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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합리화에는 모두 한 목소리…“정부는 제도 실행력 높이고 조정자로 물러서야”
규제합리화에는 모두 한 목소리…“정부는 제도 실행력 높이고 조정자로 물러서야”
  • 윤상민
  • 승인 2017.11.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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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총, 제4회 과학기술혁신정책포럼 개최
제4회 과학기술혁신정책포럼 토론 현장. 사진 제공 = 과총
제4회 과학기술혁신정책포럼 토론 현장. 사진 제공 = 과총

이날 두 발표 모두 과학기술계를 옥죄어온 정부당국의 규제에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첫 발표는 과총 과학기술혁신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우일 서울대 교수(기계항공공학부)의 「4차 산업혁명시대 R&D 규제와 거버넌스의 합리적 방향」으로 시작됐다.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분명히 하기 위해 1,2,3차 산업혁명들을 소환해 구분 지었다. 그는 “1, 2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변환과 전송의 변화에서 왔고, 3차 산업혁명은 정보로 넘어간 것”이라며 “정보가 기계적 에너지, 전기적 에너지와 결합되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근거로는 기업가치가 10억불이 넘는 ‘유니콘 기업’들이 최근 들어 수십 개로 증가한 혁명적인 변화를 꼽았다.

First Mover의 창의적 연구 절실

이 교수는 1,2,3차 산업혁명의 특징이 대량, 구획, 설계인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에코시스템 하에서 공간, 시간, 성별,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량생산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First Mover의 역할론을 강조한 이 교수 는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Fisrt Mover의 창의적인 연구가 필요한데, R&D 규제제도가 미비해서 연구자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규제현실을 비판했다.
실제 사례를 든 그는 “35명의 연구자가 소속된 BK연구단에서 구성원 1명이 연구비 관련 제재를 받으면 사업단 사업비도 매년 10%P씩 삭감되는데, 연좌제도 이런 연좌제가 없다”며 “규제의 그물코는 점점 작아지는데 연구비는 늘어나면, 결국 그물에 걸리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점점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비윤리적 집단이 되어갈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 교수는 “물론 일부 비윤리적인 연구자는 일벌백계해야함이 당연하지만 규제당국이 과연 과학기술자에게 전폭적으로 신뢰를 준 적이 언제였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며 “연구의 속성은 이해하지 못한 채 건설 공사와 같은 잣대로 규제만 양성하다가는 4차 산업혁명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관 주도식 R&D시대의 종말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이광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술규제연구센터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이 센터장은 “게임의 룰을 바꾼 애플사는 새로운 생태계를 열어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지만, 한국은 단 한 번도 First Mover였던 적이 없다”며 “휴대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3총사로 자본과 설비 등 요소투입을 위주로 한 관 주도식 R&D시대는 21세기에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지난 정부들의 과학기술정책을 진단했다. 정부의 역할이 엘리트 주도자에서 조정자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센터장에 따르면 정책의 목적은 여전히 ‘경제성장’에 머무르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삶의 질’과 ‘지속가능성’이 중요하게 고려할 점이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삼두마차로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AI(인공지능)을 꼽으며 “IOT가 인간 개인들의 취향을 끊임없이 수집하면, 그 쌓인 자료를 빅데이터로 비교 분석하고, AI는 그 많은 데이터 중에서 개인이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게 해 주는 상황이 현실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삼두마차

그럼 한국적 맥락에서 왜 규제 문제가 발생할까? 이 센터장은 개별 기술·산업별로 수많은 정부당국의 규제가 존재하는데 분야가 중첩되면 중복규제의 문제가 생긴다고 봤다. 그는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에서 민간 자율규제가 발달하지 못한 점, 규제형성에 대한 담론구조가 취약한 점 역시 규제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로 봤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R&D 규제 정책의 큰 틀을 ‘Negative’로 선언한 것에 대해서 이 센터장은 ‘실현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헌법 개정까지 가야할 문제라는 진단이다. 특별법, 기본법, 시행령, 행정규칙 등 여러 층위의 R&D 관련 규제법안은 현재 800개에 육박한다.

