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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當代 화려한 진경문화의 감각과 호흡을 지닌 작품"
"춘향전은 當代 화려한 진경문화의 감각과 호흡을 지닌 작품"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2.05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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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김현주 서강대 교수

1992년 박사학위논문이 「춘향전의 연행론적 연구」였다. 그의 이후 행적도 판소리문학과 ‘춘향전’을 따라 움직였다. 춘향전을 비롯한 숱한 판소리 이본들 속에 묻혀 살았던 김현주 서강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최근 『춘향전의 인문학』(아카넷 刊)을 내놨다. 부제가 ‘문화적 상상력으로 즐기는 춘향전 10장면’이다.
 
김 교수는 춘향전을 가리켜 ‘한국인에게 멀리 떠나온 고향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고향에 대해 아련하고 황홀한 그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는 춘향전에 대해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그 어떤 기억의 편린들을 모두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런 ‘기억 편린’은 대부분 춘향을 열녀로 읽어내는 ‘관습적 읽기’, 혹은 이야기 골격을 요약해서 추려내는 ‘메마른 읽기’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둘 다 주입식 문학교육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이런 읽기로부터 벗어나 ‘춘향전답게’ 읽어내고자 했다. 그의 작업이 좀더 신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향전은 화려하고도 원색적인 당시 진경문화의 감각과 호흡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는 김 교수가 공들인 부분은 ‘한국 고전문학을 문화론적으로 확장 해석하는 작업’이다. 그는 “고전문학을 문학 텍스트로 본다는 것은 거의 정해진 틀과 협소한 범위 내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하곤 한다. 그러나 문화론적으로 확장해 해석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의 모든 요소를 의미 있게 관련시켜 굉장히 광역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문화론에서는 작품 속의 사소한 것들도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어떤 인물의 말투 하나 동작 하나도 중요할 수 있고, 인물이 먹는 음식, 입는 의복 하나, 장신구 하나도 중요할 수 있다. 그것들의 색채와 형태도 중요할 수 있다. 집안의 기물들의 위치나 정원의 모습, 주변 환경도 중요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의 심미안과 예술의식을 엿볼 수 있다. “묘사되는 상황에 따라 특정한 풍속화, 민화, 고지도, 기록화, 산수화, 문인화 등을 연결해 설명할 수 있다면 해석은 평면성을 넘어 입체성을 덧입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인 요소들이 작중인물과 당시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설명해주고, 나아가 작품의 주제와 사상, 사유체계를 살펴보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 그가 강조하는 ‘진경문화의 감각과 호흡’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기서 김 교수가 활용한 것이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의 ‘두터운 묘사(thick description)’다. 문화인류학자가 현지인들의 풍습 속으로 깊숙이 참여해 오랫동안 현장을 정밀 관찰하듯이 당시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참여해 행간을 정밀 관찰하게 된다면 춘향전의 풍요로운 숲 속을 거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주효했다. 관습적 읽기나 메마른 읽기를 넘어설 수 있는 지평을 여기서 찾았던 것이다.

『춘향전의 인문학』을 출간하면서 김 교수는 ‘춘향과의 무언의 약속’을 지키듯 집필했다고 말한다. 왜일까. 김 교수의 말을 빌리면, 숙·영·정 시대의 이른바 진경문화의 참모습은 우리 문화유산 가운데 춘향과 관련된 춘향전의 여러 장면들에서 이야기와 함께 어우러져 가장 강렬하게 품어져 나오고 있다. 거기에 광한루 오작교와 같은 실재 풍광도 있고, 한국어의 향연도 있으며, 판소리라는 소리예술 양식도 있다. 춘향이 거느리는 아우라는 넓디넓으며, 춘향이 풍기는 문화예술적인 향기는 매혹적이다. “춘향전을 테마로 박사 논문을 쓸 때 춘향에게 진 빚을 이 책에서 춘향에게 서려 있는 전통문화예술적 향기를 조금이나마 밝힘으로써 갚은 셈이다.”

이번 책에는 논쟁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도 많다. 욕설을 포함한 서민의 일상어 체계가 문학어 체계로 편입됐다, 춘향전은 性戱의 국민교과서다 등의 평가가 단적인 예다. 그는 좀 우회해서 설명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춘향전의 성적 표현이나 욕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애써 드러내지는 않았다. 청소년 교육상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실상을 밝히고 그 의의를 짚어주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시대가 변한 만큼 시대의 변화에 대응해야 하며, 또 이런 것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 상황 속에서 보면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적극 논할 필요가 있다.”

춘향전을 비롯한 한국 고전문학의 세계는 깊고 넓은 바다와 같다. 고전문학을 ‘고전’에 갇힌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공기처럼 여겨지는, 인식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고전의 현대화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고전작품을 현대역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해석을 깊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전이 갖고 있는 배경 맥락을 입체화시키는 끊임없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고전을 계속 우려내는 한약처럼 생각해야 한다. 우려내는 방식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는 한약처럼. 현대인들에게 사유할 수 있는 힘과 안식의 효과를 줄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판소리문학에 집중해 온 김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이력을 판소리 생성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조망하는 작업으로 마치고 싶다고 말한다. 주로 17세기~18세기 정치사회사는 물론이고 당시의 음악의 흐름, 광대들의 성격과 그 변화, 의례 종목들의 역사, 각종 이야기류의 분포, 각종 사유체계들의 지속과 변화 등등 다각적인 맥락들을 감안하고 연결해서 판소리가 생성 발전하는 모습을 좀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싶다고 밝혔다. 『판소리문화사』를 기술하는 것을 ‘마지막 목표’로 삼고 있는 그의 작업이 어떻게 더 깊어질지 궁금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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