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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율성의 확대
대학 자율성의 확대
  • 한달선
  • 승인 2003.05.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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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총장실


이즈음 지방대학의 위기가 자주 거론된다. 오래 전부터 예견되던 대학 입학 지원자 숫자가 모집인원을 밑도는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 지원자 감소로 인한 어려움이 왜 지방대학에서 특히 심각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대학 경쟁력의 요건을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나라 대학들의 경우 대학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특히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로부터 얼마나 가까운지가 학생과 교수 유치를 위한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인구를 비롯해 사회 모든 부문의 자원과 활동이 수도권과 일부 도시에 집중돼 있어서 많은 지방대학의 대다수 교수와 학생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사회참여와 사회진출의 기회마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본 입지가 적절치 못한 곳에 왜 대학들이 설립됐을까.

대학의 숫자와 입학정원은 지난 20여 년간에 급속히 증가했다. 교육대학을 제외한 4년제 대학의 경우 1980년에 85개교 입학정원 11만6천7백명이던 것이 2000년에는 1백61개교 31만4천4백10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수도권 인구억제 정책, 부지 비용 등을 감안할 때 대학신설이 주로 지방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입학정원을 늘리는 방안으로 대학을 신설하기보다 기존 대학의 증원에 무게를 두어 추진했더라면 대학의 위기가 지금보다 덜 했을 것이고 대처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예측이 어렵지도 않은 대학지원자 수에 대해 20년 후의 변화도 감안하지 않은 정책결정의 결과로 일부 대학들이 심각한 난관에 당면하게 된 것이다. 존립마저 위협받는 대학들이 있다는 사실은 해당대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대학교육의 국제적 경쟁력 미흡의 원인도 된다.

오늘날 고급인력이 국가발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된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므로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설정된 우리 나라 대학정책의 목표가 적합했는지, 수단은 효과적이었는지, 결과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러나 이들 정책적 접근에 대한 체험과 관찰로부터 단편적 실마리나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정책도 우리 나라 많은 분야처럼 심한 불신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교수채용 과정과 방법을 철저히 규제하지 않으면 대학들이 당장 부정을 저지를 것으로 보는 듯하다. 임용절차에 사소한 오류만 있어도 채용된 분의 적합성이나 우수성에 관계없이 큰 비리로 지적되는 것이다. 대학 자체적으로는 교수모집 지원자들의 전공이 모집할 분야에 적합한지 여부도 공정하게 심사할 능력이 없다고 보는지 그런 기초적 심사에조차 외부인사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처럼 행정의 객관적 투명성 확보에 치중함으로써 내실을 희생하는 형식주의로 흐르는 관료제조직의 병폐가 대학운영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학과 정책당국이 함께 서로 신뢰를 쌓아 가는데 힘써야 하겠다.

정부역량의 과신에 입각한 획일주의적 조치들도 발견되고, 대학의 자율성이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아직도 심히 제한돼있다는 지적이 많다. 입학시험, 교육조직, 학사제도, 교수인사 등에 관한 제도설계와 운영방식은 대학이 특성화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정부의 명시적, 묵시적 지침에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제한돼 대학별 차별화의 여지가 차단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대학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대학들이 급속히 민주화됨으로써 대학경영에 대한 구성원들의 참여와 통제가 확대되고 있음은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책당국은 이제 비리 시정을 위한 규제조치보다는 대학발전의 적극적 선도와 지원을 통해 대학들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자율적으로 노력할 여지를 넓혀줘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대학교육을 국제적 표준에 비추어 손색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효과적 접근이 되리라 믿는다.

한달선 / 한림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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