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8:15 (화)
한국연구재단 창립 40주년, 그 씁쓸함에 대하여
한국연구재단 창립 40주년, 그 씁쓸함에 대하여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24 11:0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의 눈

1. 지난 17일 국회 교문위 국감장. 12개 교육산하기관장이 국정감사를 받고 있다. 마이크 앞에 선 조무제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여당의 한 국회의원의 호통이 시작된다. “감사원 보고서 청렴도 부문에서 한국연구재단은 D등급이에요. 가장 신뢰받을 기관이 왜 이렇게 된 겁니까?”머리칼이 희끗한 조 이사장이 연이어 허리를 숙인다. “청렴교육 제도보완을 통해 높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들어가 보세요.” 청렴도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다. 시간이 흘러 한 여당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지적된 김준동 사무총장에게 이화여대 특혜 비리를 캐 묻자 “특검에서도 저를 언급 안했는데 의원님은 논리적 비약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되받는다. 또 조금 시간이 흘러 야당의 한 의원이 조 이사장에게 노벨상 받을 노력을 좀 해달라는 주문을 한다. 오전 10시에 개회, 오후 5시가 다 돼서 마친 교문위 국정감사 일정에서 한국연구재단은 이런 방식으로 소환됐다. 연 4조8천억 원(2017년 기준)의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에 대해 국민의 대변인인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2. 지역거점국립대의 K교수는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실적 평가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논문 한 편당 얼마 되지 않는 액수를 사례비로 받지만 연구실불을 밝히며 5, 6편의 논문을 꼼꼼히 체크했다. 얼마 후 상경해 양재동에 위치한 한국연구재단 서울지사를 찾은 그는 깜짝 놀랐다. 여러 연구자들이 조별로 모여 앉아 수많은 논문에 대해 토론을 벌여야하는데 속속 옆 테이블들이 비어가는 것이었다. K교수가 있는 테이블이 홀로 남기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많은 논문들을 읽어왔다고 해도 연구실적으로 남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동료들이 서로 솔직한 토론을 해야 할 텐데 그저 말 몇 마디로 평가가 끝나는 현장.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한 내에 연구실적을 제출하지 못한, 즉 등재지에 실리지 못한 케이스가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K교수에게 다가온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곧 등재지에 실을 예정이거나 요약문 보시기에 연구 성과가 나온것과 거의 같다고 보시면 통과시켜 주세요.”K교수는 질문했다. “재단에서 추후에 등재지 실리는 거 확인합니까?”대답은 안 들었으면 더 나을 뻔 했다.

3. 지난 19일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22층 다이아몬드홀.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영상 축전들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배경음악 비트와 어우러져 장내를 가득 채운다. 한국연구재단의 40주년 기념 국제학술포럼현장이다. 외국인 연구자들과 몇몇 주한 대사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경제성장은 과학기술이 견인했음이 틀림없고 이를 가능케 한 한국연구재단의 아낌없는 지원을 칭찬한다. 부러움 섞인 눈빛들 사이를 활기찬 걸음으로 오가는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들. 불과 이틀 전 국정감사에서 절절 매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라운드 인터뷰장에서 유이치로 안자이 이사장에게 일본 학술진흥회 내부 청렴도나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고 질문했다. 일본에도 그런 문제가 있지만 전체 연구자보다는 개별 연구자를 모니터링하는 수준이라고 답한다. 도덕성과 연구룰도 중요하지만 연구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러면서 ‘그린북’이라는 게 있다고 말한다. 연구비를 신청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혹은 오프라인으로 연구윤리를 보는 것이란다. 필요하면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다.

4. 연구재단 창립 40주년은 축하해야 마땅하고 축하받아야 마땅한 행사다. 그런데 말이다. 연구재단이 놓친 건 없을까. 학문공동체에서는 연구재단이 최초의 설립 동기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회의적인 시각이 짙다. 그렇다면, 40주년 행사라면‘자기성찰’의 등불 하나 정도는 켜놓고 새로운 방향 즉, 미래의 국가 학술정책에 관한 청사진을 그려내는 치열한 고민을 펼쳐야 했다. 또한 교육 공무원이 한 나라의 ‘학술정책’ 내용에까지 깊이 간섭하는 이 기형적 학술정책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곳곳에서 볼멘소리를 듣고 있는 중장기적 연구 과제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를 따지는 건 불가능했을까. 해외 연구기관 수장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조언을 솔직하게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연구 진흥을 위한 순수한 지원에 집중하고, 연구자와 연구소들을 더 이상 좌지우지 하게 않겠다는 선언도 했을 법했다. 지난 6월 열렸던 첫 번째 40주년 기념행사에 이어, 이 모든 게 결여된 이날 두 번째 행사는, 최소한 ‘성찰’과 ‘전망’조차 함께 짚어내지도 못한, 씁쓸한 일과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강석 2018-05-18 21:03:06
국민의 혈세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총체적 비리 와 도덕적해이 문제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