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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마다 몸살 앓는 대학가 …정부, 재정지원 늘려야
봄마다 몸살 앓는 대학가 …정부, 재정지원 늘려야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3.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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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 -정부와 기업, 대학을 키워라 2 등록금에 의존하는 대학 재정


연세대는 올해 등록금을 9.5%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발끈한 학생들은 현재까지 본관을 점거, 농성하고 있다. 총학생회는 재학생 5천명의 서명을 받아 교육부에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올해도 5~10% 가량 등록금이 오르면서 어김없이 학생들은 전국 각지에서 농성, 총장실·본관 점거, 삭발식, 단식을 벌이고 있다. 활기차야 할 새 학기마다 접하는 우울한 풍경에 교수들도 마음이 무겁기는 마찬가지. 총장실에서 수십일 째 새우잠을 자며 시험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제자들이 안쓰럽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등투’ 속에 어느새 캠퍼스의 고질병이 된 반목과 불신, 대학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씁쓸하다. 그렇게 올린 등록금은 대학경쟁력 확보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 

총장실 아닌 국회·정부 책임
한 대학에서는 등록금 ‘협상’ 과정에서 “라면 값을 내면 라면밖에 못 먹는다. 스테이크를 먹으려면 스테이크 값을 내야 한다”라는 말이 나와 눈총을 샀다. 2001년 대학 운영 수입 중 등록금 비율은 4년제 대학이 70.4%, 전문대학이 89.4%, 평균 75.1%에 이른다.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등록금이 오르면 그만큼 대학의 교육·연구 여건이 나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10년 사이 등록금은 두 배 이상 올랐지만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80년 34.8%에서 2001년 41.5%로 오히려 악화됐다. 학생 1인당 건물 면적은 80년 11.5㎡에서 97년 10.9㎡로 감소했다. 2001년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술논문 수는 2.31편, 저서 수는 0.20권에 머무는 것이 현실. 이러한 재정구조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장기적인 대안책 마련에 대학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등록금 투쟁으로는 연구력 강화도, 대학 발전도, 국가 경쟁력 제고도 기대할 수 없다.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체 고등교육에 국가가 나서 공공의 두뇌를 기르는 역할을 자임해왔지만 우리나라는 그 역할이 극히 미미하다. 고등교육재정의 GDP 대비 비율은 99년도의 경우 스웨덴 2.1%, 캐나다 1.9%, 미국 1.4%, 스위스·호주 1.2%, 독일·영국 1.1%에 한참 못 미친 0.6%로, OECD 평균 1.2%의 절반 수준이다. 총 교육예산 6%는 김대중 정부가 지키지 못했고 노무현 정부가 다시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지켜질 지는 미지수.
대학교육에 첨단 시설 및 우수 인력을 대거 투입해야 할 시점에 이러한 투자 마인드 부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1년도 세계경쟁력연감’에서 한국이 총 49개국 중 28위를 차지한 데서 보듯 고등교육에 투자하지 않는 국가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지난 30년간 대학 수 7배 증가, 학생 수 17배 증가란 기록적인 성장세와는 달리 우리 고등교육은 여전히 ‘질’이란 측면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총장실로 달려갈 일이 아니라 국가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폐기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교육재정 확보의 기본 방향을 바꿔 국가와 기업, 사학재단, 그리고 기부자들의 역할을 북돋는 것이 시급하다.
89년 ‘등록금 자율화’, 95년 ‘대학 정원 자율화’, 그리고 최근 국회가 입법 추진 중인 ‘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과는 다른, 새로운 대안을 정부, 국회, 청와대에 전달해야 한다. 대학은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公器라는 점을 망각하고는 하버드대나 파리대 같은 명문대학을 만들 수 없다.

“고등교육 재정 개혁 의지가 필요” 
노무현 정부는 이전의 정부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고보조금을 늘리고, 일반지원사업비 규모를 늘리되, 각종 평과 결과에 따라 지원하는 사업비의 규모는 줄여 자율적 대학 특성화 정책에 역행하는 우를 피해야 한다. 평가를 하더라도 질적 평가가 이뤄지도록 항목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지원이 선행되고 난 뒤에야 대학 내 ‘구조조정’의 요구도 정당성을 가질 것이다. 예결산 공개를 확대하고 이월적립금의 한도액을 설정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나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 대학 내에서도 방만한 운영방식을 효율화하고 이사장과 총장을 정점으로 위계화돼 있는 대학 행정 시스템을 학문 중심으로 재편해 대학이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대학 내 모든 구성원이 앞장서서 변화를 리드할 필요가 있다. 등록금이 대학 예산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등록금 문제가 단지 대학 본부와 학생 몇 명만의 협상으로 한정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한 교수는 “그동안 입장이 애매하다는 이유로 많은 교수들이 침묵을 지켜왔다”라고 말하면서 “등록금 문제가 곧 재정 문제인 이상 고등 교육의 기틀을 바로잡는다는 각오로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한 교수는 교수노조, 민교협 등 교수단체의 활동과 여론 조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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