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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흔들린 대학가
시장에 흔들린 대학가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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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둘러싼 논의들이 무성한 한해였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됐으며, 지역할당제가 입시제도 개혁의 한 축으로, 기여우대입학제가 재정확보방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국·공립대학에서는 여교수 채용목표제 도입 방안이 추진되는 한편, 외국인 전임 교수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02년 대학가는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가장 많이 반영된 한해였다는 점에서 되돌아 봐야 할 듯 하다. 우선 대학을 두고 기업과 경제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새해를 맞은 대학은 스스로도 좌충우돌하는 시장의 논리에 힘없이 좌지우지됐다. 경제부총리가 기여입학제 도입과 고교평준화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혜택은 누리면서 대학에 대한 기여에는 인색했던 기업들마저 인적자원이 부실하다며 ‘대학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던 기업들 가운데 몇몇은 ‘사회환원’이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장학사업을 벌여 국내 대학의 유일한 자산이었던 우수한 학생들을 해외유학 보냈다.

이들은 한국의 대학에 투자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일까.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경제부처는 수 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해마다 1천 여명씩 국비로 해외유학 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해 다시 한번 대학가를 당혹케 했다. 기업과 정부의 외국대학졸업자에 대한 우대 방침에 편승해 결국 올해 해외유학생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유학생이 이처럼 늘어나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에 안타까웠을까. 정부는 또 특별한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 11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 앞서 교육시장을 개방한 국가들에서 교육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으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문화적 예외조항을 앞세우며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정부가 나서서 외국의 학교들을 국내로 수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육부는 특별구역 안에만 외국대학을 설치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외국대학원을 ‘특혜’를 줘가며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교수사회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스승의 날 교수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교육의 공공성을 포기하는 국립대학 민영화와 모든 교수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내모는 교수 계약·연봉제 등을 강행,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리고 열흘 뒤인 25일 수 백여명의 교수들은 서울에 모여 계약·연봉제를 철회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쟁취해야 한다고 집회까지 열었다. 이날 교수들은 “학문과 교육을 모두 시장 좌판대에 올려놓고, 교수를 잡상인처럼 내모는 현실에 서있다”며,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개방에 대해서도 교수사회와 교육관련 단체들은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해 정부방침에 강하게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학사회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적용되면서 교수들의 신분이 날로 열악해져가고 있다는 것이 구체적인 수치로 공개되기도 했다. 연봉제의 확산으로 교수들의 신분은 점점 열악해졌다. 전임강사 가운데 16%가 1년 미만 계약직으로 임용되고 있으며, 업적평가는 날로 계량화돼 연봉에 차곡차곡 반영되며 교수의 일상을 통제하고 있다. 결국 계량적인 연구 업적에 내년의 신분을, 매달의 월급을 달리하면서 저항보다 살아남기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장덕현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행정, 과학, 교육 전 분야에 걸쳐 “한국 지식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실로 화나는 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곳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몸담고 있는 대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이 아니었을까.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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