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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학교 편입생, 多夕통해 生의 도약 꿈꾸다
오산학교 편입생, 多夕통해 生의 도약 꿈꾸다
  • 교수신문 기자
  • 승인 2003.0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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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⑬

함 선생님이 오산학교에 보결생으로 편입된 때가 1921년 봄이었다. 오산에 발을 디딘 함석헌의 눈에 비친 오산학교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때에 가니 조고마한 동구 안에 옛날 서당이었던 기와집이 한 채 있어 그것을 사무실로 임시로 선생 학생이 합해 손수 세웠다는 교사인데 기와도 못 얹고 영을 덮었고 교실에는 책상 걸상이 하나도 없이 마룻바닥에 앉아 공부라고 하는데 그전 관립학교에 다니던 내 눈에는 초라해 뵈기 짝이 없었다>

집이 수십 채밖에 아니되는 촌마을에 4∼5백명 학생이 모여드니 있을 곳이 없어 농가의 사랑방, 건너방에 서로 끼어 욱적거리니 옴이 성하고 장질 부사가 나고 더럽기 한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겉은 어수선해 보여도 속에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그 불안하고 잡탕인 것을 묶어 이끌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 학교의 설립자인 남강 이승훈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학생들 입에 호랭이라고 때로는 비둘기라고도 불리고 있었다. 바로 이 오산에 감돌고 있었던 이상한 힘이란 감옥에 있는 남강 선생의 얼에 다름 아니었다.

오산의 첫 학기가 거의 다 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려 할 때 학생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소문이 나돌았다. “이제 가을 학기에는 새 교장으로 아주 놀라운 분이 오신다는데 그 분은 초창기 오산학교 시절에도 선생으로 와 계셨다는 류영모 선생이시란다.”, “철학자래.”, “최남선씨가 무서워하는 분은 그분이시라는데….”

가을 학기가 시작되자 소문대로 다석류영모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셨다. 책상과 의자를 집어치우고 교자상을 놓고 교장의 직무를 보셨다는 류영모 교장선생님의 첫 모습을 함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개학식입니다. 첫 시간부터 모두 혀를 뽑았습니다. 새 교장선생님이 들어오시는데 키가 자그마하고 등이 조금 굽고 뒷골이 이상하게 툭 튀어나오신 분이데 하얀 한복차림이었습니다. 말씀은 물론 웅변조는 아니고 크게 울리는 음성도 아니고 크게 울리는 음성도 아니고 조용조용히 하시는 말씀인데 그날 나는 뒷자리에 있었으므로 잘 알아듣지는 못했읍니다만 어쨌거나 배울 학(學)자 하나를 풀어 말씀하시는데 무려 두 시간 동안을 얘기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서른둘이시던 때입니다.>(김흥호면‘제소리’12쪽)

그저 한번 척 보아서도 마음이 가라앉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자기를 언제나 꼭 지키고 있는 분이란 것이 그의 몸매에나 말씨에나 걸음걸이에 늘 나타나 있었다고 류영모 선생님을 그리고 있다. 한 과목 ‘수신’(修身)을 맡으셨는데 한번도 소위 교과서라는 것을 가지고 말씀하신 일이 없었고 노자의 ‘도덕경’을 제일 많이 말씀하셨고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도 때로는 풀이하셨고 일본의 우찌무라(內村鑑三)선생의 작은 책자를 가르치신 적도 있었다.

