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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으로 내몰리는 대학재정
절벽으로 내몰리는 대학재정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7.12.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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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대학재정이 위기이다. 대학재정이 어려워진 사정은 국립대와 사립대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굳이 비교하면 사립대가 더 어렵고 그 중에서도 지방 소재 중소형 사립대의 재정 사정은 말 그대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해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대학 등록금은 수년 동안 동결과 인하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대학 등록금은 실질적으로 상당 폭 인하된 것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해 학생정원을 감축해 등록금 수입이 상당 규모 감소했다. 수년 전에는 국립대 기성회비로 한바탕 소동이 있었는데, 올해는 입학금이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과다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등록금에 대해 물가 상승을 반영해 합리적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인상 책정할 수 있도록 법령에서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국가장학금 및 대학평가와 연계해 실질적으로 등록금 인하를 강제해왔다. 대학으로서는 수입은 줄어드는데 지출은 늘어나니 재정이 위기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재정 위기 속에서도 대학은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힘든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정부 이래 관주도의 고등교육정책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순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대학으로서는 역량평가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이름만 바뀐 대학구조개혁평가에도 비상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새 정부의 교육부가 추진하는 고등교육 정책을 보면 대학 구성원의 힘든 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지난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전면 재검토되고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담은 대학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많은 대학인들이 기대했으나 현재로서는 이런 기대가 실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입시절벽이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관주도의 고등교육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대학의 재정 사정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는 대학의 자율성이 새 정부에서도 구체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실망스럽다.

재정 위기가 대학교육과 구성원 처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사립대를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대다수 사립대는 수년째 연봉을 동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대는 기성회회계가 폐지되면서 보수 지급의 변화가 있었는데, 공무원 수준의 보수 인상은 지속해왔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립대의 우수 인력이 국립대로 이직하는 현상은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됐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수라는 비이성적이고 차별적인 제도가 사립대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임용 형태나 연봉 책정에서 근거 없는 차별이 대학사회에 슬그머니 자리 잡으면서 조교수의 처우가 정교수나 부교수와 비교해서 확연하게 열악해지고 있다.

일부에서 현실화된 심각한 재정 위기가 사립대를 우선으로 이미 파멸적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신규 투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직접 교육비 지출마저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최저 수준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교내 연구비와 연구년 제도 운영을 축소하는 추세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제도 운영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몇몇 사립대에서 구조개혁평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대학 차원에서 발전기금을 반강제적으로 모금하고 구성원에게 애교심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자발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법인이 감당해야 할 책무성을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이런 일들이 지난번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이어 재연되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지속적으로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우수한 연구 역량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재정절벽에 직면한 우리 대학들이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는 책무를 제대로 담당할 수 있을지는 선뜻 장담할 수 없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의 재정 위기를 해소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대학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해 합리적 수준의 등록금 책정이 용인되는 방향으로의 전향적 인식전환과 정부의 정책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울러 국가의 발전 정도와 국제적 위상에 부합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등교육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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