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9:40 (수)
14명 장기 휴직 중 … “교수직 버리고 소신껏 일해라”
14명 장기 휴직 중 … “교수직 버리고 소신껏 일해라”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점 : 정·관계 진출 교수, ‘휴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은 교수회의를 열고 외교부 장관에 임명된 윤영관 교수(국제정치학)의 휴직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과거 정·관계에 진출할 경우 ‘휴직’시키지 않고 사직시켰던 관례를 깬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정치권의 요구와 교수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했던 제도를 이제 시대가 달라진 만큼 바꿔야 한다는 논리였다.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교수자리를 비울 경우 학사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고, 학문후속세대가 적체돼 있는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소수의견에 그쳤다.

참여정부출범이후 지금까지 장·차관급에 임명된 교수들은 모두 11명. 윤영관 외교부 장관 등 장관급에 7명, 조윤제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서강대 경제학) 등 차관급에 4명이다. 국회에도 현승일 한나라당 의원(국민대 사회학) 등 3명이 머무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임 장관들에 대해 최소한 2년의 임기를 보장했고, 국회의원의 임기가 4년인 것을 감안한다면 공식적으로 14명의 교수들이 장기휴직상태인 것이다.

“교수직을 유지해야 한다”
교육공무원법 44조(휴직)는 대학교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때, 교육공무원 이외의 공무원으로 임용됐을 때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적으로 ‘휴직’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된 교수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또 교수들이 정부의 개혁에 참여함으로써 사회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들의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학계와 정·관계의 인력 교류가 원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 사회현실을 반영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연구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는 학계의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정무직에 임명된 경우 그 기간이 불투명해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론도 이어진다.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영호 경북대 교수와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던 문용린 서울대 교수의 경우 채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나 대학으로 돌아왔다.

“교수직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대학의 현실과 과거 정·관계로 진출한 교수들의 지나온 길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15명의 교수 가운데 적어도 2년 이상의 휴직을 하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 교수는 한명도 없다. 교수확보율이 낮아 대학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수 만명의 학문후속세대들이 자리를 찾지 못해 보따리 장사로 연연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구실은 수년동안 비워져 있다.
‘학계와 정·관계의 교류’라는 말도 교수들이 정치권에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으면 빛이 바랜다. 권철현 한나라당 의원은 동아대 교수직을 유지하다가 재선이 되고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야 자리를 내놓았다. 10년 가까운 기간을 공석으로 비워둔 것이다. 이는 비단 국회의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종일 경희대 교수(정치학)의 경우, 1995년 국민회의 총재외교안보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국정원 1차장(차관급)을 지내고, 잠시 대학에 돌아왔다가 다시 민주당 총재외교안보특보, 국정원 외교담당특별보좌역, 주영 대사 등을 지내다 새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됐다.

일부 사립대의 경우 아예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전임교수를 임용하기도 하지만 국립대는 정원이 법으로 규정돼 있어 충원할 수조차 없다.
‘학계와 정·관계의 교류’는 오히려 어두운 측면에서 발휘되는 측면이 많다. 일부 대학들은 정·관계에 진출한 교수들을 대학의 로비창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휴직 여부를 정관에서 자체적으로 규정하도록 한 사립대학들조차 어김없이 휴직을 허용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보는 교수들이 많다.

심지어 일부 대학은 적극적으로 나서 정·관계에서 물러난 인사를 교수로 임용하고 잠시 머물렀다가 정계로 돌아가도 휴직 처리해 끈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질적인 인적교류를 위해서라도

참여정부에 교수들의 정·관계 진출이 많아지자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는 “권력 참여 교수는 무조건 사직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사회개혁을 위해 참여한다면, 또 다른 측면에서 이들이 자리를 내놓는 것이 지식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고 그 동안 정치에 물들었던 대학을 ‘개혁’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관계의 요직에 진출한 교수들은 굳이 재직했던 대학이 아니라도 그동안 쌓은 화려한 경력으로 새로운 자리를 찾아 갈 수 있어 정체된 교수사회에 인적교류의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념에 근거한 정치활동에 대해 박 교수처럼 기득권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 소수의견에 그친다. 폴리패서, 陸法黨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학계 스스로가 고민을 시작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