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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식과 비판적 거리
연대의식과 비판적 거리
  • 김필동 충남대
  • 승인 2003.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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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김필동 충남대. 사회학 /

김필동
충남대·사회학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시대를 ‘대전환의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논자들은 이 전환기를 후기 자본주의 사회, 지식·정보화 사회 등으로 명명하고 있다. 표현과 강조점은 다르지만, 산업 생산을 포함한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정보 및 지식의 창출, 전달 및 활용이 중심 역할을 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식의 변화이다. 과거 지식이라 하면 무엇보다 사물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지식, 인간과 현실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교양 지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성숙하고, 직업이 분화되며, 기술이 고도화됨에 따라 지식은 점차 실용적 지식, 전문적인 기능 지식의 의미를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교양 지식은 점차 빛을 바래게 됐고, 전문적인 지식 또한 실용성과 생산성·상품성이란 준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지식 체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지식은, 특히 그 가장 고차적인 형태는 분과 학문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무엇보다 대학 제도와 교수들이 중심이 된 연구자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지식 개념의 변화는 대학이 갖는 지위와 역할을 상대화시켰다. 지식산업의 발전에 따라 대학 외부에 지식생산의 기지가 크게 늘어났고, 때로는 이들이 대학보다 더 역동적인 지식 창출·전달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기업적 연구 조직, 벤처기업, 그리고 다수의 전문 연구자를 포용하고 있는 거대 국제기구가 포함된다. 동시에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산업의 요구 또한 더욱 직접적인 것이 됐다. 이로써 대학의 독자성과 자율성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한편 대학의 위상은 시민단체의 활성화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국제적인 연계를 갖고 활동하는 다수의 전문 민간단체들은 환경·인권·평화·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대안적 가치, 대안적 발전을 추구하면서, 대학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학문 활동의 형식과 내용에 문제를 제기한다. 누구를 위한 지식인가를 고민하면서, 실천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지식생산의 길로 나아가는 이들의 활동은 과학적 객관성의 이름 아래 가치 판단과 사회 참여를 유보해온 상아탑적인 학문 활동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에는 대학 교수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지만,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대학과 전문 시민단체는 지식 생산을 둘러싸고 부분적으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의 대학은 산업계와 시민단체, 더 넓게 보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대안적 발전을 추구하는 세력 사이의 대립 구도 속에서 이들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지식활동을 영위하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은 산업계와 세계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대학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업의 근거지인 산업계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직장인이 기업의 기계가 아닌 독자적인 생활인이자 인격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이 자율성을 갖고 세계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독자적인 전망을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점에서 대학은 세계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자기 전개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및 그들의 윤리적 지식 활동에 주목하고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학은 시민단체의 활동에 대해서도 협력과 함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의 활동과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또한 비판적 검토와 세련화의 대상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다시금 주목해야 할 점이 대학이 갖는 교육의 기능이다. 산업계든 시민단체든 간에 지식 활동의 담당자는 대학으로부터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학은 지식생산의 담당자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성숙한 자율적 지식인을 길러내야 할 사명이 있다. 바로 이 인격적 성숙성이 진리를 객관적으로 탐구하고 진실에 입각해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지식체계의 변동과 이로 인한 연구의 생산성에 대한 압박 때문에 이러한 대학의 사명에 소홀한 점은 없는지 새삼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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