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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후 수교로 학문적 토대 구축 30년 … 새로운 과제는?
냉전 후 수교로 학문적 토대 구축 30년 … 새로운 과제는?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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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러시아학 연구 어디까지 와 있나?

‘빵과 평화’를 외치며 니콜라이 2세의 궁전을 찾아갔던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은 1905년 1월의 피의 일요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어느 날, 차르의 통치를 무너뜨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100년 전 그날,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꿈 꿨던 이상은‘소비에트’수립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이 체제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미완의 세계사적 혁명은 오늘날 과연 어떤 과제를 시사할까. <교수신문>은 미완의 혁명으로 남은 러시아 혁명사, 국내러시아학 연구사, 러시아 혁명이 오늘날 한국에 던지는 질문등을통해러시아혁명100주년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봤다.

 

국내 러시아학의 연구는 막 30돌을 넘긴 젊은 학문분야다. 1985년 한국슬라브학회(현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지난 14일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창립을 기점으로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교류역사를 따져보면 1896년 서울 수하동에 관립 러시아어학교가 설립된 바 있고, 해방 이후 최초 러시아어 교육은 1947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시작되기도 했다. 러시아어 교육으로 보면 100년이 넘는 역사적 접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정규대학에 러시아어과가 개설된 것은 6·25전쟁 이후다. 한국외대가 설립된 1954년에 러시아어학과가 문을 열었고 초대 주임교수를 하얼빈 소재 만주건국대를 졸업한 동완 교수가 맡았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러시아학 연구는 쉽지 않았다. 냉전시기 북한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던 한국에서는 러시아(소련) 자료 입수, 연구주제 선정에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두에 국내 러시아학 연구가 이제 막 30돌을 넘겼다고 밝힌 이유다. 다행히 1960년대 접어들면서 소련과 미국의 평화공존 가능성이 대두되며 연구 분위기는 반전을 맞고 이는 국내 러시아학 연구의 태동기(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를 견인한다.

1972년 고려대와 서울대에 러시아사 강좌가 최초로 개설된 것이다. 미국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 전 서울대 교수(현 KBS 이사장)가 고려대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제1세대 러시아 연구자에 의한 후학양성이 시작됐다. 1979년 전지용 전 조선대 교수(당시 고려대 대학원생)이 「19세기 인민주의자 표트르 라브로프에 대한 연구」를, 1980년 임영상 한국외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서구관」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것. 이는 대학가에 러시아사, 특히 혁명사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일조했고, 이후 러시아사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러시아 혁명 사상과 연관된 지성사 분야와 혁명 이전의 러시아 사회·경제 상황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산권 연구의 일환으로 소련체제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연구도 수행됐다. 1972년 한국외대 소련 및 동구문제연구소, 1974년 한양대 중소연구소(1997년 아태지연연구센터로 개명), 1979년 고려대 러시아문화연구소(현 러시아·CIS 연구소)등이 대표적인 연구기관으로 기능했다.

한국 러시아사 연구의 선구자인 이인호 교수의 연구 성과는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문학 연구자에게도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분야에서는 한국 러시아어문학의 태두인 동완 전 한국외대 교수, 한국외대 노어과 초창기 졸업생인 김학수 전 고려대 교수(노어노문학과), 이철 전 한국외대 교수(노어과), 박형규 전 고려대 교수(노어노문학과) 등이 큰 족적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국내 러시아학 연구는 해빙기이자 첫 전환기를 맞는다. 동서 화해 분위기 조성과 개혁·개방정책으로 소련이 빗장을 서서히 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혹은 국비유학생 신분으로 유학을 떠났던 이들이 1980년대 중반 속속 귀국했다. 언어학 분야의 강덕수(한국외대), 이인영(서울대), 김진원(고려대), 문학 분야의 최선(고려대), 권철근(한국외대), 김희숙(서울대), 고일(고려대), 사회과학 분야에서 문수언(숭실대), 하용출(서울대) 등이 연구와 강의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학과 개설도 러시아 연구를 촉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외대와 고려대에 이어 1984년 서울대에 노어노문학과가 개설됐다. 러시아와 슬라브권 국가가 중요한 학문적 연구대상이라는 이 신호는 지방 국립대와 수도권 주요 사립대로 전파됐고 러시아 관련학과가 추가적으로 개설됐다. 마침내 1985년 한국슬라브학회도 창립됐다. 이를 통해 1987년 한국노어노문학회, 1989년 한국러시아문학회가 조직됐고, 1989년에는 서울대에 러시아연구소가, 1990년에는 한국외대에 동유럽 지역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동유럽발칸연구소가 출범했다.

송준서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러시아사)는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체제에 관심을 보였던 연구자들은 러시아 혁명사와 소비에트 체제 건설 초기 연구로 관심영역을 확장했다고 본다. 1987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금서에서 풀린 것이 그 시발점이라는 시각이다. 1988년 전후로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의 저작 역시 봇물 터지듯 출판되면서 연구자들은 1991년 소련 붕괴의 문제점과 체제 몰락의 실마리를 찾으려 시도했다.

두 번째 전환기는 소련의 붕괴 시점을 훌쩍 지나서 찾아왔다. 1990년대 중반까지 러시아학 관련 논문 수가 198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했지만 연구자들은 혁명, 이데올로기를 지나 전통문화와 신앙, 소수민족 문제로 관심사를 다양화시켰고 이는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접어들며 연구물의 양적증가로 이어졌다. 이 시기를 두 번째 전환점으로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양적 팽창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최초인 1996년 게르첸사범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조호연 교수를 필두로 1990년대 초 급변한 한국과 러시아 관계의 수혜자들, 즉 러시아 유학자들이 1990년대 중후반 귀국해 연구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문서고를 개방한 러시아 덕분에 디아스포라, 구술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된 연구는 국내 러시아 연구자들의 담론을 세계로 발신하는 데 일조했다.

2017년 현재, 러시아 관련학과 중 상당수가 통폐합되며 연구를 희망하는 학문후속세대는 손에 꼽을 정도. 아이러니한 것은 러시아 연구의 문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짝 열려 있다는 점이다. 김현택 한국외대 교수(노어과)는“수십 년간 축적된 전문지식으로 제정러시아, 소비에트 러시아,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에 이어 유라시아의 여러 제국들까지 수많은 미개척분야가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선을 기다리고 있다”고 조언한다. 러시아혁명 100주년. 국내 러시아학 전문연구자들이 새로운 국면을 어떻게 펼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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