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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비극, 자기개발형 인간의 탄생
우리 시대의 비극, 자기개발형 인간의 탄생
  •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 승인 2017.10.2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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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학생들과의 진로상담이 평가 항목이 돼버린 후 학생들과의 주기적인 면담에서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담을 하러 온 학생들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경쟁력 있게 업그레이드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고, 따라서 면담은 주로 그 방법에 관한 것으로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가령 어학연수를 가는 게 취업에 도움이 되겠는가, 아니면 동아리활동은 어떤 것을 하는 게 스펙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의 이런저런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겠는가 등이었다.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서 나는 학생들이 자신을 마치 구매자의 기호에 따라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화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학연수를 가는 게 좋겠다고 하면 여지없이 다음 질문은 그럼 언제 가는 것이 제일 좋겠는가가 되돌아왔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두려움보다는 그런 경험이 주는 경쟁력이나 효용성, 아니면 가성비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많은 대학들이 학과 구조조정을 할 때도 같은 잣대로 학과의 등급을 매기는데, 이 때 사용하는 경영학 용어인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분석이 이제는 학과를 넘어 개인에게도 면밀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학생들은 취업에 맞춰 자신을 인적자본으로 재구성하고 있고, 대학과 기업은 경쟁력 있는 인적자본의 요소를 언제나 常數가 아닌 變數로 공표함으로써 학생들의 자기개발을 향한 무한경주가 절대로 멈추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사상가인 웬디 브라운(Wendy Brown)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자신의 책 『민주주의 살해하기(Undoing the Demos)』(배충효·방진이 옮김, 내인생의책, 2017.6)에서 이와 같은 자기개발형 인간을 ‘기업가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기업가형 인간이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낳은 새로운 인간형으로 자기 자신을 마치 법인체처럼 살아있는 자본이자 투자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치 기업을 경영하듯 스스로를 관리하는 인간형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자신을 인적자본으로 여긴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날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모든 활동과 장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자신의(금전적·비금전적) 포트폴리오 가치를 향상시키는 과제에 의해 집중적으로 규정되고 통치되는 인적자본 단위다. 이것이 신자유주의화된 국가, 대기업, 소규모 사업체, 비영리단체, 학교, 자문단, 박물관, 지방, 학자, 연예인, 공공 기관, 학생, 홈페이지, 운동선수, 스포츠 팀, 대학원, 보건 인력, 은행, 세계적인 법률 회사 및 금융 기관의 기획을 규정하는 지침이자 성향이다. 민주주의의 지침과 원칙이 이런 이성 및 통치 질서에 의해 재편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인적자본이 되면 스스로를 투자대상으로서의 자본으로 재구성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자본력도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쟁력 지수나 신용등급 같은 기준으로 서열화 된다.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개발에 매진하는 인간의 등장은 사회의 모든 영역이 남김없이 시장화 돼버린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연애에서부터 결혼, 출산, 양육과 교육,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삶의 과정에 가성비와 효율성이라는 경제적 메커니즘의 원리가 들어서게 된다. 가령 취업을 하고 난 뒤에 연애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다거나 결혼을 해도 아기는 낳지 않는 게 자기개발에 더 도움이 되겠다는 것과 같은 개인의 결정들은 마치 시장의 추이를 봐가면서 신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것과 같은 기업적 경영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인적자본이 되는 순간 잉여적 자본이거나 무용한 자본으로 판명될 경우 언제든 가차 없이 버려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실적이 부족한 기업은 바로 증권차트에서 도태되듯이 개인의 경우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순간 바로 그 생존조차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리가 경쟁이 되면 개인은 어쩔 수 없이 서바이벌 게임의 원리를 습득하게 된다. 그 원리란 다름 아닌 자기개발이다. 시장에 맞게 자신의 생애주기를 조정하고, 욕망을 조절하며, 나아가 심성과 개성도 개선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런 시장형 자기개발에 매진하는 인간들로 사회가 재구성된다면 그런 사회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지금 대학이 이런 인간형을 개발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읽으며 묻고 싶었다.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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