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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존엄의 경계에서 벌어진 인간 잔혹사, 식인의 금기를 깨다.
생존과 존엄의 경계에서 벌어진 인간 잔혹사, 식인의 금기를 깨다.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과
  • 승인 2017.11.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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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10. 餓死와 食人의 경계―굶주림에 무너진 인간 존엄성
피에르 롱기(Pietro Longhi, 1701~1785)의 「코뿔소(The Rhinoceros)」」. 그림 속 뒤쪽에 서 있는 두 여인 중 한 명이 검은 벨벳으로 만든 타원형의 모레따(moretta) 가면을 쓰고 있다. 16~17세기 베니스 여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이 가면의 착용자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적용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 가면은 ‘침묵의 가면(the mute mask)’이라고 불렸다. 모레따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트 주 쿠네오 성에 위치한 인구 4천여 명 정도의 소읍이다. 북동쪽의 토리노와는 35km 가량 떨어져 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

사람이 견디는데 한계가 있는 게 많다. 다시 말해, 살다보면 인간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매 앞에 장사 없다”, “먹는 거 앞에 장사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듯 신체적 폭력, 음식의 유혹, 가는 세월 어느 것에도 저항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초라한 것은 맛있는 음식의 유혹 앞에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인간의 애처로운 모습이다. 이까짓 대단찮은 음식의 유혹 앞에 내가 무릎을 꿇어야 하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잠시 버티다가 우리는 말한다. “인생 뭐 별 거 있어? 맛있는 건 먹어줘야 해. 다이어트? 내일부터 새로 시작하자. 먹는 건 좋은 일이야. 사람이 등 따습고 배불러야 행복한 거지. 지금 이걸 안 먹으면 언제 다시 먹을 기회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식욕을 정당화한다. 그러므로 일반인은 ‘단식 광대’를 절대 이해 못한다. 이슬람의 라마단 금식은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왜 사람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세끼 식사를 하면서도 먹는 일에 몰두하는 것일까? 식욕, 성욕, 수면욕이라는 인간의 3대 욕구 가운데 식욕이 다른 둘을 압도하는 데는 까닭이 있지 않을까?

『예언자』에서 칼릴 지브란은 말했다. 순례자를 따라가는 개가 먹다 남은 음식을 버려두거나 다른 개에게 줄 생각을 않고 얼마 후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모래땅에 묻어둔다. 나중에 먹어야 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신중한 개의 생각이다. 그렇듯 인간도 식탐을 변명한다. 잘 먹어야 건강하고 그래야 잘 사니까. 내일도 먹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과연 그럴까? 잘 먹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小食이나 素食(菜食)은 잘 먹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일까? 실제로 이 둘이 장수와 건강의 비결임은 많은 임상실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많이 먹는 것이 내일 혹시 굶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나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는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이다.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영속적인 일이 아닐뿐더러, 한 두 끼 굶는다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병에 걸려 눕지 않는다. 오히려 과축적된 영양소를 적절히 사용하게 함으로써 몸의 상태를 좋게 한다.
 

베니스 카니발 참여자들. 출처: http://www.shayandblue.com/blog
베니스 카니발 참여자들. 출처: http://www.shayandblue.com/blog

 

과거 중국에서는 상품을 거래하거나 商談을 하는 지방 상인들의 숙소로 객잔이라는 이름을 내 건 여관이 있었다. 이곳에 들 때 손님들은 조심에 조심을 해야 했다. 그러나 언제나 어리숙하고 순진한 나그네가 있게 마련이다. 주인장의 호의에 감읍하며 건네진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그의 명은 다하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객잔의 인간 말종들은 독주로 과객의 목숨을 끊고 기뻐하며 死者의 품을 뒤져 돈과 귀중품을 털고 보따리 속 재물을 갈취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은 끝나지 않는다. 시신을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비밀작업이 남아 있다. 인간 잔혹사는 언제 어디에나 있다.


