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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세계는 ‘禁食’을 낳고 금식은 물고기 요리를 선물했다
신의 세계는 ‘禁食’을 낳고 금식은 물고기 요리를 선물했다
  •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7.09.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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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음식-음식의 문화사_ 7. 최후의 만찬(2): 참을 수 없는 씹는 즐거움
▲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작품 「최후의 만찬」.

“Wine is sunlight held together by weather.”
―Galileo Galilei(1564~1642)

기독교인들에게 와인은 예수의 성혈을 상징하는 술이다. 예수께서 아끼는 열 두 제자와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와인 잔을 들어 자신의 피와 동일시했기에 와인은 사실 엄숙하게 마셔야 맞다. 앞의 글에서 나는 세계 곳곳에서 목격한 다양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그림들을 살피면서 만찬 식탁에 오른 정체불명의 짐승요리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또 예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젊은 여성 혹은 남성이 누구인지도 살펴볼 것이라고 기세 좋게 말했다. 사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일일이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의 한 사람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9~1494년)라는 르네상스 화가도 「최후의 만찬」(1480)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서 허리를 곧추 세우고 허벅지에 손을 얹은 채 도전적인 자세로 앉아 있는 유다 맞은 편 예수 곁의 젊은 사도 요한은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 이 그림의 숨은 이야기는 뭘까? 다른 사도들은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기치 않은 사태가 초래된 문제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듯도 보이고 예수가 요한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는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듯도 싶다.

기를란다요가 미술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된 이유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 3대 예술가 중 한 사람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년)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1488년 열세 살 나이에 기를란다요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피렌체의 실질적 지배자인 로렌조 메디치가 기를란다요에게 산 마르코 수도원에 프레스코화를 그려야 하니 수제자 두 명을 보내라고 하자 미켈란젤로와 그보다 여섯 살 더 먹은 프란체스코 그라나찌를 보낸다. 그로부터 이 둘은 평생의 벗으로 시스틴 성당 천장화 작업 등 작품 활동을 함께 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그려진 그의 작품 「최후의 만찬」은 배신자 가롯 유다가 식탁의 중앙부에 등을 보이고 앉아 맞은편의 예수와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구도인데, 화가의 의도 내지 관심은 만찬의 종교적 메시지보다 벽에 붙은 꽃병, 새가 나는 수도원의 뜰과 같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 즉 심미성의 묘사에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빵보다 새소리나 아름다운 꽃과 같은 심미적 대상에 그림의 가치를 둔다는 것인가? 그러나, 차후 별도로 살펴보겠지만, 식욕을 능가하는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와인 원조국 그루지야의 아주 오래된 ‘술항아리’

와인 이야기로 돌아가서, 와인의 원조국은 그루지야(Georgia)다. 현지인들은 사카르트벨로(Sakartvelo)라고 한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북으로 코카서스 산맥, 남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나라에서 기원전 6,000년 무렵의 술항아리가 발견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김장김치를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발효를 늦추고 맛을 내듯이 그루지야인 선조들은 포도즙을 크베브리라는 흙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숙성시켰다. 신의 음료라기보다 인간 자신을 위한 음료였다. 포도가 많이 나는 곳이라 인간의 지혜가 포도주 문화를 발전시킨 결과다. 다른 나라에서도 제 각각 술을 만들어 마셨다. 께름칙한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신의 제단에 먼저 올리는 술수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그런다고 술이 줄어든다거나 변질되지는 않았고, 신에게 바쳐진 술은 영험하다는 의미까지 부여돼 꺼릴 바가 아니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수스(Dionysus)라고 부른 신을 속성은 그대로 두고 명칭만 바꿨다. 남들이 보면 얼핏 다른 신으로 오인할 수 있는 일이다. 마케팅의 입장에서 보면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바꿔 마치 신제품인 듯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일종의 사기 행위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신은 박쿠스(Bacchus). 지중해를 끼고 번영과 후퇴의 국운을 겪어오고 있는 레바논의 도시 비블로스에 가면 박쿠스 신전이 있다. 고대인들은 그곳에서 박쿠스의 이름으로 酒宴과 그에 따르는 환락을 즐겼다.

