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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주의자-공화주의자’의 치열한 대립 역사 녹아있는 미국 헌법의 한계
‘연방주의자-공화주의자’의 치열한 대립 역사 녹아있는 미국 헌법의 한계
  • 교수신문
  • 승인 2017.09.2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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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_ 25강.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제퍼슨, 매디슨과 미국 민주주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열린연단: 문화의안과밖’의2017년 강연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이 강연 3섹션‘정치/경제’영역으로 이동했다. ‘정치/경제’ 강연들에서는 시대의 사상, 인식 체계의 틀을 깨고 정치·경제의 발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변해 왔는지 살펴 볼 예정이다. ‘패러다임의 지속과 갱신’강연은 34강에 걸쳐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가능케 한 역사적 인물 혹은 작품을 선정해 혁신적 사유를 조명해보는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의 네 번째 강연 시리즈다. 제25강「제퍼슨, 매디슨과 미국 민주주의」(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 발표문 일부를 요약발췌했다.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새 헌법을 설득하는 논객으로서 푸블리우스, 즉 연방주의자들은 두 쟁점들 사이의 애매함을 조절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더 강한 정부를 주장해야만 했고, 동시에 강한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야 한다는 것이다. ‘주연합의 조문들’에서 중앙정부가 너무 약해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던 새 헌법의 주창자들인 푸블리우스는 중앙집중화의 선봉들이다. 그렇지만 푸블리우스는 중앙집중화가 작은 단위들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민감한 주들을 설득할 때, 그들을 정부 하위 부분, 권력 분산의 지지자로 말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은 연방주의(federalism)라는 말 자체로부터 나온다. 원래 이 말은 foedora라는 라틴어에서 나온 것인데 조약을 통해서 연합한다는 말이다. 그 말이 이런 의미를 지닌다면 그 뜻은 헌법보다는‘주연합의 조문들’에 더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강한 중앙정부 주창자들은 이 말을 “주들 간의 연대(federal) 수준에서 보다 강한 정부”라는 말뜻으로 끌고 나갔고, 그 논리로 구체제의 옹호자들이 반연방주의자들로 돌아서도록 했다.

이렇듯 용어의 애매함은 뒤에까지 역사를 통해 지속됐다. 새 헌법을 통해 연방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곧 해밀턴을 중심으로 하여 강한 중앙정부를 표방하는 연방주의자 정당이 출현했고, 그에 대응하여 제퍼슨과 매디슨이 중심이 된 민주-공화당이 나타났다. 뒤에 연방주의자들(이때의 Federalists는 헌법 비준 과정 때의‘연방주의자’들과 정치적 역할에서 다르다)은 강한 중앙정부를 표방하는 정당이 되었다. 해밀턴을 리더로 하는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을 기반으로 하는 상공업적 분파와 제퍼슨, 매디슨이 이끄는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농업 분파가 새로 구성된 의회 내 표 블럭을 형성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정당이 그렇게 출현하게 된 것이다.

매디슨의 굉장한 업적은 이 공화주의라는 말을 한 정부의 구조로 그렇게 명명함으로써 그것이 확실하게 민중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정부 구조는 공화정이라는 정부 구조가 궁극적으로 동의에 기초한다는 것은 인민의 정치 참여의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매디슨은 공화정을 ‘대표의 구도’가 발생하는 정부 형태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연방주의자 논설」 63번은 “정부의 어떤 몫에서 집단적인 능력이라는 점에서 인민의 총체적인 배제”를 완벽한 공화정이라고 말하면서 미국은 어떠한 민주주의 요소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인들은 그들 앞에 어떤 나라의 인민도 영국까지 포함해서 대표의 원리를 이해했던 사람들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에 대해 민주주의는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시민 개인들이 직접 집회하고, 정부를 운영하는 체제”라고 정의한다.

새로운 헌법 정치의 모델

공화정은 두 가지 특징을 갖는데 하나는 “나머지 시민들이 선출해서 소수의 시민에게 정부의 운영을 대표시키는(delegation)”정부 형태고, 다른 하나는 “많은 수의 시민들이 보다 광역의 영역으로 확장”된 사회에서의 정부 형태다. 즉 인구와 사회의 크기에서 사이즈의 차이를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공화정은 현대 민주주의로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민주정은 고대 그리스에서의 직접민주주의이다.

이런 차이를 지적하는 것을 통해 매디슨은 공화정과 사회의 사이즈가 작은 국가를 역사적으로 연결시켰던 몽테스키외와 루소가 말하는 연계 관계를 정반대로 말한다. 이 점에서 매디슨의 공화정에 대한 정의는 최초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는 공화정에 대해 훨씬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매디슨의 중요한 기여의 하나는, 그동안 미국에서 대체로 부정적으로 사용했던 공화정 정부 형태를 새로운 헌법 정치 질서로서 제시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국 헌법이 만들어진 지 220~2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오늘의 시점이라는 이점을 가지면서 문제를 볼 수 있다. 과연 미국 헌법과 그것을 기초로 했던 미국 민주주의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의 대의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기여했나? 이 질문에 대해 여러 수준에서의 비판적 관점이 존재한다. 제퍼슨과 「연방주의자 논설」의 저자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헌법의 중심 사상과 그 구체적인 구현으로서 헌법 체계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한계를 안는다.

미국이 헌법을 통해 구현했던 “인민 스스로의 정부 또는 통치 체제”(self-government)는 민주주의라고 표현하는 정치체제, 또는 정부 형태─고대 그리스어로 표현된 바 있는 데모크라시, 즉‘인민의 권력/인민 스스로의 통치’(demo 그리고 kratia)를 의미하는─의 이상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나 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헌법은 로버트 달을 포함해 샤츠 슈나이더,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등 여러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인민주권의 원리, 보통선거권, 낮은 수준의 대표성, 흑인 차별, 인민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정부 등 여러 기준에서 많은 문제와 한계를 포함한다.

18세기 말 기준에서의 선진적 사례

그러나 미국 헌법의 여러 약점들은, 한 저자의 일관된 비전과 철학을 담은 체계적인 저술이 아니라, 저자들(해밀턴과 매디슨) 사이에서, 그리고‘연방주의자’와‘반연방주의자’사이에서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 힘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 「연방주의자 논설」은 기본적으로 상황이 요구하는 실천적 문제에 대응하여 쓰인 문헌이다. 그리고 연방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가능한 모든 이론과 정치력을 동원하고 반대 세력과의 타협을 수용하는 데 주저할 수 없었다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헌법이 만들어졌던 시대적 조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시기는 미국의 빠른 영토 확장과 더불어 경제 발전, 그리고 보통선거권에 대한 요구의 분출을 포함해 인민의 정치참여, 정당의 발전과 같은 대의제적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힘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감안할 때 미국 헌법은 그 안정성이 엄청나게 높다.

또한 그 한계가 많다 하더라도 미국 헌법은 인민의 정치 참여가 가장 많이 실현되고 있었던 영국을 포함하여 유럽에서 발전한 민주주의의 어떤 형태보다 진전된 것이었고, 18세기 말 당시의 기준에서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선진적인 모델 사례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매디슨 체계의 제일 큰 기여는 전제정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중심으로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문제점은 사회와 인민들의 다수가 요구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정부를 무력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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