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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떨리는 재판부터 개혁 마중물 된 15세기 ‘롤라드’까지 풍성
살 떨리는 재판부터 개혁 마중물 된 15세기 ‘롤라드’까지 풍성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24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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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문화계에 부는 바람은?
(좌측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영화 「루터」, 영화 「로마서 8:37」, 창작뮤지컬 「THE BOOK」 사진 제공 = (주)화요일, (주)루스이소니도스, 문화공간 아트리

쾅쾅쾅. 1517년 10월 31일 새벽, 루터의 망치가 비텐베르크 부속 교회 건물에‘95개조 반박문’을 못 박는 소리가 울리면서 암흑에 휩싸였던 중세유럽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근대를 태동케 한 못질이었다.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전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이를기념하는수많은 행사와 학술대회들이 개최됐다. <교수신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종교개혁의시대적 의미를 짚어보는 학술대회 발표문, 문화계의 새로운 바람들 그리고 종교개혁 관련 필독서들을 통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본다.

 

▲ (좌측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영화 「루터」, 영화 「로마서 8:37」, 창작뮤지컬 「THE BOOK」 사진 제공 = (주)화요일, (주)루스이소니도스, 문화공간 아트리

연초부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다채로운 문화행사들 중에서 현재 관객들을 기다리는 영화와 뮤지컬을 소개한다.

스크린에서는 두 편의 영화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마르틴 루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루터」(감독 에릭 틸)가 지난 18일 개봉했다. 영화는 물질화되고 타락한 16세기로마 가톨릭의 민낯을 마주하고, 신앙의 길을 바로잡기 위해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는‘루터’의 전기를 대서사시 형식으로 따라가고 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다. 이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긴 인물인 ‘루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루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16세기 당시 어두운 중세의 사실적인 묘사와 ‘믿음’에 대한 루터의 강렬한 고뇌다.

실화전문 배우라 불리는 조셉 파인즈가 루터 역을 맡았고,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브루노 강쯔, 알프리드 몰리나, 유스티노브 등이 조연으로 참여해 팬들의 기대가 높다. 독일에서 5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한 브루노 강쯔는 「다운폴」(감독 올리버 히르비겔, 2014)에서 히틀러 역을 맡았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1993)로 우리에게 친숙한 얼굴. 「스파이더맨2」(감독 샘 레이미, 2004)에서 악당 옥타비아누스 박사로 분했던 알프리드 몰리나는“면죄부를 사면 마리아를 모욕해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타락한 신부 요하네스 바첼 역을 맡았다. 실존인물이다. 개혁을 용납할 수 없는 반대 세력들과의 갈등 속에서 루터가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영화가 단순히 16세기의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비추며 방향을 제시하기에 더욱 몰입도가 높다.

두 번째 영화는 묵직한 메시지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지난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은 영화「로마서 8:37」(감독 신연식)다. 포스터에서부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작임을 천명하고 있는 이 영화를 두고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종교와 신념과 윤리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이라고 평했다.

「동주」(감독 이준익, 2016)를 제작하기도 했던 신연식 감독은 이번 영화「로마서 8:37」에서 죄의 문제를 노골적으로 다뤘다. 복음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바로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 신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한국사회는 어떤 담론을 나누기에 굉장히 척박한데 결국은 모든 것이 진영논리로 가기 때문”이라며 “「로마서 8:37」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바라볼 수 있는 담론의 장으로 나아가길 기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우상인 형 ‘요섭’(서동갑 분)을 돕기 위해 교회로 간 ‘기섭’(이현호 분)이 형을 둘러싼 무수한 의혹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끝까지 부정하던 기섭이 점차 사건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변화가 흡입력 있게 관객들을 객석에 붙들어둔다.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대학로에서는 뮤지컬 「THE BOOK(더북)」을 추천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1년 오픈런으로 재공연에 들어갔다. 매주 일요일을 제외하고 평일 저녁 8시, 토요일·공휴일 오후 3시, 7시에 열린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종신선교사들이 모인 극단 ‘문화행동 아트리’가 8번째로 올린 창작 뮤지컬이다. 극본, 연출, 작곡을 모두 선교사들이 공동작업했는데 그음악적, 연극적 성취수준이 제법 높다.

뮤지컬 「THE BOOK(더북)」은 1517년 루터의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기 약 100년 전 이미 존재했던 종교개혁의 마중물, ‘롤라드’라고 불렸던 평범한 사람들의이야기다. 가톨릭 교회의 제도와 관행을 따라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속임수에 속던 영국 노리치에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교회는 그들을 ‘롤라드’라 부른다. ‘롤라드’는 독버섯, 중얼거리는 자라는 뜻. 평범한 서민에 불과했던 ‘롤라드’아이린을 통해 아버지 토마스와 어머니 하위사가 점차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막으려는 냉철한 이단감찰사제 베르나르와 서민의 편에 선 이단감찰사제 로버트의 대립이 웅장한 뮤지컬 넘버들 속에서 밀도 있게 그려진다.

책을 펼치려는 자와 덮으려는 자 사이의 극한 갈등이 진리와 이단의 구분으로 나타나며, 영역 성경을 전하는 데 위험이 따르자 성경을 외워 스스로가 성경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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