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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호 새로나온책
899호 새로나온책
  • 교수신문
  • 승인 2017.11.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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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머리
“세계를 사유하는 도구로서의 개념을 만드는 능력, 그리고 판단의 진실에 기꺼이 동의하며 믿음에 기초한 이웃 관계를 만드는 능력, 그 능력은 밖에서 조형해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삶에 내축돼 있는 지식생산 능력의 드러남이다. 앎, 그게 왜 좋지? 앎이 교육의 종착점 가치인가? 앎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으며, 옳은 것을 옳다고 판단하는 앎에 의존하지 않고 공동체 관계를 이룰 수는 없다. 배려와 책임도 그 공동체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 앎이 개성과 사회성의 기초다. 개성이 개인에 선행하고 사회성이 사회에 선행한다. 무엇을 어떻게 구성하든 그 사람의 삶은 앎, 지식으로 갈무리될 수 있다. 삶이 앎, 지식이다. 그때 모든 이의 삶은 능히 교환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앎은 목적이다. 앎은 다른 어떤 가치를 얻는 데 필요한 수단이 아니다.”

―김민남 경북대 명예교수, 「교육은 교육방법론의 실천이다」, 『프레이리의 사상과 실천』(사람대사람 지음, 살림터, 2017.10) 중에서

 

■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 박철수 지음, 집, 384쪽, 22,000원

이 책은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장독대, 더스트 슈트, 곤돌라처럼 흔적만 남은 주거공간의 사소한 부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상가주택, 불란서식 2층, 맨션아파트처럼 주거 유형의 변천사와 단지 공화국, 국토건설단, 서울 요새화 계획처럼 법령과 제도에 의해 형성된 거주문화 등 오랜 시간 관심 두고 연구한 연구자가 아니라면 놓치거나 너무 광범위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담았다. 이 책은 장 구분을 하기보다는 서로 연관 있는 주제를 네 개씩 다섯 꾸러미로 묶었다. 각 꾸러미 별로 앞선 세 꼭지는 이야기하는 주제의 인과관계, 변화 과정을 신문, 잡지, 국가기록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기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적하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많은 각주도 달렸다. 참고문헌 중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의 이태준의 「복덕방」과 박태원의 「골목 안」부터 2017년 제11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의 「웃는 남자」까지 50편 이상의 소설을 참고하고 인용했다. 소설은 당시 우리 도시, 우리 삶의 공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좋은 참고서다.

 

■ 불균등발전: 자연, 자본, 공간의 생산, 닐 스미스 지음, 최병두 외 옮김, 한울엠플러스, 416쪽, 39,500원
지리학과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함으로써 자본이 지리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지리학자 닐 스미스의 최초의 저서이자 지리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책이다. 닐 스미스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기반으로 자연과 공간은 자본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증명한다. 또한 부와 빈곤의 양극화, 도시화와 환경 파괴가 전 지구적 규모로 매우 빨리 확대되고 있는 것은 바로 자본에 의한 불균등한 발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 책은 오늘날 대도시들이 겪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지대 격차를 노리는 자본의 운동으로 규정하고 이에 주목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자연과 공간의 생산을 지향하는 자본의 강력한 추동력을 도출하고 이를 불균등발전으로 이론화한 이 책은 도시 차원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물론, 세계적 차원의 미국 제국이 발전하고 지구화한 과정까지 이해하는 데 오늘날까지도 원용되고 있다.

 

■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브루스 커밍스 지음, 조행복 옮김, 현실문화, 416쪽 25,000원
『한국전쟁의 기원』으로 한국전쟁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총정리한 한국전쟁의 모든 것. 새로운 사료를 반영하고 아주 쉬운 필치로 써내려 간 역작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단과 전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저항세력’과 ‘부역세력’ 사이에서 벌어졌던 대립,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의해 추진된 일본과 남한에서의 조치, 북한과 중국·러시아 사이의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되돌아보며, 이후 분단이라는 형태로 고착된 대결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리고 이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그 연장선상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 위기를 풀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분단이 고착돼 냉전이 만성화된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알려 준다. 바로 현재의 우리를 만든 분단과 전쟁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신형방 엮음, 미류·이영범 외 지음, 동녘, 359쪽, 19,000원
고요했던 도심 어느 동네에 하루가 다르게 새 건물이 올라오고, 기존 주거지를 갈아엎고 대규모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그 결과,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쫓겨나는 동네 원주민과 기존 상인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 일상의 재난인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룬다. 학술서나 연구서라기보다는 재난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고민을 모은 책이다. 기존 책들이 한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은 ‘젠트리피케이션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지리환경학과 교수 신현방이 기획하고 엮었으며, 열두 명 필자의 글을 실었다. 필자들은 젠트리피케이션 재난의 당사자이거나 당사자들과 연대해온 이들이다. 이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 활동, 지역운동을 조직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활동에 힘써왔다. 필자들 모두 재난 현장과 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시급하고도 적절한 해법을 제시한다.

 

■ 현실의 경제학, 스티븐 S. 코언 외 지음, 정시몬 옮김, 부키, 264쪽, 15,000원
경제 불황의 시대, 미국 경제사에 정통하면서 정부의 경제 정책에 직접 관여해본 경험이 있는 스티븐 S. 코언과 J. 브래드퍼드 들롱이 미국 역사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 경제성장을 질문한다. 특히 자유시장 경제의 상징인 미국조차 비교적 최근까지 시장의 힘에만 경제의 운명을 맡기지 않았고, 그랬기에 경제 성장에 성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술 혁신의 힘, 동아시아 경제 발전의 원동력, 현재의 전 세계적인 불황의 이유 등을 짚으면서, 경제 성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를 통찰할 수 있다. 미국의 역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성공적인 경제 개혁은 단 한 번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만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성공에는 늘 보이지 않는 손의 팔꿈치를 들어 올려 적절한 위치로 옮겨주는 정부가 있었다. 경제 발전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임무라는 지적이다.

 

■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 김신범 지음, 포도밭, 336쪽, 17,000원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것은 기업들이 사용한 화학물질 취급 정보다. 그런데 2013년 기준 국내 기업들 중 86% 가량이 화학물질 정보를 ‘영업 비밀’을 이유로 공개하길 거부했다. 이것들은 정말로 영업상 중요해서 비밀이었을까. 아니다. 심지어 회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둔 정보까지 공개 요구 시 영업비밀이라고 우기는 일도 있었다. 공개하라는 강제가 없으니 그냥 감추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환경부 직원을 통해 미국에서는 영업미밀 인정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미국은 회사가 영업비밀을 주장해 얻고자 하는 이득, 즉 시장 내 독점적 지위보다 제품 구매자가 제품 정보를 온전히 이해하고 가격과 안전과 성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더 우선시한다. 정부가 영업비밀을 인정해주는 것은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본다. 이 차이인 것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일이 왜 우리 사회에서는 그토록 어려웠을까. 결국 권력이 누구 편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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