책은 특히 오늘날 영화와 게임 등에서 대중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있는 ‘특수작전’에 대해 다룬다. 요인 구출과 시설 장악, 암살 등을 목표로 하는 특수작전의 연원은 중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저자는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특수작전의 조건과 영향, 한계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이를 풍부한 이야기 형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해설 격의 제1장 이후, 각기 독립적인 특수작전 이야기 여섯 편이 수백 년이 넘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특유의 입담과 독보적인 통찰로 방대한 자료를 가로지르며, 오늘날까지도 베일에 싸인 주요 특수작전의 전말을 그려낸다. 각각의 단편들은 영국과 프랑스, 합스부르크 등 유럽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교양지식을 담고 있다.

 

 

■ 대학과 도시, 한광야 지음, 신윤석 지도, 한울엠플러스, 398쪽, 36,000원
도시설계를 전공한 저자가 유럽, 중동, 북미의 대표적인 대학의 도시 16곳을 통해 대학과 도시의 공진화를 읽어냈다. 고대의 아테네, 현대의 팰로앨토에도 중동의 바그다드, 북미의 뉴욕에도 모두 대학이 있다. 대학은 이 도시들이 새로운 문명을 꽃피우는 과정에서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문명 발전 과정에서 대학과 도시의 관계에 천착해온 저자는 대학의 기능을 정의해온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유럽, 중동, 북미의 대표적인 16개 ‘대학의 도시’들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그 대학의 성장 궤적과 함께 보다 넓은 지역문화권과 물리적인 지형 위에서 이해한다. 도시의 입지와 형성, 지식과 기술의 생산 활동과 대학의 설립, 도시 중심부에서 대학의 기능과 물리적인 성장을 중심으로 관찰해 역사 속 대학과 도시의 관계를 넘어 과연 지금 우리에게 대학은 무엇이며 또 미래의 대학은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수전 팔루디 지음, 황성원 옮김, 손희정 해제, 아르테, 803쪽, 38,000원
1991년 출간됐지만, 지금껏 번역되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로 국내외 페미니스트들에게 꾸준히 영감을 불어넣었고, 페미니즘의 역사를 다룰 때 꼭 참조해야 할 필독서가 된 책이다. 2007년 <유에스에이 투데이> 선정 ‘지난 25년간 미국에 영향을 미친 책 25권’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을 저지하려는 반동의 메커니즘에 ‘백래시(backlash, 반격)’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정치, 사회, 문화적 역풍을 해석하고 그에 맞서려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분석의 도구를 제공했다. 사회 변화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자신의 중요도나 영향력,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불특정 다수가 강한 정서적 반응과 함께 변화에 반발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사회학 용어는, 『백래시』 출간 이후 페미니스트 사전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반페미니즘’ 선전전을 표층에서부터 심층까지 파고들어 간 이 책은, 지금 여기의 한국 상황에 놀라울 정도로 변함없는 시사점을 던진다.

 

 

■ 미군정 3년사 1945-1948: 빼앗긴 해방과 분단의 서곡, 박도 엮음, 눈빛, 679쪽, 33,000원
미군정기에 많은 사진이 생산되고 유포됐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귀한 사진이나 새로 발굴한 사진이 적지 않다. 이러한 사진들은 분명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편,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은 미군이나 미국인등 외국인들이 찍은 것이 많다. 이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은 한국현대사 연구와 교육은 물론, 일반 독자들의 역사의식을 드높이고, 현실 인식의 뿌리가 되는 과거 격동의 한국현대사 3년의 여러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익한 사료가 될 것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에서 발굴한 새로운 사진도 적지 않다. 전통주의나 수정주의니 하는 해묵은 논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현장을 그대로 담아낸 이들 사진을 통해 냉철하면서도 비판적으로 한국현대사를 검토하고 독해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책이다.

 

 

■ 소리의 과학: 청각은 어떻게 마음을 만드는가?, 세스 S. 호로비츠 지음, 노태복 옮김, 에이도스, 400쪽, 22,000원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리는 무엇일까? 동물들의 오감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감각은 바로 청각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소리와 듣기라는 평범한 주제에서 출발해 귀가 어떻게 탄생했고, 소리와 청각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빚어냈는지를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인간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자극인 소리가 듣기 능력을 지닌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이 책의 관심사다. 청각 능력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아래에 속하는 개구리에서부터 고도의 청각 능력을 발휘하는 박쥐까지 청각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들, 음악과 징글,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음향 무기들 등 소리와 청각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신경과학자로서 또 음악가로서 30여 년을 소리에 빠져 지낸 지은이의 소리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신선한 과학적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진태원 지음, 그린비, 479쪽, 20,000원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을’이라는 문제적 주체를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나아가 민주주의 일반을 면밀히 사유해 보려는 시도다. 물론 도구는 ‘서구의 정치철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서구의 담론에, 이론을 위한 이론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푸코, 아렌트, 라클라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등이 호명되지만, 발리바르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론의 거두 최장집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가한 것도 그렇고, 2010년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촛불시위, 우리 시대의 비극 세월호 사건 등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주요 배경인 동시에 분석의 대상이 된다. 결국 이 책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주체’라는 문제 설정에 입각하여해 여러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 및 그 강점과 약점을 상세히 드러내 보여 주는 한편, 어떤 주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독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하에 서구 정치철학의 논의를 우리의 맥락에서 수용하고 변용하려는 값진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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