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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의 시대, 불길한 망령들
가속의 시대, 불길한 망령들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7.09.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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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연간 소비량 135억 개, 1인당 소비량 268개. 이는 계란이 우리 식탁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 수 있는 수치들이다. 최근 발생한 살충제 계란 사태는 우리가 그 동안 애써 외면하고 살았던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를 다시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살충제의 원조격인 DDT는 1939년에 개발돼 1940~5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들을 박멸했고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의 발생률을 급감시켰다. 당시 인도에서는 말라리아 퇴치로 1억명의 인명을 구했다고도 한다. 이쯤 되자 DDT는 사람 사는 곳이나 동식물이 사는 곳을 구분하지 않고 마구 뿌려지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살충제가 대량으로 살포된 지역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에 대해 논란이 증폭되던 1962년에 출판된 책이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다. 저자 레이첼 카슨은 이 책에서 DDT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 

얼마 전, 다중촬영의 대가 김석종 사진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연의 제목은 ‘보이는 것은 보여질 것을 알지 못한다’였다. 피동형을 두 번이나 사용해서 꼬인 문장인데, ‘찍는 자’에게 보이는 것, 즉 ‘피사체’가 여러번 겹쳐 찍히게 되면 그 최종 결과물을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효과의 돌발성, 생물학적 입장에서 보면 ‘돌연변이’라고 할까?

보통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불길한 망령’ 같은 ‘돌연변이’의 시대가 요란하게 열리고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신작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2017)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세 가지의 힘, 즉 기술 발달, 세계화, 자연환경이 폭발적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재를 ‘가속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이 가속의 시대에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토머스 프리드먼은 낙관론을 편다. 그는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IA(intelligent assistant, intelligent algorithm)로 바꾸는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모든 근로자들이 평생학습자가 될 수 있도록 더 똑똑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근로자 각자가 자신의 디지털 도구들을 가지고 생산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도록 더 ‘똑똑한 도우미(intelligent assistant)’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근로자들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모든 일자리, 그 일에 요구되는 모든 기술, 그 기술을 가르칠 수 있는 모든 학교, 그 학교에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제공하는 모든 프로그램, 그리고 모든 학습 단계에서 지도를 해줄 온라인 코치와 멘토들을 알 수 있도록 더 ‘똑똑한 알고리듬(intelligent algorithm)’을 널리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AT&T는 2007년 아이폰의 첫 독점 네트워크 공급자가 되면서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에 대비해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를 개척했는데, 업무 혁신은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했다. 애플과 함께 달리고 있어서 애플만큼 빨리 달릴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육 대상 직원이 30만 명이라는 것과 기술 수준이 제각각이라는 데 있었다. AT&T는 직원 훈련을 위해 조지아공대, 스탠퍼드대, 유다시티 및 코세라 같은 온라인 대학들과 협력관계를 맺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학사나 석사 학위를 딸 수 있게 하거나 회사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AT&T는 한 해 8천 달러까지, 재직기간 통산 3만 달러까지 지원했다. 그리고 그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도록 대학들에게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교육에 혁신이 이뤄졌다. 유다시티와 AT&T, 조지아공대가 제휴해 전 과정을 6천600달러에 이수할 수 있는 온라인 컴퓨터과학 석사과정을 만들었다. 이는 조지아공대 오프라인 캠퍼스에서 이수하려면 2년 동안 4만5천 달러가 드는 것과 비교된다. 

영어강의 동영상을 무료로 배포하던 ‘칸아카데미’와 대입수학능력시험(SAT)과 예비수능시험(PSAT)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의 협업은 아주 모범적인 사례다. 우리가 어떻게 로봇을 이길 수 있는지, 이 가속의 시대에 교육에서 직업으로, 그리고 다시 평생학습으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계약을 어떻게 바꿔갈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축소판이다. 이들은 SAT 준비생을 위해 ‘똑똑한 도우미’를 만들어서 이를 공짜로 제공해 사교육비를 절감시켰고 지식격차를 해소할 수 있도록 놀라운 연습용 플랫폼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140만 명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농약회사들의 거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환경보호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가속의 시대’에도 숲에서 새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AI나 기후변화 같은 예측 불가능한 ‘불길한 망령’들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할 때다. 특히 대학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버리고 교육의 구조와 방법에 있어서 파괴적 혁신을 이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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