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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을 흔들 문화계 쟁점들
2003년을 흔들 문화계 쟁점들
  • 이은정 기자
  • 승인 2003.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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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문화계를 관통할 키워드는 다름 아닌 문화사회를 향한 ‘변화’와 ‘개혁’. 새로운 정부가 들어섬과 함께 문화계 역시 구태를 벗고 새롭게 판을 짜보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을 내달리며 분출됐던 문화적 감수성이 2003년에는 어떻게 발현될 것인가. 2003년 문화계를 전망해봤다.

WTO와 INCP//2002년 10월 브릭슨에서 열린 문화·교육분야 유럽지역 장관회의에서는 교육·문화 및 미디어 분야를 무역 협상 대상에서 제외시키자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문화다양성과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관한 브릭슨 선언서’를 발표했다. 이 선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문화 획일화의 위험성에 맞서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려는 범국가적 선언이기에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보다 석 달 앞선 2002년 7월. 문광부에서는 광고·출판·영화제작과 배급·음반과 공연분야를 포함한 WTO 양허요청안을 내 문화계의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문화평론가 고길섶 씨는 “오는 3월로 바짝 다가온 WTO 양허요청안 제출이 시청각 서비스를 포함한 문화분야의 포함 여부로 문화계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 전망한다. 이동연 연세대 강사(영문학) 또한 “WTO에 문화 부문을 포함한다는 것은 문화를 상품으로 전락시켜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어 상당한 돌풍이 예상된다.

이와 더불어 올 10월에 개최될 예정인 세계문화부장관회의인 INCP의 정부참석 여부에도 문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INCP는 문화 다양성 보존을 위해 46개국 문화부장관들이 참여하고 있는 회의로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유일한 가입국. ‘문화의 다양성 보존’과 ‘문화적 예외’를 위한 목소리가 관철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남북문화교류//1953년 7월. ‘終戰’도 아니고 ‘平和’도 아닌 채 서로의 길을 멈춰서버린 남과 북. 정전 협정을 맺은 지 올해로 꼭 반세기가 됐다. 지난 1985년 9월 남북한 예술공연단이 이산가족고향방문 계기로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교환 공연한 것을 출발로 삼아 남북문화교류는 끊임없이 그 작은 물줄기를 이어왔다. 2003년은 정전 5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에 면면히 그 맥을 이어오던 남북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부터 오는 3월 5일까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로 코엑스 몰에서 열리고 있는 고구려 전을 비롯해, 지난 17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는 조선미술협회가 주최하는 ‘조선화 최고 작가전’을 개최한다. 또한 오는 7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정전 50주년을 기념하는 ‘분단의 벽을 넘어’ 전을 열 계획이다.

문화교육//'교육' 역시 2003년을 가로지를 키워드 중 하나. 지난 9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예체능 과목을 내신 평가 과목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후, 교육부 게시판이 이에 대한 논란으로 뒤덮이는 등 교육에 관한 논의가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사교육비 감소를 명목으로 입시위주 교육을 더욱 부추기는 이러한 정책을 비판하며 “이제는 지식 교육에서 문화 교육으로 이행해야 할 시기”라 말했다. 문화교육이란 입시위주·지식중심의 기형적 교육에서 벗어나 청소년의 문화적 감수성, 신체에 기초한 교육을 뜻하는 것이다. 지난 해 말에 발족한 문화교육위원회의 정은희 간사는 “공교육 개선과 관련한 각종 토론회, 문화교육 박람회, 교사 워크샵 등을 통해 문화교육 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펼쳐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한 조사에서 한 해 학교를 등지는 청소년이 약 6만여 명이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척박한 우리의 교육 현실을 논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새롭지 않다’는 것과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2003년이 문화교육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이다.

공공예술정책//공공예술정책 역시 2003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개관 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 서울시립미술관이 다시 한 번 암초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새 관장 임명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이뿐이 아니다. 충무로 활력 연구소, 애니메이션 정책, 서울시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판들도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도 관장 선임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으며 춘천문화예술회관은 시설관리공단에 위탁하기로 한 방침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3년 벽두부터 공공예술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

하계훈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문화예술정책)는 이에 대해 공공예술계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행정주의적 마인드’를 꼬집는다. 하 교수는 또한 “박물관·미술관 등의 기관은 가시적인 성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전문예술기관임에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전문학예인력없이 행정편의적 관행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공공예술정책에 대한 수술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공간//2002년 한 해 동안 ‘청계천 복개사업’과 ‘미 대사관의 덕수궁 터 신축·이전 문제’가 회자됐다면, 2003년은 ‘행정수도 이전’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단순히 행정수반기구가 옮겨가는 것이 아닌 문화적·역사적인 문제”라는 조명래 단국대 교수(사회과학부)는 “통일·예술·전통·환경·지방색 등 행정수도 이전이 안고 있는 여러 문화적 함의에 대해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해 올 한해 이와 관련한 논의가 풍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계천 복개사업과 덕수궁 터 활용에 있어서도 이들이 어떻게 기능적·정치적 공간을 넘어 문화적·생태적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2003년 놓쳐선 안 되는 중요 이슈 중 하나다.

대중음악개혁//2002년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었던 가장 큰 문화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음반사 비리. 천편일률적인 가요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병들어있던 대중음악계를 살리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모임 등이 발족했던 지난 2001년부터.

문화평론가 권경우 씨는 “지난해에 이어 대중음악 개혁 문제 역시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하는 이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문화연대 이원재 간사 역시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 PR비 사건 공론화, 부조리한 음반유통 구조개선 등 2002년이 대중음악계의 비리 및 전반적인 관행들을 지적·개선하는 구조개혁의 시기였다면, 2003년은 라이브 공연 활성화 등 새로운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을 짜는 해가 될 것”이라 전망해 대중음악 개혁에 더욱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음악의 라이브공연 활성화 및 음반산업 육성’이 새 정부 선거공약에 포함돼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이 대중음악의 양적이 아닌 질적 향상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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