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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녹색대학 초대총장 맡게 되는 장회익 서울대 교수
인터뷰: 녹색대학 초대총장 맡게 되는 장회익 서울대 교수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3.01.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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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기 번거로울 테니 내가 신문사에 들르면 편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찾아 뵈어야죠.” 그러나 찬 날씨에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굽이굽이 길을 찾아들려니 왜 그리도 그의 제안이 아쉬워지던지. 드디어 연구실 앞에 도착해 카메라를 조립하고 매무새를 정돈하던 10시 28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연구실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계시지나 않은지 걱정돼서….” 이래서야 잠깐의 허영조차 부끄러워지지 않는가. 일분 후, 녹색대학 초대총장을 맡게 될 장회익 서울대 교수(64세, 물리학)와의 대담이 시작됐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녹색대학’이 전해져 왔고, 그가 말하는 ‘녹색대학’에는 장 교수 자신의 학문과 사상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녹색대학의 초대총장으로서 대학에 심고 싶은 ‘녹색’像이라면.
“나에게 ‘녹색’이란 하나의 지향점입니다. 흔히 향락에 잠긴 현대인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은 ‘희생’ 또는 ‘고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래 모든 생물체는 서로간의 조화 안에서 비로소 그 본연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내가 꿈꾸는 ‘녹색’의 像이라…인간에게 자연을 인식하도록 하고, 이러한 인식을 통해 자연이 제 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그래서 인간과 자연이 상호 주고받음을 통해 조화를 지속해 나가도록 하는 색이 아닐까요.”

△정년퇴임을 한 학기 앞두고 녹색대학에 합류하겠다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물론 아쉬운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정년퇴임 후에는 시간이 많아지니 해오던 일들을 마무리하리라고 작정하고 있었죠. 그러나 자연 속에서 함께 가르치며 배우며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녹색대학의 제안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녹색대학에서라면 이론적 차원에 머물러 있던 이제까지의 내 학문을 현실 속에서 확인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내 이론을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연구실에만, 혹은 강의실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온생명’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습니다. ‘온생명’이란 거기에 맞추어 생활할 때 비로소 파악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을 전공한 반다나 쉬바가 생태공동체 대학을 설립한데 이어, 이번에는 물리학자이신 선생님께서 ‘녹색대학’에 총장으로 취임하시게 됩니다. 물리학이 그 자체로 ‘생명’과, 또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일까요.
“생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물리학 또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생명이 가지는 특별한 모습들은 배경과의 대조 속에서 파악돼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물리를 깊이 공부했으면서도 ‘물리와 생명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다중전공을 권장합니다. 본질을 제대로 꿰뚫으면서 중요한 줄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강의하시게 될 ‘물질, 생명, 인간’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기게 될는지요.
“강의의 최종 목표는 학생들에게 물질, 생명, 그리고 인간을 모두 포함한 ‘전체로서의 자연’을 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물리학의 기본원리를 배우며 물질세계의 기본질서를 이해하도록 할 것이며, 이 속에서 과연 ‘생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끊임없이 고찰하도록 할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온생명이 되겠죠. 그러나 나는 학생들이 내가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고 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각으로 온생명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강의도 ‘주고받는’ 형식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강의가 시작되기 전, 현재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작성해 제출할 것이며, 나는 이를 바탕으로 현재 그들의 생각을 강의의 출발지점으로 잡을 것입니다. 강의가 끝날 무렵, 이들은 ‘생명’으로 충만한 과학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녹색대학의 ‘생태공동체교육’이 가지는 의미라고 한다면.
“비로소 교육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는 것이죠. 이제까지 학생들은 사회인으로서의 권리는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반쪽사회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구경꾼’의 자세로는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녹색대학에서는 먹을 것을 만들고, 입을 것을 만들며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법을 배워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녹색대학은 단순한 공동체가 아닌 ‘대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공동체’라면 건전한 생활 정도에 만족하겠지만, 녹색대학은 지적 수련을 통해 사물을 보는 예리한 눈을 길러 문명 앞에 서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낼 것입니다. 졸업할 때쯤 되면 자기 안에 교수 한 명씩을 모시고 나가도록 하는 것이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공부에만 매달리지는 않는’ 학생이 입학하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학생 선발 기준을 세우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대학의 취지를 보고 오는 학생들이 이미 그런 학생들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 명성을 업고 나가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 우리 대학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학생들을 걸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 걱정은 우리 대학의 명성이 너무 올라가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명문대생과 다른, 그러나 그들만큼 주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싶어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위한 녹색대학의 교육방향이라고 한다면.
“‘틀’을 제시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몸을 그 틀 안에 끼워 맞추도록 하는 기존의 교육 방식 아래에서는 그 이상의 발전이 어렵습니다. 녹색대학의 이상은 학생들의 막힌 곳을 뚫어주어 스스로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모닥불의 메타포로 설명합니다. 일단 장작들을 모아 불을 붙여주기만 해도 그 열기가 서로 전해져 함께 탈 수 있게 되고, 교수들은 옆에서 빗나가는 장작들을 모아주고 중요한 포인트들을 열어주는 역할만을 하면 된다는 것이죠.”

△아직 교육부의 인가를 받기 이전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오던 대학과 전혀 다른 ‘녹색대학’의 개교 소식을 듣고 교육부는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합니다.
“공장을 짓고, 기계를 갖추고, 직원들을 모집하고, 재료를 넣고,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올리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이 작금의 대학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지금, 국내에서는 최초로 녹색대학이 다른 꿈을 꾸고 있습니다. 씨앗이 주변의 물을, 토양을, 햇빛을 머금고 서서히 싹을 틔워 나가듯, 그렇게 학생들을 교육해 보자는 꿈입니다. 시설도, 교수진도, 학생도 충분치 않기에 교육부는 녹색대학의 설립이 ‘위법’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실험해 나가며 대학을 키워 나가려 합니다. 2004년도에 인가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씨앗은 환경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무리하게 성장시킬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녹색대학’이란: 오는 3월 첫 문을 여는 녹색대학은 경남 함양에 위치하고 있다. 박재일 한살림 회장, 정일상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 부회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장회익 서울대 교수가 초대총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다. 학부과정에는 녹색문화학과, 녹색살림학과, 생명농업학과, 생태건축학과, 풍류풍수학과가, 대학원 과정에는 녹색교육학과, 생태건축학과, 자연의학과가 개설되며, 이 중 학부생들은 교수진과 함께 ‘청미래마을’에서 거주하면서 생태 공동체 교육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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