식인의 추억

영화 「한니발」에서 미식가이자 연쇄살인범인 주인공 한니발 렉터는 복수를 위해 사람 뇌를 꺼내 먹는다. 희생자가 놀라서 죽으면 안 되니까 살려둔 채로. 이 희생자는 마취된 상태에서 두 눈 멀쩡히 뜨고 자신의 뇌의 일부가 프라이팬 위에서 알맞게 익어가는 광경을 응시한다. 잔혹함의 최고봉으로 꼽힐 만하다. 인간은 본디 이런 존재일까? 콜린 윌슨의 『잔혹』은 다양한 살인의 사례를 보여준다. 다니엘 데포우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도 식인 장면이 길게 묘사돼 있다.

『삼국지』에도 무척 흥미롭고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유비가 여포에게 패해 허도에 있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러 가던 중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유비 일행이 머문 집 주인인 가난한 사냥꾼 유안은 평소 유비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고자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식량과 돈이 다 떨어지고 없었다. 이 때 유안의 발상이 놀랍고도 끔찍하다. 그는 아내는 또 얻을 수 있으나 귀한 손님 유현덕을 굶겨서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죄 없는 아내를 죽여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다. 유비는 배고픈 차라 밥상에 올린 고기를 맛있게 먹고 무슨 고기이냐고 물었다. 유안은 주저하다가 이리 고기(狼肉)라고 말했다. 유비 일행이 새벽에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한 여인이 부엌에 죽어 있고 팔과 다리에 살이 떨어져 나간 것을 보고는 놀라서 유안에게 물으니 유비와 같은 귀인에게 대접할 것이 없어 아내를 죽여서 살을 삶아 대접했다고 대답했다. 유비는 유안의 지극한 마음씨를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죽은 여인이 측은하기 그지없었지만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유비가 조조를 만나 유안이 아내를 죽여 자신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조조가 돈 백 냥을 손건에게 건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안이란 사람은 과연 義氣男兒요. 돈 백 냥을 줄 테니 유안에게 새 아내를 맞게 하시오.”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 그것도 취미로. 이 말을 사람들은 선뜻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으로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사람 믿을 게 못 된다. “사람으로서,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게 사람이다. 인간 잔혹사의 측면에서 인간이 못할 일이 없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푸아 뉴기니를 방문하기로 예정됐을 때, 교황청에서는 내심 그 나라의 식인 풍습 때문에 교황의 방문을 꺼려하는 분위기였다. 눈치를 챈 현지 신문의 칼럼 제목이 이랬다. “Dont’ be afraid, sir. We won’t eat you.” 이 기사를 본 교황 파푸아 뉴기니에 갔을까 안 갔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일부 지역 사람들의 제사의식에서나 또는 복수나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었던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식인 풍습은 거의 전 세계에 유행하던 풍습 중 하나다.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25?)는 『역사』에서 ‘세상 끝’ 아시아에 식인종이 살고 있다고 기록했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르페우스(Orpheus)는 인간에게 식인을 금지시키고 농사짓는 법과 문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호메로스(Homeros, 기원전 800?~750)는 『오딧세이』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족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을 묘사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순종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그들이 서로를 잡아먹게 되리라고 경고한다. 구약을 보면 사마리아가 시리아의 군대에 포위돼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자식들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이 있다(열왕기하 6:24~29).

