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3 19:10 (금)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 실험의 위험성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 실험의 위험성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17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에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던지는 질문

이제는 친숙한 이름 박노자. 소련의 레닌그라드(현 러시아연방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고대 가야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 귀화했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는 그가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 刊, 2017.9)를 펴내고, 현재 한국 상황을 진단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의 주역들을 소환했다.

러시아 혁명에 참여했던 대다수는 단연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귀족과 부호들이 소유한 농장을 몰수해 이를 농민 공동체 구성원들과 평등하게 분배하려 했다. 농민들의 혁명을 급진적으로 이끈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희망도 보지 못했던 러시아 도심의 대기업 숙련공이었다. 이들은 한 달에 50~60루블의 임금을 받았다. 이는 러시아의 하급사무원 혹은 하급장교 월급과 맞먹는 상대적 고임금이었다.

여기서 박노자 교수의 질문은 시작된다. 과연 이 숙련 노동자들이 ‘귀족’이었을까 라는. 오늘날 일부 한국 언론은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몇몇 중공업 숙련 노동자들을 ‘노동 귀족’으로 부른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잔업을 포함해 하루 10~11시간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고, 비좁은 셋집에서 살았으며 권위주의적인 공장 당국의 끊임없는 ‘갑질’을 당하다가 불경기가 오면 정리해고를 당했다. 한번 노동자가 된 이상 그들에게는 신분상승의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이를 고등학교(김나지움)이나 대학에 보낼 여력이 없는 노동자 가정에서 노동은 세습됐다.

박 교수는 묻는다.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 하우스 푸어로서의 고달픈 삶, 회사의 ‘갑질’, 신분 불안, 가난과 중노동의 대물림….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상화에 대한 간추린 묘사처럼 들리지 않냐고.

그는 “1980년대 한국의 운동권들이 레닌과 소련을 지나치게 이상화했던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원칙적으로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적인 관리와 통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게 사라지면 오늘날 같은 야만적 자본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민주주의 없이 그 어떤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러시아 혁명이 준 가장 큰 교훈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