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5 (금)
寬容 혹은 杞憂
寬容 혹은 杞憂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7.10.10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의 눈

“성소수자 학우들은 자신의 존재가 지워질 뿐만 아니라(……) 불안감을 안고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ㄱ대 성소수자협의회에서는 이들의 학습권과 신변을 보장하기위해 실제로 교수님께서 이 성명서에 서명하셨는지를 여쭙고자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ㄱ대의 한 교수는 최근에 자신의 메일함에 날아든 이런 내용의 메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는 지난 8월 한 일간지에 ‘동성애 동성혼 개헌 반대 전국교수연합’ 이름으로 “법개정안에 동성애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포함되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는 성명서에 실명을 올렸다.
 
이 성명이 실린 것을 보고, 대학 성소수자협의회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일일이 실제 서명 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보냈다. 전면광고 형식의 이 성명서에는 서명에 참가한 교수 2천158명의 명단과 이들 교수들이 소속된 22개大 명단이 함께 실려 있었다.

서명한 교수나 동명이인으로 이런 메일을 받은 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강의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학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행동도 아니었던 터라, 허탈함을 토로하는 교수도 있었고,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교수도 있었다.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교수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메일을 받은

많은 교수들이 “심각한 ‘교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게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방증이다.

익명을 요구한 ㄴ대의 한 교수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를 왜 학교 안으로 갖고 들어오는가”라며 “교수들이 학교 밖에서 개인적 신념을 밝힌 것에 대해 왜 지성인으로 존중해주지 않느냐”면서 불편해했다.

교수들이 이 문제를 더욱 염려스러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1980~1990년대 교수들과 학생들이 서로 대립했던 문제와 결이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편향된 어용 교수들과 이념적, 정치적 시각의 차이를 두고 벌어진 대립과는 문제의 층위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성소수자 학생 측은 이제는 정치, 이념의 시대를 지나 성소수자의 문제가 더 이상 개인 문제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펼쳐오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성소수자들의 기존 체제에 대한 싸움은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목록에서 삭제 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정치와 이념의 문제에 비해 논의 자체가 주변화 되고 배제된 측면이 있지만, ‘성소수자’를 둘러싼 논의들은 더 이상 음지에 놓여 있지 않다. 이들의 목소리와 주장 역시 사회적 관용의 틀에서, 다원적 가치의 관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서명에 참가한 일부 교수들은 ‘종교적인 그늘을 걷어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서울에 소재한 한 미션스쿨계 대학 교수는 “교수도 자연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고, 다른 한 쪽에선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소수자의 지위에 대해 활발히 논의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나. 두 논의가 공존하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교수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메일을 받은 많은 교수들이 “심각한 ‘교권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게 전혀 근거 없지 않다는 방증이다. 차제에 학생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더 심각한 교권침해’로 이어지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윤상민기자 cinemond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