▲ 암스테르담 꽃시장 튤립을 포함한 각종 알뿌리를 파는 상점

신을 섬긴다는 건 결국 인간을 위한 일이다. 신을 팔아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그런 위대한 신을 창조했다. 신이 주는 선물의 수혜자는 인간이고, 그 중에서도 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은 신의 대리인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세속 권력과 공동 사업을 했다. 구원사업이 그것이다. 성과 속을 대표 내지 대리하는 특권 계층은 주고받기에 능했다. 사제는 황제로 대표되는 세속의 권력층에게 대중을 통치하고 징벌할 권한을 양도했다. 세속의 지배자라는 특권층이 된 소수의 지배집단은 신의 사제들에게 공경을 다하고 죄악의 근원인 재물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게임의 결정판이다.
 
신도들을 거룩한 주님의 집에 불러 모으기 위해서는 부활절 미사와 같은 뜻 깊은 의식이 필요하다. 성찬 의례의 대미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거룩하고 영광스런 이 의식은 신이 사제들에게 허락한 몇 안 되는 특혜 중 하나다. 일반인들이 와인을 마시는 것은 삼가야 될 일이지만, 사제는 신의 이름으로, 신이 허락한,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맘껏 마실 수 있었다.

성당과 수도원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도원 주변을 포도밭으로 만드는 것이다. 포도밭 경작은 농노나 평신도들의 몫이고, 거기서 산출되는 포도로 만드는 술은 세금도 면제받았다. 누가 시비 걸 사람도 없었다. 주님과의 소통을 위한 성찬 의례용 포도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신도들은 이 거룩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신부가, 사제가 주님에게 고하기 위해, 감사를 드리기 위해 한 모금씩 술을 음미한다. 술은 충분하다. 그리고 의식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사제는 술이 필요하다.

불면의 밤에, 고기를 먹을 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술 마시기 좋은 날은 너무도 많다. 독신인 성직자들은 술이 필요했고 술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취기는 현실을 잊게 한다. 본능적 존재로서의 외로움이 현실이라면 술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애인이었다. 그러나 기실 성직자라 할지라도 감추거나 밀쳐둔 욕망이 있게 마련이다. 술이라는 음료는 인간이 숨기고 있는 슬프고 간절한 욕망을 해소해준다

신의 세계, 그리고 ‘금식’의 탄생

기독교를 떠나서 서양 중세를 논할 수 없다. 물론 르네상스를 지나, 근세를 거쳐 현재도 그렇긴 하다. 기독교 중심의 학문 세계인 스콜라(scholar)주의에 매몰돼 철학, 미학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과학, 인문과학을 위시한 학문의 전 영역이 기독교의 지배를 받던 시기를 우리는 중세 암흑기라고 한다. 신이 만든 폭력적인 어둠에서 벗어나 인간에게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인간과 인간의 문제를 중세 이전의 시각에서 바라보려 했다. 이를 일러 인본주의 또는 르네상스(Renaissance)라고 한다. 고전주의 시대 희랍과 로마의 사고방식을 쫓아 인간을 신에게서 해방시키는 문예대혁명은 ‘새로운(re-) 인간의 탄생(naissance)’을 초래했다.

재탄생된 인간은 다른 세상을 보려했다. 다른 사람을 보고자 했다. 필요한 물자 확보라는 절실한 생존 상황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가혹한 신의 손길에서 풀려난 신인류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자유로워진 영혼을 신에게 되팔 의향이 전혀 없었다. 차라리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건너 항해하는 모험을 택했다. 서양의 입장에서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예상치 못한 쾌거를 이룬 이 사태를 서양학자들은 자랑스럽게 대항해시대라고 부른다. 유럽의 번성은 이렇게 이뤄진다. 신을 버리지는 못해도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하면서 삶이 달라진다.    문제는 떠났던 신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기적 공격성을 정당화한 데 있다. 신의 이름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 시기, 공존공생이 아닌 저들만의 리그를 즐긴 서구인들의 악행 시기를 역사학자들은 제국주의시대라 부른다. 신은 또 한 번 인간의 필요악이 됐다. 위선일지언정 신이 있어야 삶의 윤리와 도덕, 행동 강령, 규범 등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었다. 같은 교인들끼리 전쟁을 하면서도 동일한 구세주에게 자신의 편이 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인간은 결국 신과 재 타협한다. 과거의 영광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높은 위상을 유지하게 된 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앙심을 담보 받은 교회는 대중들을 통어하는 효율적 방법으로 엄숙한 예배 의식과 그리스도교 신도들에게 부과할 적절한 금기를 찾아냈다. 예수 탄생과 고난, 죽음을 기리는 경건한 의식이 고안됐고, 거기에 어울리는 금기는 의식의 의미를 강화했다. 이를테면 예수 최후의 날은 더 없이 경건해야 했다. 열두제자와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기리고 애도하는 일은 희생적이고 숙연해야 했다. 최상의 방법은 말없는 기도와 금식을 통한 감사와 참회였다.

