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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 바빌론이여!
바빌론, 바빌론이여!
  • 김성 협성대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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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메소포타미아의 꿈

김  성 협성대·성서고고학

이라크 지역에서의 고고학적 발굴은 1840년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보타와 영국의 레이야드는 각각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코르사바드와 니므루드를 발굴했다. 이곳에서 출토된 거대한 황소인간 라마수 조각상들은 오늘날까지로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 전시관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독일은 1899년부터 그 유명한 바빌론을 발굴했지만 대부분 흙벽돌로 이뤄진 초라한 건축물이어서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푸른빛의 타일 벽돌로 이뤄진 바빌론의 이쉬타르 성문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송두리채 뜯어다가 베를린의 국립박물관에 조립시켜 놓았다.

나일강변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화려하고 웅장한 이집트의 유적지들과 비교해 볼 때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들은 주로 부식된 흙벽돌의 언덕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는 수백만 점에 달하는 고대의 토판문서의 기록에 담겨져 있다. 이미 서기전 650년경 앗시리아의 앗슈르바니팔 왕은 이미 니느웨에 왕립 도서관을 세우고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흩어진 중요한 종교적, 학문적 문서들을 수집해 보관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미국의 유명 박물관의 진열장들을 채우기 위한 이라크의 유적 발굴은 193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바그다드에 이라크 박물관이 설립되면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한 가운데 직사각형의 정원이 있는 ㅁ 자 형태 2층 구조로 이루어진 이라크 박물관은 모두 28개의 전시실에 신석기 시대부터 중세 압바스 왕조 시대까지 약 1만년에 걸친 오랜 세월의 유물 30만점 중에서 약 1만여 점이 빼곡히 진열장을 채우고 있었다.

2층에는 신석기 시대, 수메르 시대, 바빌로니아 시대 유물들이 진열돼 있고 아래층에는 앗시리아, 하트라, 압바스 왕조의 유물들이 진열돼 있다. 우룩에서 출토된 1미터 높이의 알라바스터 항아리를 비롯해서 니느웨에서 발견된 사르곤의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제 가면, 우르에서 출토된 세계 최초의 하프, 초기의 수메르 상형문자가 새겨진 토판문서, 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토판문서 등이 대표적인 유물로 손꼽힌다.

지난 1991년 1월 걸프전이 발발하기 직전 박물관의 중요 전시 유물들은 지하 수장고로 옮겨졌고, 거의 10년이 지난 2000년 4월 28일 사담 후세인의 생일에 맞춰 이라크 박물관이 재개관됐다. 당시 박물관이 파손되거나 약탈당하지도 않았지만 다시 문을 열기까지 10년 동안 약 4천여 점의 유물들이 박물관으로부터 밀반출됐다고 한다.

지난 3월 20일 이라크전 첫날 바그다드 시내에 엄청난 공습이 가해졌을 때 우리는 오폭에 의한 박물관의 파손 및 근처에 떨어진 폭탄의 굉음에 의한 정교한 유물들의 손상을 심히 우려했었다. 하지만 연합군의 바그다드 점령과 함께 시작된 시민들의 약탈은 어이없게도 자신들의 문화재 보고를 완전 폐허로 바꿔 놓고 말았다.
1954년 헤이그에서 체결된 전시 문화재 보호협약은 만일 피점령국이 문화재를 보호할 능력이 없을 경우 점령국이 대신 보호할 것을 명시했다(제5조). 또한 군부대 내에 전시 문화재  대책반을 설치하고 군인들에게 문화재 보호에 관한 교육까지 시키도록 권장했다(제7조). 세계 1백4개국이 조인한 이 협약에 미국과 영국이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로 치더라도 그 성능 좋은 미군 탱크 한 대만 배치됐더라면 세계 최고 문명의 보물창고를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다는 이라크 박물관 담당자의 절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미영 연합군측에는 약 1천3백명에 달하는 세계 각국의 종군기자들이 배속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생중계했다. 만일 단 몇 명의 고고학자들이라도 바그다드로 향하는 점령군에 배속됐더라면 이라크 박물관이 이처럼 처참하게 유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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