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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한스 모겐소의 『국가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
<42> 한스 모겐소의 『국가간의 정치(Politics among Nations)』
  • 김의곤
  • 승인 2003.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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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는 권력투쟁’ 이론화…적절 수준 비밀외교 역설


 

한스 모겐소(1904∼1980)
독일 코부르크 출생. 베를린대, 뮌헨대,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공부하고, 히틀러 정권의 출현으로 1935∼1936년 마드리드로 망명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37년 미국에 정착한 이래 브루클린대, 시카고대, 신사회과학연구소 등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국제정치를 권력정치의 場으로서 파악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정책을 내세우고, 미국의 베트남 개입을 통렬히 비판했다. ‘Politics among Nations’(1948) ‘Politics in the 20th Century’(1962), ‘Truth and Power’(1970) 등을 저술했다.

김의곤  / 인하대·정치외교학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럽사회는 이상주의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는데, 인간의 본성을 선하고 이타적이며 또 이성을 가진 주체로 파악했다. 그래서 국가가 각 개인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교육을 시키고 치안만을 보장해 주면 모든 개인은 경제적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고 따라서 그 사회와 국가도 번영하리라 생각했다. 이런 사고는 국가간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국가 스스로가 하나의 이성적 개체며 그래서 환경적 여건만 갖춰진다면 다른 국가들과 자연스럽게 협력하고 또 공동으로 번영하며 궁극적으로 세계평화가 온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영국의 존 로크나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잘 대변됐다.

유토피아니즘에서 정치적 현실주의로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적 생각은 1, 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의 등장은 서구 문명 내부에 탐욕과 파괴가 스며있음을 증명했고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전쟁은 항시 인간이나 국가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권력을 탐하고 타인 혹은 타국을 지배하며 또 착취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 직후에 과거에는 사악한 것이라 생각돼 배척됐던 ―주로 홉스나 마키아벨리 같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힘의 정치’ 혹은 ‘권력 정치’ 등의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재등장하게 됐다.
이런 철학적 사조는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정치학자가 한스 모겐소다. 모겐소를 비롯한 학자들은 이상주의나 유토피아니즘과 대별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론을 “정치적 현실주의”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후 미국의 외교정책 수립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또 구소련의 지배야욕을 분쇄하고 여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정부가 무력 개입이나 위협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모겐소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 ‘국가간의 정치’(1948)라는 책에서 국제정치를 권력투쟁으로 특징짓고, “모든 정치가들은 국가이익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쟁”하며, 이런 철칙이 국제정치에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모겐소는 국제정치가 권력투쟁의 장인 이유는 국제정치의 내부 논리가 경쟁적일 뿐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심이 무한하다는 데서 연유한다고 믿었다.
이 맥락에서 모든 국가의 정책들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첫째는 국력을 보전하는 정책(이것을 현상유지 정책이라 명명), 둘째는 국력을 확장하는 정책(제국주의 정책), 마지막으로 국력을 과시하는 정책(기득권 과시 정책)이 있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국력을 확장하려 노력하고 또 일단 기득권을 획득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무력과 위협 등의 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당하기 쉬운 약소국들은 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 생존을 보장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겐소는 이런 무질서한 국제질서에서 세계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력균형 정책은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며, 강대국이건 약소국이건 간에 외교를 통해 세력균형과 국력 추구의 국가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외교가 20세기에 접어들어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통신 수단이 발전할수록 외교의 모든 과정이 공개되는 공개외교가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전권대사들이 향유했던 선택의 폭이 감소하고 ―본국의 지령없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국제정세에 어두운 언론이나 국민여론이 외교를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혼돈스러운 국제정치 본질 최초로 이론화해
따라서 모겐소는 현대에 있어서도 국가의 생존과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비밀외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초기 현실주의 이론은 시간이 가면서 혹독한 비판을 받기 시작했는데, 무엇보다도 현실주의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줬던 국가권력이나 국익에 관한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는 점과, 만약 그가 주장했듯이 국제분쟁의 본질이 인간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면 왜 자선적인 인간 본성이 나타내는 다른 결과는 기대할 수 없는가하는 점, 그리고 평화시 국가간의 협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점 등이었다.
그럼에도 유럽문명의 약점에 솔직하고, 인간 본성이 사악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그리고 국제정치의 본질이 무정부 상태처럼 혼돈스럽다는 것을 최초로 이론화했다는 점에서 모겐소의 업적은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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