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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박정희 기념관과 오페라하우스
[문화비평] 박정희 기념관과 오페라하우스
  • 이종건 경기대
  • 승인 2001.0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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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 ‘집’을 지어본 적 있는가

그들과 우리간의 간극이 절망할 만큼 크다. 그들은 건축(poesis)을 넘어 根莖(롤랑 바르트 역시 가로지르기라는 개념을 일찍부터 제기했다)을 들먹인 지 오래다. 일상의 삶을 틀 짓는 사회구조의 변동에 주목하며, 거기서부터 인간의 조건을 간단없이 탐색해 온 지적 궤적이 아득하다. 개개인의 삶의 질을, 그것을 둘러싼 사회구조의 연동에서 파악하는 것만큼은, 사람마다 입각점이 다르다한들, 최소한 역사적으로 공유한다. 관심은 늘 새로운 분기의 형성, 그리고 또한 창진/생성 운동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건축을 오로지 건물에서 찾는, 그래서 그 둘간의 차이를 보지 못하는 우매함이 세계화/정보화 시대에도 변함없고, 건축의 사회성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오로지 하나의 분리된 物(대중들에게는 재산, 그리고 소위 건축가들에게는 폼 나는 오브제)로 대면하는 경향이 갈수록 더하다. 공유할 수 없는 이기와 공감할 수 없는 空名 탓일 것이다. 어쩌면, 그 바닥에 오랜 기간 침전해 벌써 체화 돼버린 ‘서구 컴플렉스’ 혹은 서구 에피스테메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쌓아올린 돌들의 집적에 마음을 빼앗겨, 으뜸 만들기(arche-techne)라는 어원을 건너뛴 채, 築함으로 建하기로 작정한 때부터 사태가 돌변했기 때문이다.


건축이라 하니, 여전히 건물만 쳐다보는 식자들이 널려있다. 아무리 배워도 자신의 삶을 고귀한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의사가 없으니, 그뿐 아니라 삶의 형식 전반에 대한 안목이나 식견이 전무하니, 그들을 어찌 지식인이라 하겠는가. 건축이 아니라, 그렇다면 인문(혹은 인간)학 일반을 보자. 식자들이여, 어떤 지식이나 감성을 구축해 집 한 채 지어보았는가? 실재 혹은 물 그 자체에 어떤 구조체계를 가혹하게 대입시킨 이후가 돼서야 비로소, 그것을 넘치거나 그것이 터져 새어나오는 무엇, 그래서 탈구조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듯, 엄정하게 체계화시킨 지식의 체계 하나 없고서야 어찌 그 너머를 감지나마 할 수 있겠는가. 무슨 재주로 초월적 비판이나 개입을 들먹이겠는가. 그런데 참 신통하다. 소위 포스트모던이 채 그 정체를 밝히기 전에 우리는 그것에 식상하고 있으니, 아마 우리 식자들이 도사행세에 여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슨 홈리스 사회인가. 하긴 늘 새롭게 출몰하는 난삽한 언설들을 따라잡기에도 헉헉대는 판국에, 그야말로 눅진하게 기초공사에 전념하다 때가 이르매 문득 그 골조를 한눈에 선연하게 드러내는 이를 주문하다니, 그야말로 몰시대적 제언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좋다.


세상이 다 노마돌로지를 거론하고 있으니, 집 없이 떠도는 부랑자도, 향유할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도사공부나 행세도 좋고, 그래서 깨우침에 골몰하거나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홈리스는 집 바깥에 거하는 자를 이르는데,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집이 없으니 홈리스 자격마저 있는가. 깨달음도 그렇다. 늘 대박 터지기만을 목매는 도둑심보처럼, 漸修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칼 개벽만 주문하니, 온통 과한 욕심과 자만만 키울 뿐, 삶에 아무짝도 쓸모 없다. 집이란 결코 그런 식으로는 지을 수 없다.


박정희 기념관을, 그것도 정부가 나서서, 건설하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은밀히 진행중이다. 듣자니 벌써, 너 댓 전문가(혹은 집단)를 소문 없이 지명해 설계경기과정을 밟고 있다. 그것을 왜 졸지에 짓겠다는 건지, 무엇을 세우겠다면 (참고로, 우리는 박정희 이후 ‘건설 파라노이아’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다), 그 성격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일체 생략한 채, 그저 짓겠다고 악을 쓰는 걸 보니, 누구에겐가 꽤 정치적 이득이 발생하는 모양이다. 왜 공개경기를 하지 않는지, 그리고 그들을 지명한 판단기준이 무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들어봐야 한심하고 유치한 논리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얼마 전에는 거론하기조차 입이 쓴, 그놈의 천년의 문 설계경기도 그토록 의식 없이 치룬 후, 전문가 집단의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에펠탑 식의 이상한 사명감과 문화논리를 내세우며) 엄청난 나랏돈과 국민들 돈을 긁어낼 심사로, 억지 소리를 해대며 밀어 부치고 있더니만,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무식한 방법으로, 그리고 잘먹고 잘살기 위해 배설했던 덕으로 지금껏 살아남은 서울 유일의 공지를 줄이기 위해 탐내고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같은 ‘달팽이’ 형 건축양식으로” 정상의 집을 세우겠다는 기사가 났다. 억장이 무너져 말이 더 나오지 않는다.

이종건/경기대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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