이 교수는 ICT 융합의 특성과 규제와의 관계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중요하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우버택시와 사납금 제도가 남아있는 택시업계, 원격의료와 ‘진료는 의사에게’, 무크·디지털대와 저작권 소송, 3D 아바타 의류 피팅모델프로그램과  2차 저작권소유 문제 등 정보비대칭성이 와해되는 과도기에 기득권의 저항과 동떨어진 정부당국의 R&D 규제로 인해 과학기술계의 발목이 잡혀있다는 불만이다. 해결책으로 이 교수는 “행정부 차원의 규제 보다는 입법부 차원에서 접근하는 규제개선절차의 제도화”를 제안했다. 영국의 입법위원회가 그 사례다.

이어진 종합토론은 박희경 KAIST 연구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양의 시대의 종말’을 꺼내든 박상옥 숭실대 교수(행정학과)는 “양적 성장이 없는  데서 창의성을 담보하려면 규제합리화가 필수라 연구현장에서 이에 대한 요구가 어느때보다 높다”며 R&D 규제합리화 전략으로 △종교와 과학 사이에 균형 있는 협력 △R&D 규제개혁위원회 설치 △자율규제 △창의성 필요한 R&D는 ‘Positive’ 규제를 제언했다.

노동가치가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요자 중심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김준하 지스트 교수(지구·환경공학부)는 “자율주행자동차의 핵심기술은 배터리나 통신기술이 아니라 빅데이터”라면서 “얼굴을 인지해야 하고 도로 표지판도 읽어야 하고 도로 상태도 봐ㅗ야 하는데 개인정보보호법을 검토해야한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 교수는 “신뢰 기반의 R&D 규제정책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데이터 자치권과 자주권이 확보되면 R&D 규제개혁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데이터 자치권과 자주권 확보

규제개혁 공론장에서 늘 제기되는 제도 일원화 문제 역시 이날도 제기됐다. 황명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정책위원은 “각 부처별로 다른 R&D 관련 규정을 하나로 통합해야 함”과 동시에 “각 연구기관도 자율적 연구방향을 설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관만의 내부규정은 폐지하거나 새로운 세부규정을 만들지 말 것”도 제안했다. 

이만하면 규제에 대한 토론은 충분했고 집행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세준 고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정책연구본부장은 “OECD규제정책위원회에서 2000년, 2007년, 2017년 3번에 걸쳐 한국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규제개혁 효과를 재고하기 위한 전략 필요하다는 것과 집행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관성 없이 추진될 것이 아니라 실효성 있게 집행되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의 비교적 통합된 목소리와는 결이 다른 시각도 있었다. 13년간 연구자였다가 변호사로 전직한 최지선 선린 테크앤로 변호사는 “미국의 혁신적 10대 기업이 국내에 진입하는 순간 위법기업이 되어 비즈니스는 물론 고유 개발 기술까지도 사장시켜야 하는 게 한국 R&D 규제의 현실”이라고 입을 열었다. 최 변호사는 R&D 규제를 바라보는 정부당국과 법률가의 묘한 시선의 차이로 “법률가들은 자율주행차 같이 특정한 상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방법이나 이와 관련해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중심을 두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자원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보다 큰 진흥법이나 규제완화법 도입을 통해 기타 여러 가지 불일치를 해소하는 식”이라고 지적하며 양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안했다.

연구자들의 윤리의식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진두 과학기자협회장은 “국민이 과학자들에게 기대하는 눈높이가 매우 높다”며 과학자들의 자정노력을 촉구했고, 사회를 맡은 박희경 교수 역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성공한 국가는 독일과 일본인데 이들의 규제정책이 ‘Positive’라는 점도 되새겨 봐야 한다”고 첨언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제안에 대해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현재 17개 부서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데 연구관리시스템이 다 다르다”며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부분을 반성하며 금년에 2개 시스템으로 차후 일원화된 연구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답변했다.

그 어떤 정부 때보다 국가과학기술혁신체제에 대한 기대가 큰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변곡점에서 연구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R&D 규제합리화에 대한 이날 토론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현장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정책입안자들과 주무부처 그리고 민간 영역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지 과학기술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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