‘신비한 섭리’의 시작

류 선생님이 그때 들려주신 우찌무라 선생의 일화는 스물두살의 함석헌에게는 대단한 감화를 준 이야기였고 필자 자신도 선생님의 노자 강의에서, 또 다른 기회에 여러 번 이 일화를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일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찌무라 선생이 젊어서 미국에 유학을 갔었는데 학비를 벌기 위해서 한때 펜실베니아주 레딩이라는 곳에 있는 퀘이커들이 경영하는 정신박약아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이 학교는 좀 나은 학생들을 워싱톤 클래스에 수용했고 이보다 못한 학생들은 링컨 클래스에 수용했었다고 한다. 당시 우찌무라는 워싱톤 클래스를 맡고 있었는데 그 클래스에 대니라는 몹시 말썽을 피는 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지능이 너무 낮기 때문에 그저 나쁜 짓을 못하게 감독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들에게 가장 효력이 나는 체벌은 밥을 안주는 벌이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에 대니가 하루종일 어떻게 말썽을 부리는지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우찌무라는 대니를 불러놓고, 네가 오늘 한 일을 생각하면 너에게 마땅히 저녁을 굶게 해야 할 것이나 주일날 네놈을 밥굶게 하기도 그러니 네 대신에 내가 굶겠으니 내 밥을 가져다 먹으라고 나무랬다는 것이다. 우찌무라는 그저 자기만 혼자서 행한 일이라 누구에게 발설한 일이 없었는데도 워싱톤 클래스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자기들끼리 회의를 거듭하여 결국 대니를 한급 하강시켜 링컨 클래스로 내쫓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찌무라도 하는 수 없이 대니를 불러서 잘 타일러 링컨 클래스로 가게 했다고 한다.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어떤 일본 사람이 그 정박아 학교를 방문했는데 대니라는 학생이 그때도 그곳에 있다가 내방객이 일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 일본 사람에게 우찌무라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다고 대답했더니 대니가 말하기를 “He is a great man!”이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 일화는 함석헌을 몹시 감동시켰던 것 같다. 함 선생님은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일에 일본 유학 당시에 우찌무라 선생한테서 직접 듣기도 했고 또 1979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 정박아학교를 방문한 바 있었고 1982년에도 어떤 분을 안내하게 돼 그곳을 다시 방문한 일이 있었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함 선생님에게는 신기한 섭리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당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아마도 류영모 선생님에게서 처음 들은 우찌무라의 그 일화가 후에 그가 걸어가게 되는 인생 경로와 신비스럽게도 크게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신기한 섭리’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몇 년 후에 동경에 유학가서 우찌무라 선생의 성서연구회에 참석하게 된 일, 그리고 후에 당신 스스로 하나님 발길에 채여서 퀘이커가 되고야 마는 당신 스스로의 인생경로를 되돌아보면서 이 모든 일들을 ‘신기한 섭리’로 이해했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카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의상철학(Sartor Resartus)이라는 저서에 관해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카라일이 어렸을 때 지었다는 시 “So here has been another blue day: Think wilt thou let it slip useless away?”(여기 흰날이 다시 왔도다/ 낭비하지 말지어다)라는 영시를 생전 처음 류영모 교장선생님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함석헌은 한때 카라일에 흠뿍 빠졌던 것이다. 어떻든 오산학교 3학년에 편입되면서 류영모 교장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함석헌에게 있어서는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한번 크게 도약할 수 있는 큰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류영모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신 지 일년 남짓한 때 당국으로부터 교장인가를 줄 수 없다는 통고를 받고 오산을 떠나시게 된다. 그때 어찌된 일인지 떠나시는 선생님을 함 선생님이 홀로 배웅하셨다고 하는데 그때 류 선생님은 학생인 함석헌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오산 왔던 것은 함 자네 한 사람 만나기 위해서 였던가 봐.” 류 선생님의 이 한 말씀을 함 선생님은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 왔다고 류영모 선생님 일주기를 기념하여 모인 자리에서 고백했다. 그때 류영모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류영모 선생의 말 한마디 평생품어

“빛 빛하지만 빛보다 어둠이 더 큰 것 아니냐/삶, 삶하지만 삶보다는 죽음이 더 먼저 아니냐/깬다 깬다하지만 깸보다 잠이 더 먼저 아니냐”

30여 년을 류영모 선생님께 사사한 김흥호 선생은 ‘늙은 류영모 선생님’이라는 글에서 류 선생님을 가끔 닭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시계라고 불러보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닭이라 함은 닭이 매일 한 알씩 알을 낳는데 비유한 말이다. 선생님은 매일처럼 지혜가 넘쳐흐르는 말씀 한마디를 내놓으시기 때문이다. 시계라 함은 수십 년 강의를 들어온 김흥호 선생님은 류영모 선생님께서 한번도 시간을 어긴 일이 없었다는데 감탄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시계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기체(氣體)인 것만은 사실이다. 선생님의 기체후는 일향만강하시다. 산에 오르면서도 힘든줄 모르고 굴하고 앉아도 발저린줄도 모른다. 언제나 가볍게 걸으시는 선생님 그리고 주무실 때는 우주의 기운을 통체로 몰아다 마시는 것 같은 선생님. 선생님은 가끔 성신(聖神)을 숨님이라고 한다. 우리는 선생님 자신이 숨님인 것 같다. 숨어서 말씀 쉬는 숨님, 이것이 선생님을 제일 잘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세상에 일하러 온 분이 아니다. 열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숨어서 쉬러 오셨다. 팔십 평생 한숨쉬고 깨는 그날 누구보다 힘차게 일하실 분은 선생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류영모 선생님 하면 나는 ‘省吾返隱知今深’이라는 선생님의 자작시의 한 구절을 외어본다. ‘나를 되돌아보고 은은한 곳에 엎드려 지금 이 순간의 깊음을 지각한다’라는 뜻이다. ‘省吾返隱’은 수십 년 동안 내가 가슴에 간직해온 나의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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