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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광화문, 뜨거운 상징!
아! 광화문, 뜨거운 상징!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3.0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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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여느 때 같았으면 뒷골목
어느 주점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며 삭혀야 했을
‘분노’가 광화문으로 뛰쳐나왔다.
옛 조선왕조의 권력과 현 정부의 권력이,
대한민국의 권력과 미국의 권력이,
그리고 정부종합청사의 권력과 삼성의 권력과
조선일보의 권력이, 이 권력과 권력과 권력이
굳게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던
광화‘門’이 드디어 열렸다.
촛불로 서로의 살빛을 드러낸 사람들은
살과 살을 맞댄 채 하나의 목소리로
“DOWN, DOWN, USA”를 외쳤다.
光化門, 이 문을 잠그면 사방을 막는 것과 같으나
이 문을 열면 사방의 어진 이를 오게 하리니.


근대사의 격랑과 대중의 도시 광화문

제 몸 만한 물고기를 안아든 한 녀석의 발은 다른 녀석의 뺨에 맞닿아 있고, 역시 저를 향해 있는 물고기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는 그 녀석의 뒤에는 또 다른 녀석이 어딘가를 향해 손발을 내밀고 있는 곳. 벗은 살과 살이 뒤엉켜 생명을 나누고, 이들의 살빛 생명이 흙 위에서 하나의 魂으로 묶이는 이곳은 대향 이중섭이 그려낸 그의 ‘광장’이다.

사람은 광장을 그린다. 아주 가끔은 내밀한 사유공간의 문을 열고 나와 ‘나’가 아닌 이들과 살내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렇게 ‘우리’가 돼볼 수 있는 어딘가가 있기를 꿈꾼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람이 보이는’ 정치의 역사는 이 ‘사람이 모이는’ 광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아고라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피렌체 공화정의 토론정치는 시뇨리아 광장과 함께 그려졌으며, ‘프라하의 봄’ 아래에는 바츨라프 광장이 있었다.

살과 살이 한데 뒤엉킬 수 있는 ‘광장’

그러나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는 “한국은 역사적으로 ‘광장’의 개념이 없었던 나라”라고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광장’이란 ‘마당공간’이 고작이었고, 따라서 ‘광장 문화’ 또한 형성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이 ‘한국’에서도 아주 가끔씩 ‘광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3·1 운동 당시에는 전국이 태극기를 가슴에 품은 인파들로 가득 찼고, 4·19 의거 당시에는 시청 앞이 사람으로 메워졌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광주가 사람으로 메워졌다.

그리고 2002년 지금 붉은 악마들이, 그리고 10만 촛불시위 인파가 택한 ‘어딘가’는 바로 ‘광화문’이다. 광화문. 경복궁과 청와대가 공존하는 곳,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휘날리는 곳,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이 힘을 다투는 곳, 한편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린 접대부가 옷을 벗는 곳, 현대식 고층 빌딩 뒤로 왁자지껄한 뒷골목 문화가 상생하는 곳, 그리고 이제는 정장 차림을 한 공무원들의 ‘낮’과 촛불을 든 시민들의 ‘밤’이 전복하는 변화무쌍한 곳, 이처럼 세상만사가 뒤얽혀 있는 광화문은 그 자체로 ‘광장’이 아닌가.
수십 개의 버스 노선을 통해 사방으로 연결된 광화문은 門을 꿈꾸는 자리다. 조선조의 光化門은 육조거리로 이어지며 ‘궁’과 ‘궁 밖’을 이었다. 그러나 열리고, 때로는 닫히며, 門 이쪽의 사람이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 門이라면, 지금의 광화문은 門 이쪽과 門 저쪽을 이어주는 통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을 움켜쥔 채 오히려 그 자연스런 흐름을 막고 있는 지금의 광화문은 ‘죽은’ 門이다.

지금까지 광화문 안의 권력자들은 ‘광화문權’을 형성해 왔고, 이 광화문權자들은 비광화문權자들에게는 한없이 높은 ‘광화문圈’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이미 청와대, 정부종합청사, 대기업들, 언론사들로 채워져 있는 ‘그들만의’ 광장, 광화문圈이 ‘아무나’에게 門을 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왕조의 빛이 나라 밖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치게 하’려 지었다는 光化門 석 자에 담긴 ‘고집스런’ 권력욕이 광화문에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탓일까.

광화문은 비광화문權자들을 스스로 움츠리도록 만들어 왔다. 광화문 사거리는 걷는 이에게 ‘아찔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길을 걷는 이들과 ‘나란히 서기’를 거부한 채 ‘위’를 향하고 있고, 그 한쪽에는 무장한 한국 청년들의 비호를 받는 ‘더 높은’ 미 대사관이 있으며, 이 위압감을 피해 고개를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거대한 차도가 생명을 위협하는 무언의 통제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 광화문圈 안에 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낮추고, 자신을 통제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표현을 빌자면, 광화문은 일종의 거대한 ‘정열 없이 무미한 자기억제를 강요하는 심리적 장치’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광화문이 꿈틀대고 있다. 그 위에서 사람들이 꿈틀대고 있고, 건조했던 사람들의 관심이 꿈틀대고 있고, 광화문圈을 가르던 그 성스럽던 경계가 꿈틀대고 있다. 엘리아스가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서 보건대, 이 모든 심리적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몸을 굽힌’ 계층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몸을 굽히기를 중단한다”라고 설명한 바로 그 순간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이동철 용인대 교수(철학)는 “광화문은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우중을 지도하는 ‘개발독재’의 그림자를 상징해 왔다. 그러나 붉은 악마, 촛불 시위 인파의 ‘광화문 장악’은 한국 사회에 소수가 아닌 다수를 지향하는, 그리고 의존이 아닌 자존을 지향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광화문을 움직이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이필렬 방송대 교수(화학)는 “여럿이 모이는 데 대한 비장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왜 하필 지금이냐. 바로 지금이 문민정부의 혜택을 받고 자라난 20~30대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눈치보며’ 자라난 이전 세대들 아래에서 스스로의 저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이를 발견해낸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광화문, 너의 門이 열렸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인터넷’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강 교수는 “네티즌은 검색창에 ‘촛불시위’ 네 글자만 입력하면 행사장소, 행사일정, 참여단체 등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손쉽게 알아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스스로 모임을 주도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 주는 이 ‘능동의 즐거움’이 바로 지금의 살아있는 광화문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서정주 ‘광화문’ 中)’로부터 ‘현깃증을 일으키는 서울 한복판의 문명의 무게(김동리 ‘광화문 지하도’ 中)’로, 그리고 이제 ‘촛불시위의 현장’으로, 숨가쁜 근대사의 시간이 光化門 아래로 흘러갔듯 대한민국의 역사는 광화문 위로 흘러가고 있다.

아, 광화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니 이미 터져 ‘광장’이 된 지도 모르는 ‘불안한 밀실’이여, 상징이여!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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