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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住노동자와 침묵의 카르텔
移住노동자와 침묵의 카르텔
  • 강수돌 고려대
  • 승인 2003.05.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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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중소기업가가 기업을 하는 이유는 먹고살기 어렵고, 또 마땅히 달리 배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분노가 협박으로 이어진다. “당신 제 정신으로 그 글을 쓴 게 맞습니까? 중소기업 사장들 면전에서 이런 소리를 했으면 아마도 뺨을 맞았을 거요.”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많은 산업연수제(연수취업제)를 하루빨리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나 노동허가제로 가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한 중소기업가가 편 반론이다. 연수생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근거는 이렇다. “(우리가) 오죽하면 외국인까지 활용하겠는가 생각해 보시오. 공장 팔고 기계 팔고 남는 돈으로 룸살롱에도 가서 술도 한잔하고, 남들이 가는 골프장에도 가고, 가끔 해외 나들이를 하며 살아도 살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는 되지만, 중소기업인이 그러지 못하는 건 우선 직원들 급여를 줘야하고, 그래야 그 돈으로 달린 식구들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오. 공장을 하나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오. 일요일이 있나, 마음에 여유가 있나, 자재조달, 직원관리, 운영자금 마련, 영업활동, 판매대금 회수, 고단한 일생을 하루하루 지탱해나가는 그 어려움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소.” 마침내 그 특유의 애국 정신까지 나온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애국자요!! 혼자 편하게 살자면 얼마든지 편히 잘 살수 있소.”

사업하는 돈으로 편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잘 사는데, 경제 발전과 애국심 때문에 사서 고생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제발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자’고 ‘막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안다. 자본주의 기업가들의 고통과 애환을.
그들은 갈수록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라이벌 업체도 물리쳐야 하고 저항하는 노동자들도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기업가답게 살아가려니 차도 좋은 차를 몰아야 하고 고위 인사들과도 잘 어울려야 하며 로비도 많이 해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일 노동에 차별 임금을 지급하거나 분명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연수생 취급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아가 정말 ‘애국’하려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좋은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야지 평생 가슴에 남을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

안산의 반월공단 내 염색업체인 ㄷ사 공장에서는 작년 9월에 46명의 산업연수생이 열흘 이상 농성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을 시키면서 연수생들에게는 한 달에 단돈 2만원만 주었다. 나머지 월급은 ‘이탈방지’ 명목으로 회사가 강제로 적립했다.

이들의 기본급은 19~23만원으로 최저임금인 51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농성 당시 연수생 카오(24세)는 “한 달 2만원으로는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집에 전화를 걸고 나면 끝이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전국 곳곳에서 이런 비인격적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전체 40만 국제이주노동자 중 70∼80%에 이르는 30만 정도가 미등록(불법) 노동자로 분류되는 현실은 연수생 제도로 상징되는 해외인력 정책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증명한다.
나아가 한국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와 기업가, 소비자와 노동자, 나아가 지식인까지 비인간적이고 차별적인 연수생 제도를 묵인하는 일종의 ‘공범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아직 한국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웅변한다.

새 정부는 그 어떠한 자본가나 권력층,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도 굴하지 말고 국내외적으로 ‘떳떳한’ 제도를 수립해야 하며, 지식인 또한 침묵의 카르텔을 박차고 나와 건강한 여론 조성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꼭 필요하다면 정부간 계약을 통해 필요만큼 도입하고 정당한 대우를 하자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나 소비자 단체들도 과거 60∼70년대의 한국 간호사나 광부들이 독일에서 흘린 피땀과 눈물을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에 기초해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차별 구조의 타파에 주체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더불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강수돌/고려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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