식욕은 근본적인 본능이다. 본능을 억제하는 일은 힘들고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를 통한 회개와 참회는 신이 보기에 참으로 어여쁘고 착한 일로서 주에 대한 깊은 신앙심의 증좌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를 금식한다. 중요한 건 단식이 아니라 금식이라는 점이다. 단식은 고통스러우나 금식은 견딜만하다. 여기서의 금식이란 생으로 굶는 것이 아니라 평소 맛있게 먹던 음식을 일시 금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을 떠올리게 할뿐더러 핏물이 흐르는 육류는 맛있기는 하나 어쩐지 께름칙하다. 그러므로 특별한 제일이나 축일에는 본능을 억제하고 맛있는 음식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안 먹자니 허전하다.

마침내 사람들은 대체 음식을 찾아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한 죄인들은 살해의 이미지를 지니는 고기 대신 물고기를 먹음으로써 주 예수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비로소 신앙인의 의무를 다 한 듯 느낀다. 속죄의 날, 사람들은 이렇게 속죄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서양인들이 채식을 한다면서 물고기 먹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건 이런 배경이 있어서다. 물고기는 맛있게 먹는 채식주의자를 pesco-vegetarian 혹은 pescatarian 이라고 한다. 눈 가리고 아옹. 사람 사는 건 이만큼 소소하다.

▲ 츄러스와 와플을 파는 가게

그런데 먹기 위해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금식일이 어쩌다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건너 꼴로 금식일을 맞이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유럽에서는 중세를 거쳐 근세로 넘어오면서 금식일은 계속 늘어나 일 년의 절반이 넘는 200일 이상이 됐다. 육고기를 먹을 수 없었으니 사람들은 물고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씹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금식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타율에 의한 불가피한 일이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더 하고 싶고, 할 것은 하기 싫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끝끝내 씹고자 했다. 송곳니와 어금니가 있는 인간은 씹어야 마땅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율법과 본능의 타협안 ‘물고기 섭취’

물고기 섭취는 양자의 타협이었다. 교회의 입장은 육고기만 아니면 됐다. 속인에게는 육고기만은 못하지만 물고기 살을 씹는 재미가 있었다. 금식일에 육류 섭취를 금한 것이 인간의 욕망을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먹는 일, 씹고 뜯는 재미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잠든 욕망을 일으켜 세웠다. 금지함으로서 오히려 더 하고 싶게 만들고, 그래서 결국 물고기 요리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강에서 잡는 민물고기만으로는 생선 수요를 충당할 수 없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이 있게 마련이다. 유럽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눈을 돌렸다. 연안조업을 벗어나 원양어업에 뛰어들었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가난했던 식탁은 물고기의 등장으로 아름다워졌다. 뜻하지 않게 물고기가 어제의 빈국을 오늘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음식혁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돈벌이가 되는 생선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 고안해 낸 염장법이 바로 그것이다. 한 때 네덜란드는 인구 전체의 1/5이 청어잡이에 종사했다. 북해는 물 반 청어 반의 보고였다. 청어는 주요한 교역품이 됐다. 청어 무역의 중심지 스헤베닝언(Scheveningen)에서는 청어잡이 철이 되면 축제를 연다. 염장청어는 이곳의 특산 별미로 나무통에 담아 소금을 쳐서 숙성시킨 것인데 이 동네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됐다.

