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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일이 힘든 때다
쓰는 일이 힘든 때다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7.12.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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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책을 많이 만들어 보았다. 내 책도 만들고, 다른 사람 책도 만들었다. 내 책이라도 다 같은 책은 아니다. 정성 들인 책은 애착이 크고 성급히 만든 책은 꼴도 보기 싫다. 내 책도 남의 책도 만들다 보면, 책에 대해 저절로 이것저것 생각하게 된다.

세상의 공부 책에는 두 유형이 있다. 우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같은 책. 멋진 책이다. 완미한 구성을 갖춘, 처음부터 하나의 큰 계획 아래 밀어붙여 쓴,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책은 이런 것’이라고 꿈꿔온 구성의 책. 대단한 의지의 소산이다. 보는 사람을 심각한 위기감에 빠뜨린다. 다른 유형의 저술도 있다. 예컨대 강상중의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같은 책. 이런 책은 여러 편의 논문을 하나의 책 안에 되도록 체계적으로 보이도록 짜 맞추어 놓는다. 하나의 책 안에서 각기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붙여놓고 이어놓아 그런대로 짜임이 좋다. 편 편들 사이의 비약이나 격절이 나쁘지만은 않다. 소설에 유기적 리얼리즘과 모자이크적 구성이 각기 있을 수 있듯이 저술에도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의 두 유형이 가능할 수 있다. 하나의 큰 그림을 대형 벽화로 그릴 수는 없다 해도 여러 폭 그림들이 어울려 하나의 ‘전체’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나쁜 ‘수’만은 아니다. 이만만 해도 성공이 아니랄 수는 없다.

정작 문제는 책이라기보다 쓴다는 행위 그 자체일 것이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 어떤 내용을 얼마나 담도록 써야 하는가? 한두 해 자꾸 흘러 시간의 흐름을 살갗으로 느끼는 사람이 될수록 쓴다는 일의 어려움을 깊이 느끼게 된다. 이 어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역시 마음잡는 일의 어려움.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처음 다짐하던 때, 어떤 계기인가 공부 방향을 달리잡고 그를 위해 온 힘을 다하던 때, 이미 그 시절은 현재에서 멀어졌다. 공부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기던 마음을 옛날 그대로 지니기 힘들다. 수업, 회의, 약속, 청탁 원고 같은 것에 떠밀려 오늘 하루도 용케 버텼다고 스스로 위로하기 쉽다. 새로운 공부 주제에 가슴 설레기보다 오래 전에 아이디어 세우고 연구 계획서 쓰고 연구비까지 ‘타먹고도’ 끝을 못 본 게 많다.

무엇인가를 일관되게 써나가는 것, 그렇게 해서 하나의 유기적 체계를 가진 저술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책을 책답게 만들어 줄 하나의 저술은 이루기 어려운 반면, 여러 쪽으로 파편처럼 나뉜 글들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쓸 수 있는 시절이다. 정신을 통일하여 하나의 큰 주제를 향해 달려가기 어렵다는 것. 이는 확실히 ‘의지’와 ‘태도’의 문제다. 도대체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자신의 학문을 옛날처럼 곧이곧대로 믿고, 의지하고, 눈 팔지 않고, 사랑하며 살기 힘들다. 이름하여 공부 안 할 핑계가 많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 있는 일이 많다. 자기의 일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시대의 탓일까? ‘주체’는 확실히 구조에 의지되어 있고 그 지배력에 휘둘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는 이미 구문이 아니던가. 이 시대가 그런 줄 안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던가. 조르주 바타이유는 생명의 본질은 향유이자 낭비에 있다고 했다. 공감 가는 논리다. 그는 노동을 신성시하지 않았다. 노동은 인간을 동물세계로부터 구별시켜 주었으나 그것은 ‘인공’을 짓기 위해 ‘자연’을 억누르고 지연시키는 행위였다. 이 자연, 한 인간의 내부로부터 솟아나는 향유와 낭비에의 욕구를 생각한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쓰기보다 쉬게, 놀게, 먹게, 가게 한다. 쓰지 못하게 한다. 확실히 쓴다는 것은 노동이며 자연에 반하는 일이며 고통을 주는 것이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로 이름 높은 노 선생을 생각한다. 그런 책은 불멸이다. 어떤 논리적 비판이나 극복도 이런 책의 불멸성을 훼손할 수 없다. 오래 전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예술에 비해 학문은 뒤에 오는 것에 의해 극복되고야 마는 허무를 가지고 있다 했다.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어떤 저술, 그 책에 담긴 쓰는 자의 혼은 극복되지 않는다. 이름하여 불멸이다. 쓰는 일이 힘든 때다. 공부가 쉽지 않은 때다. 흘러가는 마음 고삐를 한번 세게 당겨 본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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