24 이 일이 있은 후에 시리아의 벤하닷왕이 그의 모든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포위하니라. 25 그 때 사마리아에는 큰 기근이 들었는데, 보라, 그들이 성읍을 계속 포위하였으므로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 개에 또 비둘기 똥 사분의 일 캅이 은 다섯 개에 팔렸더라. 26 이스라엘 왕이 성벽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왕을 향해 부르짖으며 말하기를 “오 내 주 왕이여, 도우소서.” 하자, 27 왕이 말하기를 “주께서 너를 돕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찌 너를 돕겠느냐? 타작마당에서 돕겠느냐, 포도즙틀에서 돕겠느냐?” 하고. 28 또 왕이 그녀에게 말하기를 “너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이 여인이 내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으라. 오늘은 우리가 그를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으리라.’ 하기에, 29 우리가 내 아들을 삶아 먹고 다음 날 내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으라. 우리가 그를 먹으리라.’ 하니 그녀가 자기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더라.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축제를 말할 때 페스티벌이라는 단어만 쓰고 있는데, 필자가 대학생이던 1970년대에는 카니발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때는 양자의 차이를 모르고 그냥 축제의 뜻으로만 사용했었다. 라틴어에서 차용한 고대 불어에서 14세기 후반 영어에 유입된 festival은 요즘처럼 영화제(film festival)나 예술제(art festival) 등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는 종교적 축일의 의미로 사용됐다. 그래서 중세영어에서 ‘festival dai’는 ‘종교적 휴일’을 의미했다. Festival은 형용사였고, 명사로는 feast가 쓰였는데, 부활절이나 성탄일 같은 종교적 축일의 의미도 있지만 세속적으로는 진수성찬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축제에서는 제례 이후 축연 내지 향연이 벌어지고 그런 잔치에는 정성으로 마련한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준비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코리아 세일 페스타’, ‘정보화 마을 Festa 2017’에서 보듯 축제를 영어 feast 대신 이탈리아어 festa, 또는 스페인어 fiesta를 선호한다.

루벤스의 「Saturn or Saturn Devouring His Son」(1636). 이 그림은 고야에게 영감을 줘 같은 주제의 그림(「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1~1823)으로 등장한다
루벤스의 「Saturn or Saturn Devouring His Son」(1636). 이 그림은 고야에게 영감을 줘 같은 주제의 그림(「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1~1823)으로 등장한다

Carnival은 현재 유럽과 남미 등에서 매년 1~2월경에 열리는 대중 축제이지만 본래는 주현절(1월6일)부터 사순절 전날인 참회의 화요일(Mardi Gras)까지의 기간 동안 열리는 다양한 축하 행사를 뜻한다. 카니발이 축제가 된 것은 이 기간이 지나면 절제와 금욕의 기간인 사순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순절 시작 전에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이탈리아 최대 축제이자 브라질 리우 삼바 카니발,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카니발로 꼽히는 베네치아 카니발(이탈리아어: Carnevale di Venezia)은 가면과 더불어 그 독특한 의상 때문에 가면 축제라고 불린다. 화려한 가면과 옷을 차려 입고 베네치아 곳곳을 누비거나 성 마르코 광장으로 몰려든 베네치아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구경거리다.

‘食人’을 뜻하는 cannibalism이라는 용어는 과거 식인풍습이 있던 서인도제도의 카리브인들(the Caribs)을 가리키는 스페인어 Can?bales나 ‘야만인(savage)’을 뜻하는 스페인어 canibal이나 caribal에서 비롯됐다. 16세기경 서인도 제도를 발견했던 스페인 사람들은 서인도 제도의 카리브인(Carib)들이 人肉을 먹는다고 믿었다. 한편 謝肉祭를 뜻하는 ‘carnival’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carnival의 어원은 중세 라틴어 carnelevarium(‘고기’를 뜻하는 carn-과 ‘가져가다, 없애다’라는 뜻의 ‘levare’가 합쳐진 것)이다. 식인이라는 의미의 또 다른 어휘 ‘anthropophagy’는 ‘사람’을 뜻하는 ‘anthropo-’와 ‘먹다’라는 뜻의 ‘phagy’의 합성어다.
  