중세시대 네덜란드의 총인구는 150만 명에 불과했다. 천연자원도 부족하고 ‘(the) Netherlands’라는 이름처럼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 바닷물에 국토가 자주 잠기는 바람에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가난했다. 그런 네덜란드가 어느 날 갑자기 부자나라가 된 것은 북해에 널린 청어 때문이었다. 더치허링(Dutch Herring)이라 불리는 네덜란드 청어는 단백질 함유량이 약 20%로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다만 쉽게 썩는다는 게 문제였다. 이동과 보관이라는 난제를 타파한 이는 네덜란드의 어부 빌렘 벤켈소어였다. 그가 청어를 장기 보관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갓 잡은 청어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통절임 방법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청어를 1년이나 보관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색다른 맛을 추구했다. 화이트 와인, 식초, 각종 야채, 소금 등을 함께 넣고 끓인 소스에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제거한 청어를 재운다. 일주일 정도 묵힌 뒤 양파, 피클 등과 함께 곁들여 먹으면 눈물샘을 자극하고 톡-하고 코를 찌르는 청어의 삭은 맛이 사람을 흥분시킨다고 한다. 얇게 썰어 야채와 함께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샌드위치처럼 빵 사이에 청어를 끼워 넣어 먹기도 한다.
 
지독한 건 인간의 식성이다. 후각은 역겨운 냄새를 감지하고 뇌에 신호를 보낸다. 거부하라고. 혐오스런 냄새의 원천을 몸에 들이지 말라고 얼굴 근육을 빌려 오만상을 쓴다. 스칸디나비아를 찾은 이방인 한국인은 생소한 악취만으로도 질식할 만하다. 이 고약한 물건이 뭐지? 스웨덴 사람들은 여성은 물론 아이들조차 입맛을 다신다. 천국의 맛을 포기하다니……. 이들의 후각과 미각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효 청어에 길들여졌다. 발트해에서 잡은 청어에 소금을 쳐 약 두 달 간 발효시킨 염장 청어 수르스트뢰밍(surstr?mming)에 대해 스웨덴 사람들은 물론 이웃나라 덴마크 주민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입안을 헹구고, 눈물을 쏟았을까?

▲ 본격적인 청어 철이 시작되면, 곳곳에 이런 풍경이 즐비하다. 사진출처: http://expatshaarlem.nl

네덜란드를 살찌운 ‘더치허링’, 그 호불호의 味覺

네덜란드는 5월부터 6월까지가 청어의 계절이라 해안은 청어잡이 배들로 가득 찬다. 5월에 처음으로 잡은 청어는 군주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가 되면 많은 지역에서 청어 축제가 열리는데 그 중 스헤베닝언에서 열리는 청어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청어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깃발의 날(Vlaggetjesdag)을 기념해 청어 경매를 열며 사람들은 고통스런 맛의 염장 청어를 마음껏 즐긴다.

맛이란 익숙해지는 데 있다. 우리나라 전라도 해안지방의 특산 홍어삼합이 남들에게는 고통스런 맛이지만, 상당수의 한국인에게는 최고의 맛이다. 청국장은 또 어떤가? 톡 쏘는 그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곁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담배 한 대를 핑계 삼아 슬그머니 바깥바람을 쐬러나가는데, 이 땅의 백성은 늘 그리운 고향 냄새 솔솔 풍기는 청국장 뚝배기가 보글보글 끓을 때부터 군침을 흘리고 코를 벌름거린다. 맛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맛있는 사람에게는 맛있고, 맛없는 사람에게는 맛없고, 익숙해지면 맛있고, 처음 대하면 맛이 없거나 역겹고. 그래서 산초장아찌가 내게는 입맛을 돋우는 식품이지만, 누구에게는 혼비백산할 공포물이다. 사람이 이런 걸 먹다니, 이렇게 맛있는 걸 싫다고 하다니……. 맛의 스펙트럼은 싫다와 좋다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간격이다. 

미식을 얘기할 때 짠 맛을 빼놓을 수 없다. 맛의 진수는 짠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짠맛은 염분에서 비롯된다. 식품은 염분이 있어야 맛이 있다. 또한 염분은 식품의 부패를 막고 오랜 보관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사실을 알아챈 그 누군가는 진짜 위대한 사람이다. 생선이 중요한 그리고 끊을 수 없는 중요한 먹거리로 등장한 상황에서 소금이 없었더라면 부패하기 쉬운 청어와 같은 물고기의 장기 보관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금은 염장법을 통해 음식혁명을 초래했다.

 

 

연호택 가톨릭관동대·영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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