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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의 최전선에서 ‘생명-평화-치유’를 새롭게 읽어내자”
“‘비무장’의 최전선에서 ‘생명-평화-치유’를 새롭게 읽어내자”
  • 조배준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원
  • 승인 2017.09.19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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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40(마지막회). DMZ 접경지역의 재상징화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다. DMZ-접경지역을 통일인문학 담론은 ‘생태-안보-경제’에서 ‘생명-평화-치유’의 패러다임으로 재상징화하려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제공=김동수
▲ 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다. DMZ-접경지역을 통일인문학 담론은 ‘생태-안보-경제’에서 ‘생명-평화-치유’의 패러다임으로 재상징화하려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제공=김동수

한반도 분단의 특수성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자 첨예한 군사적 대립의 긴장감을 일상적으로 현전하게 만드는 경계는 무엇보다 ‘DMZ(Demilitarized Zone)’이다.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제1조 1항에 따라 155마일(248km)의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km씩 설정한 남-북방한계선 안쪽의 지역을 일컫는다. 이곳의 면적만 따져도 907km²(약 2.8억평)로서 서울 면적(605.36km²)의 1.5배에 이른다. 한편 접경지역특별법에서는 민간인통제선과 해당 접경지역을 포괄해 군사분계선에서 20km 범위까지를 넓은 범위의 DMZ로 규정한다. 지역적으로는 강원도의 고성·인제·양구·화천·철원, 경기도의 연천·파주·김포, 인천광역시의 강화·옹진까지 10개의 접경 지자체가 DMZ를 감싸고 있다.


일종의 완충 공간으로서 설정된 이 비무장지대를 통해 남북은 직접적인 군사력 충돌을 막고 일상적으로 서로를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실제 DMZ를 구성하는 산악지형의 조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남북의 물리적 거리가 수 백 미터에 불과할 만큼 가까워 서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 있기도 하다. 이러한 군사적 전선 중심의 DMZ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의 손길을 받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생태계’라는 의례적인 수사와 더불어 비무장지대에 대한 특정한 고정된 인식을 재생산한다.

우리가 아는 DMZ, 아직 경험하지 못한 DMZ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DMZ의 이미지는 대북안보 중심적 시각으로 박제화돼 있거나 탈역사적 공간이자 천연 생태적 공간으로 신비화돼 있다. 사실 DMZ 내부는 감시·정찰·훈련 목적에 따라 군인들이 거점을 마련해 주둔하거나 수시로 드나드는 공간이며 계절에 따라 시야 확보를 위한 방화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실제로 지뢰 매설 지대여서 울창한 숲이 형성된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낮은 관목들만 자라는 초원 지대에 가깝다.

출입통제가 풀려 생태탐방로로 개방되는 DMZ 인근 지역에 들어가 보면 막상 실망감이 크게 느껴지곤 한다. 군사적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사정없이 파헤쳐져 있기도 하고 거친 산비탈을 오르는 군용 트럭은 주변에 검은 매연을 뿜어댄다. 그것을 보는 실망감은 단지 ‘DMZ=원시 생태계 보존 지역’이라는 필자의 다소 안일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실상 한국사회에서는 DMZ 자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할 다양한 관점의 가능성들이 열려 있지 않다. 분단 사회에 익숙한 어떤 고정된 틀 속에서만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은 생태적 신비성이나 안보적 가치를 중심으로 그 공간성을 파악하는 태도를 당연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실상을 은폐하거나 수단적으로 활용하는 이데올로기와 연결된 우리 내면의 심리적 방어기제는 DMZ에서 더욱 강하게 작동된다. 거점적으로 개방된 DMZ 지역 어디를 가도 ‘안보견학’과 ‘DMZ관광’은 있되 인문지리적 자원들에 대한 ‘탐방·답사’의 가능성이나 분단 현장을 직시하는 ‘다크 투어’에 대한 상상력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DMZ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태적 가치’에 대한 찬양, ‘안보 의식’ 강조를 위한 교육홍보 수단 등의 몇 가지 키워드로만 코드화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DMZ에 대한 문화콘텐츠는 ‘생태’와 ‘안보’라는 두 가지 코드, 그리고 모호한 ‘평화’ 개념만 있으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DMZ는 내국인들에게 오히려 식상하거나 무관심한 장소로 인식되기 일쑤고, 오히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더 큰 흥미를 유발하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곤 한다. 중국-러시아-북한이라는 북방삼각과 미국-일본-한국이라는 남방삼각이 다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재 DMZ는 이방인들의 눈에 여전히 살아 있는 ‘냉전의 유산’으로 보일 것이다.

