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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적 주체의 탄생 공간…파시즘적 起源으로 읽어내
제국주의적 주체의 탄생 공간…파시즘적 起源으로 읽어내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3.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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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 : ‘만주체험’ 주목하는 국문학계의 새로운 연구경향

근대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만주’가 화제다. 물론 현실 속의 만주도 아니고 한반도 이북의 드넓은 초원으로서의 만주도 아니다. 일본의 파시즘이 만주제국 건설을 통한 군국주의로 치달을 때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 이주해 살았던 친일적 조선인들의 만주체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최근에 발표되는 논문들에 따르면 이들에게 만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항일운동의 피비린내도 없고, 설움으로 밥지어먹고 살았던 조선 유랑민들의 처절함도 없는, 제국의 신민으로 간택받은 선민의식으로 충만했던 친일 조선인들의 가리고 싶었던 행적이 식민지 근대의 새로운 이해를 위한 발굴자료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없는 ‘만주’에 매혹된 조선인들

김철 연세대 교수의 ‘몰락하는 新生’과 같은 대학 이경훈 교수의 ‘만주와 친일로맨틱’, ‘몸뻬와 야미’ 등의 논문을 보면 만주가 조선 농민들에게 얼마나 낭만주의적 동경을 품은 풍부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다가왔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김철 교수는 지난해 상허학보 제9집에 발표한 앞의 논문에서 당시 만주 조선인 사회에 퍼진 “(식민지로부터의) 유사해방감과 의사제국주의자로서의 포즈를 동반한 만주 유토피아니즘”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라는 유형지에서는 영원한 2등 국민일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이, 태생적 콤플렉스를 벗고 제국주의적 주체로 자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재탄생의 공간으로 만주를 주목하는 것이다. 그 동안 만주 개척농민의 삶은 중국 관헌, 비적, 원주민들에게 이중삼중으로 당하는 비참한 상황으로 인식돼온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경훈 교수는 ‘만주와 친일로맨틱’에서 재만 조선인들의 역사적, 심리적 상황을 좀더 정치하게 분석하고 있다. 만주는 조선인에게 ‘대동아공영’, ‘오족협화’ 등의 수식어로 표상되는 ‘낭만적 공간’으로 받아들여짐과 동시에, 거지떼들에게 수확한 양식을 도적질당하는 ‘야만의 공간’으로 내면화됐다는 게 이 교수의 전언이다. 즉, 일본인들에게 받았던 야만인 대접을 압록강 이북의 토인들에게 전이시킴으로써 피식민이란 거푸집을 탈피할 수 있었으며, 그렇게 자신을 문명화된 제국주의의 ‘개척자 모습’으로 재정립하는 심리적 과정이 보편적으로 퍼진다는 분석이다.

이런 의식은 당시 만주로 이주한 친일문학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수두룩하게 확인되고 있으며, 또한 비판적 지식인 계열에 속했던 이태준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만주의 재발견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경훈 교수는 재만조선인의 친일행적에 대한 지적은 “민족의 입장이나 이익에 반하는 연구 시도나 연구 결과 자체를 거부해온 자민족 중심주의적 사고의 틀을 깨고, 역사사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본 시도라는 점”에 첫 번째 의의가 있고, 해방 이후 한국 국가형성의 비밀을 품고 있는 만주체험이란 부분에 대해 풍부한 사회심리적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에 두 번째 의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유임하 한국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앞의 논문들에서 밝혀진 만주체험의 진실이 “박정희의 새마을 정신, 재벌 위주의 개발정책, 우리 주변에 만연한 일상적 파시즘의 전도된 기원을 들여다보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즉, 박정희가 일본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 건너가 일제와 더불어 활동한 전력이 있을 뿐 아니라, 1936년 만주국 참사관을 지낸 진학문이 해방 후 재계의 주요 이사로 활약하는 등 정치, 경제, 언론 등 우리의 국민국가 형성과정이 만주 관동군 출신 인맥들이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퍼지는 과정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면에서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한편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이 보여준 철저한 복종적 태도가 만주제국에서 경험한 사고의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한국 국가형성의 비밀을 품은 만주체험

그러나 여기에는 논쟁의 요소도 많다. 만주에서의 제국주의 경험이 과연 문학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을 정도로 밀도 높은 것이었냐는 의문이 던져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의 작품분석을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교수는 대표적 친일작가 중 하나인 정인택의 ‘검은 흙과 흰 얼굴’ 뿐만 아니라, 월북한 이북명이 북에서 쓴 ‘노동일가’나 ‘애국자’ 등을 주요하게 분석하는데, 여기서 작품의 기본질서를 이루는 것이 만주라는 것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즉, 만주에 도착한 문명인과 지배자로서의 친일 조선인이 서양인의 동양 漫遊와도 비견될 수 있는 개척·시찰·기록의 행위를 한다든지, 카메라 등 문명의 도구를 통해 현지인들을 철저히 타자화시킨다든지, 더욱 나아가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충성 같은 총동원체제의 수사학을 뿌리깊게 구사한다든지 하는 분석들은 당시 만주에서의 경험이 제국주의를 세계의 질서로 인식한 지식인들에게는 아주 강렬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충해준다.

이런 연구경향은 한편으로 일문학계에서 부는 만주체험에 대한 재인식 바람과 더불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문과)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현대 일본문학과 식민지체험’에서 유년시절을 만주에서 보낸 전후문학의 기수로 분류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는데, 만주에서의 제국주의 체험이 이들 작가들의 내면에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상흔을 남겼는지 살피고 있다. 즉, 신대륙의 활력과 개발 번영의 아름다운 수사학의 중심에서 서 있다가, 일본의 패망과 역사적 진실을 겪으면서 느낀 허무함과 절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다.

관련 학계의 관심 필요해

국문학계의 이런 시도는, 문학작품 속에 형상화된 허구에 대한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가진다. 역사학계와 사회학계 등 인접 학자들의 만주에 대한 가감 없는 시각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윤휘탁 동아대 연구교수는 ‘만주국의 2등 국민 : 그 허상과 실상’이란 논문에서 2등 국민 조선인이 만주의 일본인 및 중국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1등 국민으로 거듭나고자 한 욕망의 흔적을 더듬고 있다. 하지만 윤 교수는 한때나마 지배 민족인 일본인과 같이 만주국에서 치외법권을 누렸다는 점, 그리고 1940년대에 접어들어 식량 배급의 우선권이 부여됐다는 점, 일부 노동 시장에서 중국인 쿨리(苦力)보다 나은 임금을 받았다는 점 등이 한중 양민족의 민족적 우월성을 뒤바꿀 만큼 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재만 조선인이 중·일 양 민족의 갈등·마찰·충돌을 완화시키거나 증폭시킨 매개 민족으로서, 한반도 내의 同族 진영에까지 그들의 심리적·현실적 생활 터전이 모두 걸친 ‘과계 민족’으로서 겪은 심리적 복합상태가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민족들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가는 제국주의 공간으로서의 만주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다가왔던 매혹적인 측면이 간과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는 좀더 많은 자료를 확보해가며 따져봐야 할 문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를 거머쥔 일부 친일세력이 만주에서의 경험을 ‘이념의 고향’으로 간주한 채 한강 이남으로 되돌아온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다. 이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접근을 통해 한국 친일 멘탈리티의 속성에 대한 실증적이고 다층적인 이해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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