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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속에서 깊어진 ‘無敎會의 정신’ 두 기둥
논쟁 속에서 깊어진 ‘無敎會의 정신’ 두 기둥
  • 김용준 교수
  • 승인 2003.04.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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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

<옥수수라 하든 강냉이라 하든 또는 코온이라 하든 먹어보면 맛은 다 한가지인데 왜들 이렇게 이름가지고 야단들인지 나도 명색이 역사 공부한답시고 전부터 까아지(箕子) 조선에서 시작하여 조선이라는 말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되도록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쓰려고 노력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가 어쩌다가 조선이란 말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께서는 얼른 대한민국이라고 고쳐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 개인으로 말한다면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라는 한 인격을 내 평생에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대한민국으로 얼른 고쳐 들어달라는 말에 폭소를 터트렸던 청중들은 우찌무라라는 한 인격을 평생에 접할 수 있었던 일은 이 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는 폭탄선언에 찬물을 끼얹듯이 엄숙해졌다. 나도 머리카락이 쭈삣하게 솟아오르는 일종의 두려움이 앞섰다. 그 당시 장내의 분위기로 보아 형사들이 단상에 뛰어 오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참 종교는 이름 없는 정신일 뿐

내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서울 종로에 있는 옛날 YMCA 목조건물 2층 강당에서 있었던 강연회는 ‘內村鑑三과 無敎會主義’라는 제목으로 宋斗用 선생님이, ‘金敎臣과 聖書朝鮮’이라는 제목으로 柳達永 선생님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第2의 宗敎改革’이라는 제목으로 咸錫憲 선생님이 말씀해주시기로 되어 있었다. 사회는 盧平久 선생님이 맡으셨다. 그런데 강연회가 시작도 되기 전에 강단 뒤쪽에서 언성이 높아지면서 장내가 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노평구 선생님이 단상에 나타나셨다. 그리고 매우 흥분된 어조로 종로 경찰서 형사가 와서 ‘金敎臣과 聖書朝鮮’이라는 제목의 강연은 허락할 수가 없다하여 시비가 벌여졌다는 것이다. 당시 이승만 정권하의 반공(反共) 반일(反日)이 국시(國是)였던 때였다. 대한민국인 이 나라서 북조선인민공화국이란 이북 괴뢰정권의 칭호인 ‘조선’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거의 타부시 되고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형사가 ‘김교신과 성서조선’이라는 제목이 대중 앞에 크게 제시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聖書朝鮮’이란 김교신 선생님이 내시던 독자 2백명 정도의 잡지 이름이지 북조선인민공화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고유 명사에 불과하다는 설명을 아무리해도 형사들은 막무가내였던 모양이다. 성미가 다소 급하신 노평구 선생님은 단상에서 어쩔 줄을 모를 만큼 흥분된 어조로 이미 종로경찰서에서 집회허락을 받았는데도 형사들이 간섭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청중을 향해서 설명하고 계셨던 차에 함 선생님이 등장하시어 위에서 소개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반공 반일의 국시가 무너지고 있다는 듯이 형사들이 말썽을 피웠던 것이 당시 우리나라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실정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이 강연회를 잊지 못한다. 독자들은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선생님 2만날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당신의 일생의 그래프에 두 번의 단애점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이다.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 후 김교신의 인도로 우찌무라의 성경연구회에 처음 나갔던 날을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갔던 날 그는 예레미아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애국심이 강한 그는 “이것이 참말 애국이다”하면서 신앙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그 자리에서라고는 할 수 없으나 나는 지금도 그날의 인상을 잊지 못하며 계속해나가는 동안 오랜 번민이 해결되고 나는 아주 크리스찬으로 서서 나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신앙이란 이런 것이다. 성경이란 이렇게 읽을 것이다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따금은 우리가 일본에 36년간 종살이를 했더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찌무라 하나만을 가지고도 바꾸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 (전집 4: 217)