DMZ 개념의 확장과 ‘생명-평화-치유’ 가치

궁예가 이끌던 태봉도성 터를 군사분계선이 가로지르고 있기에 우리는 그곳을 가보기는커녕 멀리서라도 돌아 볼 수 없다. 그런데 지역 자체의 허리가 잘려버렸던 철원에서 그 태봉의 유물과 재현된 모습을 보며 진짜 궁예의 이야기를 상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분단의 최전선에서 한반도 역사의 제2차 통일이었던 후삼국통일 과정의 빛과 어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접경지역을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나 의문을 떠올리게 되는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활용에서부터 통일 이후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기대까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DMZ라는 기표는 끊임없이 표상되고 활용되지만 기실 DMZ의 풍부한 기의는 닫혀 있다. 실질적 전쟁 위협을 강조하는 ‘공포의 원리’와 평화통일을 말하면서도 편협한 자기중심주의와 추상화된 평화 개념만 설파하는 ‘분단의 논리’는 그 속에서 기묘하게 동거한다. 일제강점의 식민 시대, 혼돈의 해방정국과 남북분단, 끔찍한 전쟁과 휴전선에서의 오랜 대치 시기를 거쳐 오며 강원도 고성에서 서해 5도에 이르는 한반도 중부의 인문지리적 자원, 역사문화적 가치,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활문화와 전통 공동체에 기억은 사라지거나 간과되고 때론 왜곡되기도 했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밀집도가 높은 곳을 가리켜 ‘비무장지대’라고 부르는 그 역설 자체에 이 괴물 같은 분단 현장의 모순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군사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아무도 이곳에서는 무장해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DMZ는 기존의 휴전선 기준 남북 4km라는 협의의 군사적 의미나 20km의 법률적 규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DMZ-접경지역’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지역들의 고유한 로컬리티를 반영해 보다 풍부한 의미와 가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휴전선 일대뿐만 아니라 남북정세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민통선과 10개에 이르는 접경지역 시·군의 이야기들은 넓은 범위에서 모두 DMZ라는 역사적-현재적-미래적 콘텐츠를 구성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지만 DMZ의 인식과 재현에 대한 구속과 강박은 그곳의 협소한 개념 규정과 깊이 연관돼 있다.

앞서 말했듯이 DMZ에 대한 특정한 인식 틀은 각 지역별 공간적 특이성과 능동적 다양성을 사상시켜 버리고 그곳을 단순히 남북이 대치하는 폐쇄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도록 만들어왔다. 생태적 자원들과 사람의 이야기를 포괄하는 이야기는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생명의 이야기로서 결코 ‘주변화’될 수 없는 이야기다. 접경지역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역사를 만들어 온 기억과 의미가 체현되어 있는 공간으로서, 동시에 분단의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기억의 공간이면서 통일이라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DMZ가 전쟁과 분단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그것에 대한 기억과 치유를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남북의 적대감을 확대재생산하는 기제로 삼는 냉전시대의 논리를 반복했다. DMZ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역설적이게도 분단과 전쟁의 최후 전선에서 오히려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 동안 간과돼 온 DMZ 접경지역의 사회문화적 가치와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해서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DMZ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엄연한 구조가 남북주민들의 가치관과 감성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듯이 DMZ의 공간 설정은 인근 주민들의 사상과 정서, 생활과 문화를 떠받치는 토대다. 따라서 ‘DMZ 스토리텔링’에는 남북의 대립과 관련된 숱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질학적·생태학적·역사문화적·정치사회적 가치와 더불어, 다른 무엇보다 DMZ를 이고 살며 은연중에 생활의 여러 부분을 제한 받고 희생해왔던 접경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포함돼야 한다. 수달과 점박이물범의 ‘생태’는 있되 접경지역에서 땅을 일구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땅굴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안보’의 필요성은 강조되지만 이 땅에서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평화에 대한 토론은 닫혀 있었다. 남침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강조되지만,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상처와 분단으로 인한 고통을 직시하고, 어루만지고 그것을 치유해보려고 하는 관점은 허약했다.

‘생태주의-안보주의-경제주의’로의 코드화와 기묘한 가치의 혼종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DMZ-접경지역에 ‘생명-평화-치유’라는 새로운 가치를 재인식하려는 통일인문학의 시도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했다. 통섭적인 인문학의 관점에서 지역의 인문지리 요소를 다시 인식하려는 통일인문학의 새로운 접근은 DMZ-접경지역을 재인식하고 재상징화하는 여러 접근의 한 사례일 뿐이다. DMZ를 진정 살아있는 공간으로 열어가려는 시도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다.

 

 

조배준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원
건국대 철학과에서 사회정치철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분단체제를 재인식하며 통일의 다양한 인문적 가치를 밝혀나가는 통일인문학의 새로운 학술적 연구와 실천적 활용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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