굶느냐 사느냐를 놓고 선택을 논한다는 건 애당초 말도 되지 않는다. 역사가 보여주듯, 그리고 개인의 경험이 입증하듯, 餓死之境에 처할 때 인간에게 주어진 지상명제는 “나는 살아야 한다”였다. 식인은 풍습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굶어죽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지막 선택이 식인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굶어죽을지언정 식인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심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資治通鑑綱目』 二에서 보듯 “關中饑人相食(관중지방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는 류의 기사는 중국 측 사서에 널려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관중지방은 오늘날의 서안을 중심으로 한 섬서성 일대를 가리킨다. 아래에서 보듯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에도 당시 전란으로 인한 가슴 아픈 정경이 그려져 있고, 『後漢書』 「溤異傳」에 따르면, 지금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時百姓飢餓, 人相食, 黃金一斤易豆五升(이 때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고, 황금 1근을 콩 5되와 바꾸었다.)” ‘人相食’이라니 먹을 것이 얼마나 없기에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가? 그러나 이런 일이 특별히 중국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빈번하게 혹은 간헐적으로 벌어졌다는데 인간의 무참한 비극사가 존재한다. 그런 지경에 억만근의 황금이 있으면 어쩔 것인가? 한 톨의 콩이 생사를 가르는 엄중한 상황에. 고대인들이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는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그게 일상사고 숙명이었다. 그래서 인간 삶은 애처롭다.
 
杜甫(712-770년)의 시 「春望」이 전하는 봄날의 기다림은 영원처럼 길다. 마흔여섯 되던 해(757년) 아내를 보러 가던 중 ‘安史의 亂’을 당해 반군에 잡혀 장안에 연금되어돼 있을 때 지은 시다.

인간으로 굶어죽을 것인가 야수로 살아남을 것인가?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여전하고 / 도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진다. / 난세에 마음 아파 꽃을 봐도 눈물이요 / 이별이 한 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란다. / 봉화는 석 달째 연이어 피어오르고 / 집에서 보내온 소식은 천만금보다 귀하도다. / 흰 머리는 긁을수록 짧아지니 / 아예 비녀조차 꽂을 수가 없구나.”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다. 전쟁은 약탈을 위한 것이다. 약탈의 대상은 영토일 수 있고, 식량이나 가축이기도 하고, 여자였던 적도 있다. 원한을 갚기 위한 침공조차 끝내 약탈물을 수중에 넣었다. 영웅이니 대왕이니 칭송받는 전쟁의 화신들은 ‘전쟁을 위한 전쟁’을 했다. 같은 하늘 아래 두 명의 영웅은 있을 수 없다. 알렉산더, 한니발, 나폴레옹, 한무제, 진시황, 아틸라, 칭기즈칸, 다리우스 이들 모두가 천하의 지배자가 되고 싶었던 과욕의 비인간들이다. 힘의 과시. 그들은 그걸 즐겼다. 그런 면에서 싸움은 도락이었다. 싸울 때는 죽이는 일에 몰두하고, 싸움이 끝나고 나서는 사는 일에 열중했다. 승자는 이겼음을 축하하며 먹고 마시고, 패자는 굴욕을 삼키고 내일은 이기기 위해 고배를 들었다.

보복전쟁을 겪으며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쟁광들은 알았다. 그래서 철저히 파괴하고 재기의 싹을 남겨두지 않았다. 때문에 전쟁은 잔인할 수밖에 없었다. 패장의 수급을 베는 것으로도 모자라 처참하게 혹은 영광스럽게 죽은 死者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기념주를 마신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 대한 과시이자, 약탈해온(사로잡은) 노예들에 대한 위협이었다. 따라서 노예들은 즐겁지 않고 뜻밖의 불행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을 시도한다.
 
572년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가 맞붙는다. 오래 참았던 전쟁의 욕구는 아르메니아의 개종이 빌미가 되어 폭발했다.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누스 2세(Justinus II)는 사산조 페르시아에 공물을 바치는 것에 진즉부터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약속한 공물을 바치지 않는 언더독을 그대로 둔다는 건 오버독 페르시아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었다. 인내와 타협, 양보 등의 미덕은 자존심 때문에 촉발된 전쟁욕에 사로잡힌 두 사내의 안중에는 털끝만큼도 없었다. 이 전쟁은 20년을 끌었다. 전쟁의 폐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민중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당장 허기를 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굶어죽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처절하게 삶에 저항했다. 더욱이 전쟁 포로들은 치욕과 분노로 몸을 떨면서도 먹을 것 앞에서 양심과 인간성마저 잃었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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