물론 이 글은 앞에서 소개한 강연회보다 훨씬 후에 쓴 것이지만 여하튼 함석헌 평생을 통하여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가 유영모요 그 다음이 우찌무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서 함석헌이를 참 크리스찬이 되게 한 이는 우찌무라임이 틀림 없었다. 함석헌은 우찌무라에게서 세례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날 ‘제2의 종교개혁’이라는 강연은 선생님 전집 9권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에도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의 두 면이 있는데 좁은 의미로 하면 기독교다 불교다 하지만 그러나 참 종교란 정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어라고 이름지을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름지을 수 있고 형용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고 그것은 종교의 겉껍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노자의 ‘道可道 非常道’의 경지요 유교의 中庸之道라고 표현되는 未發의 中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有名이요 有限일 수밖에 없는 세상의 종교란 和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변을 가리켜 우리는 개혁이라 하고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혁명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부득이 전체를 헐고 근본적으로 새로 지을 수밖에 없는 일대 전환점이 있었는데 그것이 제1세기가 그랬고 16세기가 그랬다는 것이다. 이집트·바빌로니아·인도·페르샤에 각기 일어났고 크레테·미노아·그리스·로마에 전파되었던 고대 여러 문명과 그 문명을 메고 오던 여러 민족·국가의 역사는 유대에 나타나 유일신 종교라는 한 초점이 아니고는 서로 아무 의미없는 지리멸렬한 우연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산출이라는 한 사실을 내놓는다면 그 유대의 수천 년의 역사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원전의 역사가 기독교로 완결이 되고 기원후의 역사가 거기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말한다면 중국고대의 문화는 周대의 유교에 통일되었으며 그후 문화는 그 전개요, 그것이 다시 춘추 전국시대의 공자파의 유교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운동으로 완성이 되어 진한시대의 문화를 낳았고 그것이 다시 어지러워졌다가 당대에 이르러 불교개혁이 중심돼 소위 당대문물이란 것이 일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좁은 의미로는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로마 교회에서 파는 면죄부에 관한 95개의 의견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되어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열에까지 이르게 되는 16세기의 대문자로 표시되는 ‘The Reformation’ 즉 ‘종교개혁’은 넓은 의미로는 종교에만 국한하지 않고 학문·예술·정치·경제 각 방면에 걸쳐 15, 16세기에 일어난 사회 전반에 걸친 신생운동을 즉 예술부흥을 르네상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함석헌은 고민하는 현대를 경제 정치 학문 그리고 교육의 각 분야에 걸쳐 포괄적으로 개괄한 다음에 현대기술문명이 갖다준 문명의 피라밋의 절정에 놓인 ‘원자탄’을 하나의 선언이요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물론 이 글을 쓸 그 당시에는 세계2차대전의 직후로 냉전이 한참인 때였지만 원자탄을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인류역사의 또 하나의 선언이요 상징으로 본 것은 반세기 전에 이 글이 씌어졌다는 점에서 분명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원자탄,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 선언
1958년도 12월에 발표하신 ‘사자냐 아메바냐’라는 글(전집3: 89)에서 함석헌 선생님이 마음에 그리고 계셨던 새 종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글은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글로 인해 벌어졌던 유형중 신부님과의 지상 논쟁의 끝자락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 성경연구방식에서 함석헌은 분명하게 옛 패러다임이 아닌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고 있다. <기독교가 불과 4백년에 전 로마제국을 정복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끈질기고 교활한 것은 승려다. 서로 형제로 부르는 교회 안에 차차 옛날 제사주의 계급제도를 침투시켜 드디어 카톨릭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중세다. 거기 견디다 못해 일어난 민중의 운동이 종교개혁. 그 개신교가 또 굳어져서 깨치고 나온 것이 무교회다. 무교회는 하필 일본만이 아니다. 이름은 달라도 세계 곳곳에서 자유신상운동이 일어났다. 앞으로 더 커갈 것만은 사실이다.> 무교회의 정신 혹은 믿음을 간단히 요약해 말하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고도 말하고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 직접 나감이요,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을 꼭 같이 대접함이다. 사회생활에서 쓰는 말로 하면 자유와 평등이다.

무교회 신앙이란 곧 이 정신을 살리자는 것이다. 종교생활은 요컨대 참과 사랑이란 말이다. 하나는 나와 하나님 대 관계요 또 하나는 나와 사람의 대 관계다. 종교를 좀 넓게 말하면 우주적 통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함 선생님이 그리는 ‘새 시대의 종교’(전집 3:192)의 패러다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그가 그리는 ‘제2의 종교개혁’이 무엇을 말함인지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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