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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인문학 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적극 나서라”
“참여정부, 인문학 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적극 나서라”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3.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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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 심포지엄 ‘인문학에서 본 노무현 정권의 과제’

노무현 정부 출범 이튿날인 지난 달 26일, 인문학자들의 모임인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협의회(회장 유초하 충북대 교수)가 주최하고, 교수신문사가 후원한 심포지엄 ‘인문학에서 본 노무현 정권의 과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2002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문화지형의 변화 양상을 내면화한 심포지엄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내건 제목이 주제를 다 담고 있어서,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는 비교적 명확해 보였다. 그러나 모양새부터 그려낸다면, 이번 심포지엄은 ‘발빠른 주문’이라는 시의성은 돋보였지만 인문학 진영의 응집력 표출에서는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컨퍼런스홀의 많은 자리가 비어 있었고, 참석자들 역시 그 면면이 인문학 위기를 껴안고 고민해왔던 학자층이었다는 사실, 발표 내용면에서도 애초 내건 주제를 우회한 ‘거리감’을 드러냈기 때문.

발빠른 대응 비해 준비소홀 아쉬워

▲염무웅 교수 /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의 발제문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인문학 위기의 극복’을 제외하면, 주진오 상명대 교수(사학과)의 ‘한국 근대 국민국가의 마무리와 넘어서기’, 김창호 건국대 겸임교수(중앙일보 논설위원, 철학)의 ‘노무현의 등장으로 무엇을 알 수 있나’ 등은 과녁을 추상화했거나, ‘사회인식론적 시각’의 밑줄긋기에 그친 감이 역력했다.
염무웅 영남대 교수(독어독문학과)가 기조발제문 ‘20세기의 극복을 위하여’에서 던진 물음이 “인문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사회적 위상에 대한 근본적 반성”인 데서 알 수 있듯, 지금 인문학은 대학과 시장 두 곳으로부터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염 교수는 “적대적인 두 세력으로 양분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치상태”에 우리 사회가 처해 있다고 환기하면서, “인문적 가치가 끼여들 여지도 없는 이 각박한 현실 자체가 사실은 인문학의 분발을 촉구한다”고 지적했지만, ‘인문학(자)의 반성과 분발’이 어떻게 대학과 시장 두 곳으로부터의 동시적 긴장관계를 해소하고 자기 방향을 설정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운을 남겼다.

주진오 교수의 발제 역시 논의의 과녁이 선명치 않았다. 주 교수는 한국사회 주류의 교체와 제도화를 노 정부의 지향 목표로 설정하는 한편,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강조했다. 그의 발제문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근대 국민국가의 완성과 초극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체성 모색이 필요하며 지금이야말로 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주장은, 좀 더 논의를 거쳐 다듬어져야 할 것으로 보였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 새로운 희망의 근거의 싹이면서도 동시에 보수적인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도 높다는 김창호 교수의 진단은 ‘과제’보다는 현실 진단에 무게를 실은 논의였다. 그의 말대로 “철학, 나아가 인문학이 인식론적 전선을 만들어 가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나 반성할 필요가 있”지만, 이 역시 철학 진영 ‘안’을 향한 질타와 분발로 비쳐졌다.

인문학 대한 반성과 주문 동시에

종합토론에 참석한 성경륭 한림대 교수(사회학, 인수위 기획조정위원)의

▲주진오 교수 /
지적대로 이번 심포지엄의 발제자들은 정권과 무관하게 인문학이 지닌 문제점을 반복해서 제시했으며, 인문학 지원 요청, 학제 개편 등 제도적 측면에 관한 부분에서 정권과 관련된 목소리를 제기했다. 반성과 주문이 동시에 개진된 셈이다.
강내희 교수의 발제문이 이런 두가지 요소를 고루 담아냈다. 강 교수는 정부에 대해 인문학자들이 일관된 요구를 제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대학과 학문의 서열화가 존속하는 한 인문학의 진정한 자기 발전은 어렵다. 지방대학 균형 성장을 통한 인문학 기반 확대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한 인문학의 위기를 사회변동의 징후로 읽어내면서, ‘시적 정의’와 같은 전통적인 인문문화 개념의 확장과 심화를 주문했다. 물론, 여기에는 인문학의 변화, 내부 개혁을 통한 자신의 역능 강화가 병행해야 한다. 인문학이 민주주의를 위한 ‘치세의 학문’, ‘비판적 문화공학’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 인문학이 과거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도전을 감행할 기회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교수들의 책임, 인문학자들의 책임이 많다”고 자성론을 거든 토론석의 김인걸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인문학 위기 극복에 대한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면서, “인문학을 할 수 있는 기반조차 없는 사회에서 기반 마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심포지엄은 미진했지만, 한가지는 확인한 것 같다. 거듭되는 인문학자들의 반성과 분발 목소리를 ‘참여정부’가 어느정도 끌어안을 수 있을지 그 귀추는 ‘인문 인프라’ 마련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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